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목정원 산문,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중

by 베로

관객학교 에피소드에서(45p~)


장 빌라르는 관객을 사랑했고 관객에게 사랑받은 예술가이자 기획자다. 그는 연극이 수도나 전기와 같은 공공서비스가 되어 모두의 삶에 뿌리내리는 세계를 꿈꾸었다. 그렇게 아비뇽 연극제를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자클린 미쿠 70살입니다. 저는 평생 미술을 가르쳤고, 지금은 아비뇽에서 몇 킬로 떨어진 곳에서 은퇴 이후의 삶을 즐기고 있어요. 어렸을 때 저는 생 시몽 드 브레씨유라는 변두리 마을에 살았습니다. 그르노블과 리옹 중간쯤에 위치한 시골이었죠. 자전거 체인을 만드는 쁘조 공장이 있는. 그곳 마을의 한 선생님이 아마추어 연극단을 만들었어요. 노동자와 농민, 우리 가족도 열정을 다해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죠. 하루는 선생님이 그들에게 아비뇽에 가서 연극을 보자고 제안했어요. 물론 그들이 아마추어 연극을 직접 하기는 했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에게 있어 극장에 가는 일은 자신들에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어요. 경계하는 태도로 눈빛을 교환하며 웅성거렸죠. 거기 가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선생님은 설명했어요. 장 빌라르는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물론 관여했지만, 객석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돌보았다고. 유명 인사들을 위해 지정된 자석도, 입장 시 내야 하는 팁도 없을 것이라고. 그 후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어려 함께 떠날 수 없었지만요. 그들이 돌아왔을 땐 난리가 났답니다. 그들은 날마다 이야기했고, 저는 날마다 들었어요.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조금 어려웠을지언정, 그것이 장소, 색깔, 의상, 음악과 더불어 전해졌을 때 그들은 열정을 다해 따라갔어요. 그 후 아비뇽에 연극을 보러 가는 건 관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작가 브레히트가 등장했어요. 진정한 전환이었죠.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보다도 더 모르는 게 브레히트였지만, 그의 세계는 좀 더 친숙했거든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었죠. 억척어멈, 곧 용감한 어머니라는 말은 깊은 인상을 줬어요.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으니까요. 1960년 저는 17살이 되었고 이제 제 차례가 왔죠. 아마추어 극단도 저희 오빠도 그해에는 아비뇽에 갈 계획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갈 때가 된 거예요. 가서 무얼 볼지는 상관없었어요. 한 가지 분명했던 건 장 빌라르와 그의 공연을 본다는 것. 그건 <안티고네>였어요. 저에게 안티고네는 부서지기 쉬운 소녀에요. 도자기처럼 부서지기 쉬우면서 감히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 오빠의 시체에 한 줌 흙을 던지며, 그는 법에 대항해 팔을 들어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치러야 한 대가가 자신의 죽음이었다는 거예요. 그 같은 몸짓은 만인의 역량을 넘어서지요. 이듬해는 제가 대입 시험을 치르는 해였어요. 철학 시험에 대한 걱정에서부터, 머릿속이 부글거렸죠. 그리고 저는 안티고네가 제 삶에 들어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에게 이야기했죠. 은밀하게. 날마다. 생을 지속해갈 힘을 되찾기 위해서요.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우리들 본성에 기인한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마다 저는 그의 냉정함과 의연함을 빌려 썼어요. 시간이 흘러 제 아이들이 대입 시험을 치러야 했을 때도 저는, 지금은 손주들에게 그러하든, 그 책을 선물했어요. 그리고 오늘 다시, 저는 안티고네에게 이야기해요. 이곳 교황청에서 말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거든요. 제게는 예기치 못한 일이니까요. 우리는 여기, 2013년에 있죠. 53년이 지났어요. 제 힘을 넘어서는 생의 시련이 닥칠 때마다 저는 그녀에게로 되돌아가요. 가장 어려운 것일지라도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제 마지막 시련은 저의 죽음이겠죠. 제 보통의 삶으로는, 제 보통의 삶으로는, 그녀의 존재 없이는 그 최후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할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필사] 다시, 역사의 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