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미술, 음악을 아우르는 여성 화가의 러브스토리
내일 예정된 영화모임 세라핌 초이스 영화.
내가 발제자다 보니 영화를 3번이나 봤고, 토론 후기는 나중에 세라핌 카테고리에 올리겠지만 3차 관람 후 느낀 점을 증발하기 전에 기록해 보려 한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감독 셀린시아마의 4번째 장편작.
그의 첫 장편작인 <워터 릴리즈>는 프랑스 영화제작자들의 시상식에서 <루이 뒬리크>상이라는 최고의 데뷔 작품상을 수상했다.
작년 세라핌 모임에서 <톰보이>로도 이야기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보다 훨씬 짜임새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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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반적으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강렬한 러브스토리 안에 18세기 여성 화가로서 억압받았던 여성인권의 서사와 계급차이, 예술가로서의 성장스토리를 잘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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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는 엘로이즈를 연기했던 '아델 에넬'과 '셀린 시아마'는 실제로 연인관계 였던 점!
그래서인지 영화는 전 연인이었던 아델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느낌이 든다.
오프닝은 여성 화가들을 육성하는 미술공방처럼 보이는 마리안느와 교육생 장면으로 출발한다. 치맛자락이 타는 채 바닷가를 향해 걷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마리안느의 작품을 보고 교육생은 작품명을 묻는다.
작품명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아래는 스포일러가 포함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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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마리안느의 회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초상화 의뢰를 받고 작품을 만들러 외딴섬에 들어가는 배 위에서 마리안느는 가장 소중한 켄트지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다) 바다가 바다에 떨어지는 걸 보고 당황한다.
배 위에 있던 남자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무거운 중세시대의 드레스를 입은 채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든다. 이 모습만 봐도 마리안느는 주체적인 여성이다. 억압받았던 여성화가로서 살면서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고,
누드화를 그리는 것이 금지됐지만 몰래 할 만큼 열정도 깊다.
그런 그녀에게 의뢰한 엘로이즈의 어머니는 전한다.
딸 엘로이즈는 밀라노의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정혼하고 초상화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모델이 되기를 거부해 전 화가들이 번번이 초상화 그리는 것에 실패했다고.
자신감 넘치는 그녀는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초상화를 완성하리라는 의지를 전하며,
화가의 신분을 숨긴 채 엘로이즈의 산책 친구가 되어 그녀를 관찰한다.
그녀와 처음 만난 날.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사도 나누지 않은 엘로이즈는 산책을 나가자마자 절벽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가정부인 소피에게 엘로이즈의 언니가 절벽에서 자살했다는 말을 들은 마리안느는 걱정스럽게 쫓아간다.
"정말 해보고 싶었어요."
"죽음이요?"
"달리기요."
수녀원에 갇혀 있던 엘로이즈에게 누구나 할 수 있던 달리기는 자유의 표현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마리안느는 그녀를 관찰하지만, 둘의 시선은 엇갈린다. 결코 서로를 제대로 바라 볼 시간이 없다.
둘째 날.
엘로이즈는 뜬금없이 수영을 하고 싶다 한다. 자신이 물에 뜨는지 수영을 할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것 역시 달리기와 같은 소원 중 하나였다.
(수영의 의미는 세 번을 봐도 잘 모르겠어요. 이 부분은 세라핌에 가서 나눠 볼 생각입니다.)
셋째 날.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어머니에게 그녀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게 어떠냐 제안하고, 소원대로 엘로이즈는 자유의 시간을 가지러 성당에 간다고 한다.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를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엘로이즈에게 그녀가 머무르는 응접실 한 구석에 천막으로 감춰진 피아노를 어설프게 치며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알려주는 엘로이즈.
덕분에 엘로이즈도 성당에서 실컷 노래를 부르며 고독 속의 자유를 즐기고 왔다고 말한다.
"당신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단 사흘이지만, 엘로이즈가 사랑에 빠진 것을 알 수 있는 대사이다.
어설프게 관찰한 그녀의 얼굴을 조합해 드디어 초상화가 완성됐다. 얼굴 그리기에 실패한 전 화가의 작품을 구석구석 살피던 마리안느는 이내 촛불로 작품을 불태워 버린다.
