연말&연초인사

김금희, <첫 여름, 완주> 중에서

by 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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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연말 일들이 안 끝나 찝찝하게 보내고 있다가, 이런 때 빠져드는 독서.. 이런 필사를 하고, 이 글로 연말 인사 대신해 보아요.


송구영신-

2025년의 인연 모두 감사했고 감사했어요.

행복한 연말&연초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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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

- 자크 프레베르


죽은 나뭇잎의 장례식에

두 마리 달팽이가 조문하러 길을 떠났어

검은 색깔의 껍데기 옷을 입고

뿔 주위에는 검은 헝겊을 두른 차림이었어

그들이 길 떠난 시간은

어느 맑은 가을날 저녁이었지

너무 느려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봄이었어

죽었던 나뭇잎들은

모두 부활해서

두 마리 달팽이는

너무나 실망했단다

하지만 해님이 나타나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괜찮으시다면 정말 괜찮으시다면

여기 앉아서

맥주 한잔 드세요

혹시 생각이 있다면

정말 그럴 생각이 있다면

파리로 가는 버스도 타 보시지요

오늘 저녁 떠나는 버스가 있거든요

여기저기 구경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 상복은 벗으세요

내가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에요

상복은 눈의 흰자위를 검은 빛으로 만들고

우선 인상을 보기 싫게 하거든요

죽음의 사연들은 무엇이든

아름답지 않고 슬픈 법이지요

당신들에게 맞는 색깔

삶의 색깔을 다시 입으세요

그러자 모든 동물

나무와 식물이 노래 부르기 시작했어

살아 있는 진짜 노래를

여름의 노래를 불렀어

그리고 모두들 마시고

모두들 건배했지

아주 아름다운 밤

여름밤이었어

그러고 나서 달팽이 두 마리는

집으로 돌아갔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감동했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행복했어

술을 너무 마신 탓인지

그들은 조금씩 비틀거렸어

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달님이 그들을 보살펴 주었네

(천천히, 여운을 주며)

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달님이 그들을 보살펴 주었네


- 김금희, <첫 여름, 완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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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없는 사실, 완전한 올바름, 그것은 때로 삶을 수렴하기에 너무 옹색하다. 그보다는 더 수용적이고 오래고 성긴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서로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 여름의 방문 같은 것.’


- 김금희, <첫 여름, 완주>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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