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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롤 Apr 15. 2024

우린 달라요

산책을 좋아하는 1호, 집을 좋아하는 2호

우리집 고양이들은 성격도, 입맛도, 좋아하는 장난감도 제 각각이다. 나는 겨우 두 마리의 취향을 맞추느라 버거운데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다묘 가정 집사님들은 다양한 아이들의 취향을 다 어떻게 맞출까 싶다. (그 안에 원칙과 규칙이 존재하겠지만) 나는 대부분 아이들의 성격과 호불호에 맞춰주기는 하지만, 가끔 피곤하면 아이들의 요구를 모르는 척할 때가 많다.


그러면 우리집 첫째인 1호는 "힝" 소리를 내고 빠른 걸음으로 이모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마치 사람 자식이 자기 요구를 엄마가 들어주지 않자 삐쳐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모양처럼. 그에 반해 우리 둘째인 2호는 간식이 먹고 싶다거나 급식기에 사료가 없으면 '밥 달라'는 적극적인 표현을 하지만, 그 외에는 다소 얌전하고 순둥한 편이다.


아이들이 너무 웃기고 귀여운 게, 사람의 말로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엄마가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서 가끔은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온몸으로 소통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의 무심함이 더할수록 보는 재미도 더해진다.


2호는 먹는 게 중요해요.

급식기 앞에서 "야옹, 냐~옹, 냥, 냥!!" 하기 전 일단 얌전하게 기다려보는 2호

2호 : 이러케 조신하게 기다리면 밥이 나오게찌


얌전하게 밥을 기다리는 모습은 인형 같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느껴도 어쩔 수 없지만,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뭔가 따가운 시선이 오는 걸 느낀다. 돌아보면 역시나 우리 2호가 자길 봐주길 바라면서 저렇게 앉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집 급식기는 급식 스케줄을 입력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내 폰으로 연동된 앱으로 식사를 배출해 줄 수가 있다.) 2호는 왜, 처음부터 소리를 내지 않고 내가 자기를 쳐다볼 때까지 기다리는 걸까. 그냥, 생각을 하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귀엽기도 궁금하기도 하다.


2호 : 엄마, 식탁 위에 식탁보는 깔지 마요, 나 시러...

저 식탁보는 사서 한 3분 정도 깔아보았나, 이 날 이후 접어서 집 안 서랍장 어딘가로 들어간 이후 다시 꺼낸 적이 없는 것 같다. 1호와 달리 식탁 위에도 잘 올라오는 2호는 아무래도 발 끝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것이 좋은지 의사표현 하나는 확실하게 식탁보를 밀어내고 저렇게 자기 자리를 만들어 엎드려 있다.


그래, 너의 생각이 그렇다면 식탁보쯤이야...(사실, 잠깐 깔아놓고 차나 한 잔 마셔볼까 했지만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간식과 밥만 잘 해결되면 하루 종일 혼자 잘 놀고 아주 가끔 심심하다는 티를 내는 게 다인 2호.


1호는 산책이 중요해요.

우리 1호는 최소 하루 1회 이상은 꼭 옥상 산책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책을 할 때까지 나와 동생의 귀가 떨어져 나가도록 따라다니면서 졸라댄다.


"우엥, 우엥!!" (나가자, 나가게 해 줘, 나가게 해 주라!)


전에 살던 집도,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도 1호는 늘 건물 복도를 궁금해하고 어슬렁 거리는 걸 좋아하고, 현관문에 나가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발길에 귀를 기울인다. 집순이 체질인 내가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를 키우는 게 된 것도 바깥 산책이 필요 없는 고양이 특징이 나와 잘 맞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매일 바깥을 나가야 하는 고양이가 나에게 오다니! 1호는 아기 시기가 지나 어린이쯤 되었을 때도 늘 현관 앞에서 서성였다. 좁은 베란다 먼지를 다 뒤집어쓰면서 날벌레들을 쫓아다니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깨끗하고 예쁜 집고양이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나는 귀하게 키웠는데, 야생처럼 살고 싶은 건가...

옥상에 올라가면 몸을 바닥에 비벼댄다


저렇게 온 등 전체를 옥상 바닥에 있는 흙먼지에 비벼대며 행복해한다. 그러면서 나는 왜 쳐다보니? 목욕은 냄새가 잘 나지 않는 고양이 특성상 일 년에 몇 번 아니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해도 되는데, 우리 1호는 두 달에 한번, 많게는 한 달에 한 번은 해야 푸바오 보다 조금 깨끗한 털색을 유지할 수 있다.


옥상에서 내려오면 물티슈로 열심히 닦이지만, 목욕을 하지 않는 이상은 지나가는 길고양이가 더 고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저렇게 등 전체에 흙을 묻힌 다음 나에게 와서 내 발목 쪽에 또 자기 머리를 부딪히거나 비벼댄다.


'허허허' 웃음이 나온다.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났는데 그걸 살짝 바꿔보면 이렇다.


"피할 수 없으면 실성해라."


비가 오는 날은 옥상에 가도 몸이 젖는 건 싫어서인지 나가지 않는다. 그저 옥상 출입문 문턱에 앉아서 내리는 빗줄기만 몇 분간 아쉽게 쳐다본다. 그럴 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조금 가엽기도 하다.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건지 고양이를 키우는 건지 모르겠지만...


언니인 1호가 산책을 너무나 좋아하니, 집순이인 우리 2호도 덩달아 언니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온다. 언니가 하는 걸 자기가 안 하면 안 될 것처럼 억지로 올라와서는 내가 옥상문을 닫는 시늉이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2호.


우리의 대안은 캣티오 인가.

Cat과 Patio의 합성어로 고양이를 위한 야외공간이라고 한다.

https://www.animals.or.kr/center/essay/61877


나도 아이들에게 이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돈도 좀 벌고, 건강해야겠지. 아니, 건강하고, 돈 버는 게 순서인가. 일단 내 집이 생기면 가능할 일이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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