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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기

해당화가 곱게 핀

달맞이 언덕, 가을 2019

by 윤현희

초등학교 2학년 때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해운대 백사장으로 사생대회를 나갔다. 학교와 집은 해운대에서 굉장히 멀었다. 백사장은 무척이나 넓었고 멋진 굴곡을 가진 해송은 숲을 이루어 병풍처럼 서 있었다. 그 숲을 지나 모래 사장을 한참 지나가면 파도를 만날 수 있었다. 구불구불한 팔을 옆으로 뻗은 해송의 굴곡은 어린 눈에도 참 신비로웠고, 모래 사장에 나무 숲이 서 있는 낯선 풍경에 마음이 압도되었다. 그렇긴 한데, 문제는 집에서 한참이나 먼 바닷가 해송숲에 우리를 데려다 놓고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라는데 있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그려놓은 것을 보고 따라 그리던 것이 미술학원에서 배운 것의 전부였는데... 사생대회라니... 미술 선생님은 우리를 하나씩 붙들고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줄만큼 친절하지도 않았다. 고학년 언니 오빠들은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분주하게 하고 있었다. 2학년이던 나는 말도 못한채 낯선 상황의 전개에 아마도 당황하거나 황당해하고 있었던 것같다. 하지만 빈 도화지를 낼 순 없으니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아무 그림이나 그려 제출하는 것으로 사생대회는 막을 내렸다.


그날 제출한 그림이 장려상을 받게 되자 나는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내가 제출한 그림은 그날의 주제와는 관련이 없어서 상을 받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상을 받으면 안되는 그림이라 생각했는데 상을 준것은 사생대회가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받고싶지도 않았던 상이었지만 금상도 은상도 아닌 장려상을 내게 준 것이 몹시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래서 상을 받은 다음날부터 학원을 가지 않기로 했던 것인데, 이 사건은 되돌아보면 일곱살짜리가 집을 벗어나 사회라는 맥락에서 처음겪은 좌절의 경험이라 할만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을 주는 건 선생님의 판단이지, 어린 니가 그걸 왜 그걸 엉터리라고 생각하느냐'고 말해주고 싶지만, 어찌됐건 그 사건이 일곱살짜리의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던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그냥 바닷가로 소풍가서 그림을 그리는 거야라고 했더라면, 그날 나는 바닷가에서 그렇게 당황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엉터리같은 상장을 받아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는 그림을 못그린다는 생각을 갖고 살지 않았을텐데...

그 사건은 그림을 그리는 내 능력에 관한 인식의 초기값 세팅 오류였다.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사생대회가 있기 전의 어느 날, 티나라는 이름을 가진 5학년짜리 언니가 나타났다. 티나는 얼굴이 정말 하얗고 말이 없었는데, 미국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되어 우리말을 못했던 것인지 수줍음이 많았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티나는 연필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티나가 그린 사람들과 풍경화는 정말이지 섬세하고 예뻐서 나도 저렇게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물씬 들곤 했다. 그렇지만 그 시절 초등학생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미술도구는 오일 파스텔, 이른바 크레파스 뿐이었다. 수채물감과 포스터칼라와 볼펜이 허용되었던 것은 4학년쯤 이었고, 1-2학년에게는 오로지 크레파스만 주어졌다. 나는 끝이 뭉툭한 크레파스보다는 끝이 더 섬세한 무엇으로 그리고 싶었으나 크레파스 외의 도구는 허락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림그리는 일이 곧 답답하고 지겨워졌다. 한국의 미술교육이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돌이켜보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크레파스만 허락했던 것은 아마도 선생님들이 귀챦아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걷기 시작하면서 부터 손과 발에 물감 범벅을 하며 손도장 발도장은 물론 몸을 표현도구로 사용하며 노는 이나라의 아이들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그 옛날 무성했던 해송숲은 길게 한줄로 그 옛날의 흔적만 남아있고, 끝없이 넓었던것 같은 해변의 백사장도 가느다란 외줄기길처럼 변했다. 외국의 여느 해안가 도시 풍경과 다름없는 현대적 고층빌딩 숲으로 변신한 바닷가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 옛날 고즈넉했던 바닷가의 풍경 속에는 철로가 하나 길게 나 있었는데 동해남부선이라고 불렸다. 그 기차를 타 볼 기회는 없었지만 기찻길이 있었던 것은 기억을 한다. 여름은 물론 다른 이야기였겠지만 그 시절의 겨울 바닷가는 파도소리 바람소리 간혹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말고는 뚜렷한 소리가 없었을 것이다. 퇴적기관처럼 흔적만 남은 그 철로변에는 100층짜리 건물 세 동이 세워지고 있고 공사장은 소음으로 부산하다. 철로는 용도를 다한 대신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가 불빛을 반짝인다.



