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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기

웨스트 맨하탄의 건축 붐

the shed and vessel

by 윤현희

그것도 인공지능이라면 인공지능의 소행일 수 있겠다. 평소에 차에 오르면 목적지까지의 시간을 구글맵이 땡 하고 일려 준다. 맵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동 설정되어있는 전화기 속 프로그램은 오늘 이 시간 내가 어딜 갈 것인지를 알고 있고, 목적지까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내가 자동차에 오르는 순간 계산해서 알려준다. 청하지 않은 정보전달에 첨엔 기분이 이상했지만 이젠 습관이 되어 예사롭게 넘기고 있었다.


맨하탄은 격자모양의 질서 정연한 지상세계와 자칫하면 길을 잃거나 전철을 잘못 탈 수도 있는 지하세계의 정글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곳에 발을 디딘 지 이틀째부터는 맵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갑자기 맵이 interactive 하게 작동하며 분 단위로 갈 길을 안내해주고, 어느 골목에서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전철 도착 몇 분 전임을 시시각각 알려주고, 도착한 전철에 뛰어 들어가라고 알려준다. 또 전철 내 인구밀도가 얼마나 되는지도 보고하라는 선택권도 하달한다. 구글맵이다. 서울에 가면 모눈종이만 보여주던 구글맵이 뉴욕에 오니 실시간 가이드 행세를 한다. 뉴욕 사람들은 시간을 참 타이트하게 정확하게 관리하며 살겠구나 했다. 음성까지는 제공하지 않던데 곧 음성지시까지 제공되면 전화기를 손에 들고 있지 않아도 되니 더 편리할듯하다.


그날 아침은 소호의 찻집에서 시작되었다. 실내가 푸른빛으로 장식되었고, 푸른 벨벳의 프랑스 풍의 앤틱 느낌을 주는 의자가 찻집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루 휴가를 내서 차를 마시러 갈 계획이라던 일에 지친 친구와 두 새해 만에 만났다.


철도가 다니던 하이라인의 북쪽 끝 허드슨 강변 쪽으로 굽어진 산책로의 원래 풍경은 탁 트여있었다. 그 옛날 비즈니스 타운이 지어질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낡고 먼지 색깔 가득하던 향수를 느끼게 하던 풍경이었는데, 몇 해 사이에 대형 건물들로 가득 차 버렸다. 허드슨 강을 안을 듯이 정면으로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은 그곳밖에 없었다. 공중에 떠있던 낡은 철로길을 따라 걷던 예스러운 정감은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지나간 역사의 순간이 되었다. 그 철로 위를 새로 생긴 the shed가 덮고 있었고, 물류 창고와 콘서트 장을 겸한다는 새로운 공간 개념의 그 건물이 완성되기를 나는 실은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 지어진 건물들은 근사하고 멋있지만, 멋있는 건 밖에서 볼 때였고, 비즈니스 오피스와 대형 몰이 들어선 실내는 전 세계가 대동소이했다. 홍콩의 ifc 내부와도 비슷했고, 서울의 잠실인지, 부산의 신세계인지, 휴스턴인지, 뉴욕인지 거기서 거기인 글로벌 브랜드의 가게들이 입점해 있었다. 하지만 레스토랑은 역시 기상천외한 맛들을 소개했고, 계속해서 잔머리 굴리기를 멈추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감탄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하이라인을 남쪽으로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고무줄을 꼬아서 양쪽에서 잡아 늘인 것 같은 건물은 자하 하디드의 설계다. 서울의 동대문 플라자를 설계한 그녀.


이렇게 옛날 철도가 다니던 고가 철로 양쪽으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풍경을 보면서, 센트럴 파크에서 보았던 무척 가늘고 무척 높았던 작대기 건물의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이 꼴 저 꼴 안 보고 나 혼자 고고히 공중에 떠서 살겠다는 거다. 프라이버시에 비용이 많이 드는 뉴욕이다.

하이라인 남단에 이르면 휘트니 미술관을 만나는데 실은 이번 방문의 목적은 그곳에 있는 호퍼 님을 만나는 일이었다. 에드워드 호퍼 님.

반가운 매화는 벌써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고, 자작나무는 무섭게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다. 이렇게 눈알을 부릅뜬 자작나무는 처음 본다. 기괴스러웠다.


렌조 피아노 씨가 설계했다는 휘트니

구조 전문가의 견해는, 구조를 알지도 못하는 렌조 피아노란 건축가가 무거운 재료로 비싸게 건물을 짓는데 아름답지도 않다고 불평을 하시는데.... 아름답지 않은 건물을 설계한다는 데는 나도 동의가 된다.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든 프랑스의 퐁피두가 아름다운 건물이라 생각해 본 적 없다. 런던의 샤드도 그가 설계했는데 서울의 롯데 타워와 비슷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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