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으로 읽는 영화 <툴리>
나는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원인도 모르는 우울감에 힘들어 했었다. 우울감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했는데, 크게는 네가지로 구분 됐다.
첫번째, 변해버린 몸이다.출산 직후 가늘었던 허리는 통허리가 됐고 엉덩이와 허벅지에는 임신 중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지방들이 뭉쳐 도통 분산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랴, 약해져버린 체력과 매일 시큰거리는 손목 헝클어지다 못해 씻지 못해 떡진 머리는 거울을 볼 때마다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뭐가 날 이렇게 만들었나 원망스러웠다.
마를로는 출산 후 건강 목적으로 조깅을 하는데, 자신보다 앞서가는 젊은 여성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게 뛰다 지쳐버린다. 그녀가 심심해서 젊은 여성을 앞지르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종의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내지는 '나 아직 괜찮아.'라는 위로를 달리기를 이기는 행위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다.
두번째는 경력 단절이다. 프리렌서라 언제나 일에 불안해하는 나였지만, 출산 후 느껴지는 공포감은 그 전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 동안 세상에서 나는 잊혀질 것만 같았고 복직은 더 힘들것만 같은 불안감이 날 더 힘들게했다. 가장 우스웠던 점은 일하러 가는 남편이 너무나 부러웠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잠도 못자고 아이를 키워도 월급으로 십원 한 장 못받는데, 남편은 나가서 커피마시며 일하며 돈까지 벌어오니 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마를로의 남편은 육아에 쥐뿔 관심도 없는 아빠처럼 보여진다. 그는 일하며 지친 심신과 스트레스를 총을 쏘는 게임을 통해 날려버리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를로의 눈빛에서 나는 원망과 질투를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세번째는 수면부족이다. 혈기왕성했던 20대 초반은 2박 3일을 술을 마시고 잠도 안자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곤 했는데, 신생아를 케어하는 초보맘에게 수면 부족은 20대와 같은 자의가 아니라 철저히 타의다. 내가 원해서가 아닌 물리적인 소리로 잠이 깨고, 아기를 먹여야 한다는 사명감에 일어난다. 100일 전 신생아는 대게 밤중 수유를 하는데, 그 간격은 짧게는 두시간 길게는 4시간이다. 혹자는 4시간을 자면 많이 자는 것 처럼 보겠지만, 그 4시간 조차 자는게 아니다. 아이의 숨결까지 들을 정도로 엄마의 귀는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통잠'을 자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난 그때 잠의 소중함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마를로도 늘 잠을 푹 자지 못해 집안일을 엉망으로 둔다. 나 역시 그때는 청소도 빨래도 차일피일 미루고 겨우 젖병만 닦아 수유를 하곤 했다.
네번째는 좀 다른 문제인데, 바로 주변의 오지랖이다.영화의 마를로의 경우는 출산후가 아닌 임신에서 보여주는데, 바로 커피를 마시러 갔을 때 '디카페인'을 추천하던 할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오지랖을 볼 수 있다. 아무렇지 않게 '걱정이 돼서' 건내는 한 두 마디가 임식 혹은 육아를 하는 엄마의 마음에는 비수처럼 꽂혀 상처가 곪아 터져버리는 지경이 되기도 한다.
툴리는 자신있고 당당한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디카페인을 마시라는 할머니에게 한 마디도 못하는 지금의 마를로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에서 엄마는 과거의 영롱했던 나 '툴리'를 그리워 한다.
영화 상 마를로 자신이지만 다른 인물처럼 보이는 툴리는 그녀만의 문제가 따로 있다.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충고를 해 주는 마를로는 자신도 같은 문제로 힘들어했던 것을 잠시 떠올린다. 우리도 마를로처럼 과거에 우리가 겪었던 당시에는 크지만 지금은 잊고 있는 문제들을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툴리처럼 우리도 과거에 분명 힘들어 했음을 알게 되면 문득 그때의 기억도 상기된다.
그러니 과거의 툴리는 멀리 보내고, 미래에 나 자신에게 또 다른 툴리가 될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게 현명하지 않을까?
처음 육아를 주제로 잡고 영화를 고를 때 많이 힘들었다. 육아에 있어서 진정한 위로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우리는 위로는 "잘 될거야." 혹은 "걱정하지 마." 따위로 하는 걸로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가 분명 위로가 됐다.
' 나만 그런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구나.'라는 선상에서 나는 그녀에게 감정이입 했고, 그것만큼의 큰 위로가 없었다. 영화가 어떤 정답이나 해결책을 주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가 된 셈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임신 혹은 출산으로 힘들어하는 여성을 위해 그 어떤 말보다 연대를 해 주길 바란다.
"힘든게 당연하지. 얼마나 힘들겠어."
이 말 만큼 위로가 가는 말이 없다.
영화에서 아이를 낳아 본 적 없는 툴리는 그런 마를로의 마음을 너무나 이해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녀가 마를로를 이해 할 수 있었던 건 마를로 자신이기 때문에 더 가능했을 것이다. 산후 우울증을 느끼는 산모들은 흔히 이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건 나라는 것을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