조용한 묵화같던 풍경은 수십년이 지나는 사이에 건물과 소음과 인파로 채워지고, 글로벌한 풍경으로 변모했지만 여전히 시간이 정지해 있는 언덕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호텔로부터 달맞이 언덕까지 짧은 거리를 나를 태워다 주신 택시 기사님은 내 속마음을 눈치채셨던지 여전한 곳은 이 언덕 뿐 이라는 말을 건넸다. 이 언덕에서 달을 바라본 기억은 없지만, 조용한 주택이 대부분이고 골목 사이 사이 작은 갤러리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화려하고 붐비는 바닷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이다. 완만한 언덕길에는 나무 그림자만 너울댈 뿐 소음은 사라지고 햇살이 가득 퍼지는 조용한 산책로는 아직까진 그 모습 그대로다. 고즈넉 고즈넉... 그리고 고즈넉.



그때는 이름도 없이 숨어있는 갤러리들에서 재미난 전시들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 목조로 지은 전망대 앞에서 딱 한송이 해당화와 눈이 마주쳤다. beach rose라는 영어 이름을 가졌다. 육지의 장미와 달리 녹색의 잎이 순하고 부드럽다. 경사진 언덕을 걸어 내려가다 또 딱 한송이 피어있는 백합도 만날 수 있었다. 2019년 11월의 바닷가에서는 백합도 보고 해당화도 만났다.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축구 선수 기영이는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를 정성스럽게 부르곤 했다. 축구를 잘 하던 까무잡잡하던 기영이가 해당화를 불렀던 것은 내게는 의외의 사건이었다.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기영이와 함께 축구를 너무 너무 잘하던 최용수는 선수시절을 거쳐 유명한 감독이 되었고, 선수들 만큼이나 공을 잘차던 서글 서글한 성격을 가졌던 골키퍼도 미디어에서 가끔 이름을 듣는다. 최용수는 놀라운 운동신경으로 초등학교때부터도 유명했는데, 말라깽이 초등학생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가 종종 티비에 얼굴을 비칠때면 늘 웃음이 난다. 에구 너 어느새 나이를 그렇게 먹었니... 얼굴은 하나도 안변했구나.



목조의 전망대도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언덕 아래 바다를 마주보는 언덕 경사길도 예쁜 공원으로 단장되어 있다. 바다의 가장자리에는 옛날 동해 남부선 철로가 지나던 철로가 있었는데, 철로는 이제는 주민들을 위한 포장된 산책로로 변신하는 중이었고, 나는 거기로 내려가 보고 싶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자니 너무나 낭만적으로 보여서 그리로 내려가는 길을 꼭 찾아야 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공사중이라 철책이 가로 막혀 있었고, 그 철책 아래로는 거북선 횟집의 간판을 단 건물이 나타났다. “거북선 횟집”의 느닷없는 등장은 희극적이었다. 우연히 동행한 동네 주민덕분에 달맞이 언덕에서 걸어 내려 백사장과 미포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했다. 거북선 횟집은 미포의 길 끝에 있었다.


전날 밤엔 쉐브론에서 프로잭트 매니저로 해운대에 파견나가 있는 동네 친구 마리엘라와 수년만에 재회를 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마리엘라는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와 학사 석사를 마치고 휴스턴에 자리 잡고 살고 있었고, 한국에서 건너온 나는 우연히 그녀와 같은 동네에 이웃하여 살게 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녀는 내가 살던 한국의 이 동네로 파견을 나와 여러해째 살고 있고, 나는 방문객으로 그녀의 현주소를 찾게 된 상황이다. 해운대 아이 파크의 거주자임을 자랑스러워하는그녀가 주인이었고 잠시 다니러 온 내가 객이었으니 이것은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거주지를 바꾸어 살고 있는 재미있는 우연이라니.... 한국 체류기간이 한해 밖에 남지 않아서 무척 아쉬워했다. 발전한 한국의 믿을 수 없는 다이나믹과 효율성을 무척 좋아했고, 한국의 미래가 자기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도 전했다. 크리스마스엔 휴스턴으로 돌아와 함께 파티를 하기로 했다. 가족 친지 사촌 모두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엘라의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파티는 가족 친지 사돈까지 모두 함께하기 때문에 엄청 재미난데, 그녀의 코미디언 같은 남동생들을 다시 만나게 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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