이 부분이 두 번 보면서 가장 궁금했다. 도대체 그 작품은 왜 태웠을까? 세 번째 보면서 느낀 점인데,
이 장면이 마리안느가 예술가로서 가지고 있던 고뇌를 보여 준 게 아닐까?
얼굴만 없다 뿐이지, 자신의 작품보다 뛰어나 보였기 때문에 질투가 났을까?
아무튼 완성된 초상화 소식을 엘로이즈의 어머니에게 알리며, 그래도 엘로이즈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게 좋겠다고 한다.
넷째 날.
정체를 밝히며 동시에 자신의 초상화를 본 엘로이 지는
"이게 나예요?" 라며 혹평한다.
혹평에 자존심이 뭉개진 마리안느는 초상화의 얼굴을 지워버린다.
이 이 부분이 영화의 첫 번째 변곡점이다.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비평가도 아닌 모델에 불구했던 다른 사람의 입으로 혹평을 듣자 화가 난 마리안느는 오기가 생겨 다시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한다.
그녀가 놓친 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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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을 기꺼이 자처 한 엘로이즈에게 그녀가 버릇처럼 하는 행동을 읊조리며 마리안느는 말한다.
"제가 감히 높으신 분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네요."
실제로 엘로이즈는 이 집안 (귀족)의 딸로 화가인 마리안느보다 계급이 높다.
하지만 뒤바꾸어 생각하면 화가와 모델이라는 둘 사이에도 또 다른 수직적인 관계가 있다.
첫 번째 작품은 둘의 시선이 교차하는 장면이 많이 없는데, 그만큼 화가인 마리안느의 관찰이 굉장히 일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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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정확히 동등해요."라고 말하며 당신과 나의 시선은 교차한다고 말하는 마리안느의 대사에서
이 계급과 화가와 모델이라는 수직적인 관계는 파괴된다.
둘 사이만이 아니다. 가정부로 머물던 소피와의 세 여인은 그 후 함께 연대하게 된다.
카드놀이를 하고, 임신한 소피의 임신 중단을 함께 도우며 연대한다.
결국 수술을 받는 소피의 고통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림으로 기록하며 고통을 나눈다.
엘로이즈는 셋을 위한 음식을 직접 준비하고, 마리안느는 와인을 따르고 그 옆에 소피는 프랑스 자수를 놓으며 계급 간의 규정된 행동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관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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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등장하는 예술작품 중 또 다른 하나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다.
마리안느 엘로이즈 소피는 책을 읽으며 이 신화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한다.
하지 말라는 걸 왜 했냐는 소피와 그만큼 사랑에 미쳐서 그랬다는 엘로이즈와
둘의 의견을 다 이해하지만, 결국 시인이라는 예술가로서의 선택을 한 오르페우스를 마리안느는 이해한다.
동시에 엘로이즈의 마음을 느끼는 핵심적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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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배경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엘로이즈를 추억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영감이 된 축제의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끼리 민요를 부르는 장면은 충격적일 정도로 임팩트 있다.
타는 모닥불 옆을 지나가다 엘로이즈의 치마에 불이 옮겨 붙는다. 마치 짧은 시간에 타오른 그들의 사랑처럼.
느닷없이 이 장면 뒤에 갑자기 점프컷이 나오며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더 이상 일방적인 시선이 아닌 교감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보기 시작한다.
이미 결혼을 해야 할 운명인 엘로이즈를 보내야만 하는 두려움은
마치 에우리디케를 연상케 하는 흰 드레스를 입고 유령처럼 비치는 엘로이즈의 모습이 되어 그녀를 괴롭힌다.
둘의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를 알게 되며 일방적인 시선이 아닌 교차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첫 작품보다 훨씬 나은 두 번째 초상화를 완성한 마리안느는 그녀와 남은 시간을 추억으로 채우며 떠날 채비를 한다.
소피가 놓던 프랑스 자수의 실제 꽃은 시들어가고, 소피의 자수는 완성된다.
마치 그녀의 시간이 끝나가지만 완성된 예술작품과 사랑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유명한 이야기와 클래식의 ㅋ을 몰라도 누구나 들었을 법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으로 영화는 아름답게 완성된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여름>을 들으며 마리안느와의 과거를 추억하는 엘로이즈를 연기한 아델 에넬도 인상적이다.
파랑, 초록, 빨강을 적절히 활용한 미장센과 중세시대의 소품과 의상을 보는 재미도 있다.
두고두고 볼 예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