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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기

따뜻한 맨하탄 산책 2020

by 윤현희

오랫만에 다시 찾은 1월의 맨하탄. 뉴저지에서 airtrain을 타고 펜 스테이션으로 오는데는 탑승시간만 25분 정도, 낡긴 했지만 참으로 편리한 대중교통이었다. 펜 스테이션에 내려 타임스퀘어에 있는 호텔까지 20분쯤 걸어 올라오는 동안 세명의 schizophrenia를 마주쳤다. 첫인사 치고는 그야말로 bizzar 했다.

펜 스테이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입구였다. 엘리베이터를 너무 오래 기다려서 고장인가 하는 순간 문이 열렸다. 지상으로 올라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온몸을 비튼 자세로 버튼을 하염없이 누르고 있는 괴이한 옷을 입은 사람이 입구에 딱 서있어 사람을 놀래키려는 짖궃은 설치미술 작품인가 했다. 그런데 몸이 떨리듯 흔들거리고 있길래 한참을 멀리서 바라보니 계속 그 자세로 요지부동이었다. 정상인이라면 비틀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렇게 오래 서 있을 수 없는데... catatonic state에 있는 환자였다. 심각한 증상을 가진 환자가 설치미술을 연상케하는 모습으로 공공장소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발걸음이 쉽게 내디뎌지지 않았다. 뉴요커의 말씀은 내가 시골사람이라 놀라는 것이라 놀린다.

3블락 쯤 올라가다 두번째 환자를 마주쳤는데 심각한 환청 상태에 있는듯 하늘을 향해 분노에 가득찬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가 보이지 않는듯 들리지 않는듯, 나 역시도, 자기 갈길을 열심히 가고 있었다. 걸어다니며 화내는 사람은 나도 많이 봤다. 세번째 환자는 이 추운 겨울에 추운 기색도 없이 아예 길에 누워 자고있었는데.. 모두가 밟지 않고 조심조심 비켜갔다. 오던 겨울중 중 가장 따뜻하고 화사한 날이어서 이런 환자들까지 밖으로 나오신듯.... 눈이 발목까지 빠지던 겨울엔 볼 수 없던 풍경들이었다. 그들도 나름 좋은 날씨를 즐기고 있는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35~36가 쯤을 지날 무렵 친구의 회사가 느닷없이 눈 앞에 나타났고, 텍스트를 넣었더니 미팅 대기중이시라는 소식에 스쳐지나 계속 북진..

다운타운 비지니스 district 의 분주함과 무척 대조되는 uptown의 조용한 거리 . 센트럴 파크 산책 중 미드 타운에 작대기 빌딩 두개가 올라가고 있는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그 건물의 끝을 쫒다가 살며시 자리에 앉았는데 무지개와 딱 눈이 마주쳤다. 무지개란 눈 앞에 있어야지 그렇게 머리 위에 숨어 있으면 어떻게 알아보느냐고...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라 했더니 모두들 좋아했다. 평일 오전의 센트럴 파크는 모두들 행복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조용하고 햇살이 맑았는데 산책 나온 덩치 큰 강아지들은 자기 장난감을 입에 꼭 물고 다니는 녀석, 자기 목줄을 입에 물고 착한 모습으로 주인 곁을 꼭 붙어 다니는 녀석, 통화에 정신없는 주인 옆에 앉아 나뭇가지를 신나게 열심히 씹어먹는 녀석 등이 기억에 남는다. 나뭇가지 열심히 씹던 녀석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나 잘먹지? “ 하는듯 입을 잔뜩 벌리고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유머차를 끌고 아기를 산책 시키는 엄마들, 강아지와 긴 허그를 하며 벤치에 앉아있는 여인들도 행복해 보였다.

호텔이라면서 아파트인 근사한 옛스러움을 간직한 호텔은 문에 열쇠를 두 개나 넣어서 돌려야 하는 튼튼한 안전장치다. 방에는 오븐이 있고 오븐 위에는 칙칙 소리를 내며 끓는 케틀도 놓여있다. 전자레인지, 조그만 냉장고와 싱크대도 갖추어져있다. 세상에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모두 모인 맨하탄 한 가운데 이렇게 살림도구를 갖춰 놓은 이유는? 장기 출장지들에겐 한달쯤 뉴요커가 되어 보라는 괜챦은 대안이겠다. 커피를 내리고 여기 저기 인사드릴 곳에 전화를 돌린 후, 숨을 돌리고 세 블럭을 걸어올라 모마를 찾았다. 겨울 뉴욕행 중 가장 따뜻하고 온화한 날이다. 모마가 넓어지고 깊어지고 세배쯤 커졌다. 53 & 54 선상이 모두다 모마 건물이라 이제 조만간 거리 이름이 모마 스트리트로 바뀌지 않을까 싶을 정도. 3월 한국 방문시에 만나뵙게 될 분들이 이 멀리까지 출장을 오셨는데 우연챦게 시간이 겹쳐 미술관 현관에서 대대적인 인사. 반가웠습니다 모두들.


휴식공간이 넓어졌고, 라틴 미술 갤러리가 옛날의 카페 자리에 들어왔고, 새로 지은 공간엔 컨템퍼러리와 영상 미디어들, 지하의 두 층엔 영상 예술을 상영하는 극장도 생겼다.


쉴레 작품이 도저히 뭔말인지 몇초간 이해 가지 않아서 옆에선 할머니께 도대체 어디를 봐야 하는거냐고 여쭤보다가 상황이 분간이 되어 “ohh~~!! 했더니 이 할머니 “exactly !!’”하셔서 한참 깔깔웃었다. 본인이 쉴레 big fan이라 하셔서 나도 반가워 “then your next stop is leopord museum in austria.” 라고 했더니 자기 리스트에 추가하겠다고 하신다. 은퇴한 큐레이터로 샌프란 베이쪽에서 오셨다는 분과 재미있는 대화.. 은퇴한 큐레이터는 이렇게 재미있는데 모마 직원들은 표받는 사람조차도 목에 힘이 잔뜩들어가 있다. ‘아 여긴 뉴욕이라구요 뭘 더 바래요..’ 절대적 자유와 방종의 도시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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