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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1. 2020

탄성을 잃은 용수철

번아웃 증상  - 그레고르 잠자는 왜 벌레가 되었나


카프카는 1912년에 변신을 썼다. 소설 속에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 일했던 젊은 세일즈맨이 하루아침에 흉측한 갑충으로 변신한다. 변신으로 인해 가족으로부터의 소외와 세상과의 소통 단절을 경험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에 쓰였다. 유럽에서는 자본주의의 고착화로 인한 계급 갈등이 고조되고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아시아의 동쪽 끝에선 조선이 일본에 합병당하는 국치를 겪은 2년 뒤의 시점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로 변신한 후에도 황당해진 자신의 처 지보다는 사회가 정한 규칙에서 도태될까, 열차시간에 늦을까 걱정한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유지한다. 가족들은 벌레로 변해버린 잠자를 부끄러워하고 멸시하고, 인간과 벌레 사이의 무엇인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잠자는 결국엔 자신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공허하고 평화로운 생각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찾아온다.


100년 전에 산업화된 사회에서의 인간의 실존적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은 이런 번득이는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카프카는 천재임이 분명하다. 그가 그려낸 벌레가 된 한 사내의 이야기는 평론가들이 흔히 이야기하듯이 "현대 문명이 낳은 인간성의 상실,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소외감, 인간의 실존을 탁월하게 그리고 있으며 인간이 도구로 전락한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소외를 다루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카프카는 은유를 사용해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 전과 변신 후의 심리적 양상을 탁월하게 묘사해 내어 문학의 신화가 되었지만, 21세기의 심리학자들은 구체적이고 콘크리트 한 언어로 그레고리 잠자가 벌레로 변신하게 되는 은유를 설명한다. 벌레가 된 잠자의 심리적 상태를 소진 증후군이라고 번역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변신은 소진 증후군의 탁월한 사례집이다. 소진이라기보다는 심신의 탈진 증후군이라고 하는 것이 전달력이 뛰어날 것 같다.


 벌레로 변하기 전 그레고르 잠자의 전성기는 "동료들보다 몇 배의 열성을 가지고 시작하여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말단 직원에서 출장 영업 사원으로 승진했다. 출장 영업 사원은 일에 성공하기만 하면 즉각에서 커미션 형태로 수중에 돈이 들어왔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그 돈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가족들은 모두 행복해서 입이 벌어졌다.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


소진증후군은  매사에 의욕적이고 열정적이며 목표지향적인 사람들이 의외로 걸리기 쉬운 덫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을 적극적으로 도맡아 하다 보면,  자신들이 얼마나 과도한 업무를 수행을 하고 있는지, 업무량은 얼마나 많은지를 망각하고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두 해 슬그머니 우리를 짓눌러오던 증상들을 다독여 가며  잠에서 깨던 어느 날 아침, 당신은 마음에서 무언가가 툭하고 끊어져 버리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탄력을 자랑하며 줄었다 늘었다 하던 스프링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탄력을 잃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순간. 또는 심하게 늘어나다 툭 끊어져버린 고무밴드가 되는 순간.  나는 늘어난 용수철이기도 했고 끊어져 버린 고무 밴드 이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벌레로 변신한 자신을 발견한 순간..... 만성으로 축적된 스트레스가 심신의 탈진상태를 유발하고, 마음은 냉소적이고 냉담해지고, 환경으로부터 소외되고, 스스로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를 경험한다.



소진 증후군 상의 핵심적인 특징들 심신의 에너지 고갈, 냉소와 냉담한 마음,  업무의 비효율성이 만발한 상태에서는 -벌레로 변해 버린 상태에서는- 조직에서나 사적인 생활에서나 더 이상 효율적 기능을 수행하기가 힘들다. 벌레로 변해 자신이 인간이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 전에, 다음의 증상들이 나타난다면 스스로 삶의 페이스를 변화시켜보자. 다음은 사이 칼러지 투데이에 소개된 (Sherrie Bourg Carter, 2013 년 11월 호 ) 21세기의 심리학적 용어로 소개하는 번아웃 증상들에 대한 설명이다.



신체적 & 정서적 에너지 고갈 증상



1. 만성 피로


증상의 초기단계에서는 에너지 고갈이나 하루 종일 피곤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있다. 상태가 진행이 되면 신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 에너지가 고갈된 듯한 느낌이다.


2. 불면증


초기 단계에서는 잠들기가 곤란하거나, 잠을 깊지 자지 못하고 깨는 경우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있다. 후기에 이르면 지속적인 불면증, 악몽 등을 경험한다. 수면 장애의 강도는 소진의 정도와 비례한다.



3. 건망증, 주의 집중하기가 곤란


초기 단계에서는 주의집중이 곤란하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자주 잊어버리는 기억력 감퇴를 경험하다가 정도가 심해지면 일을 마무리짓기가 어려워지는 상태가 된다.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하므로 업무가 쌓이기 시작하고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4. 신체적 증상


흉통, 심장박동의 증가, 호흡 곤란, 복부 통 중, 어지러움, 기절하는 경우도 있고 두통이 심해진다. 이 모든 증상들에 대해 의학적 진단을 명확히 해야 한다.


5. 각종 질병이 생기기 시작


신체의 에너지가 고갈됨에 따라 면역체계가 약해지고 이는 감기, 몸살, 다른 면역 관련 의학적 증상들을 불러온다.


6. 식욕감퇴


7. 불안증상


초기 증상으로는 약한 불안, 긴장, 초조, 안절부절못한 느낌을 경험한다. 지속되면 불안증상으로 인해 일의 생산성과 효율을 저해한다.


8. 우울증


초기 증상으로는 슬프거나 의욕상실 등을 종종 경험하고, 죄책감 무기력감 등도 경험한다. 상태가 악화되면 덫에 걸린 것 같은 기분, 심각한 우울감 등을 경험하고 차라리 내가 없어지는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상태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상태이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9. 분노


초기에는 분노감이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긴장이나 짜증 신경질 등으로 나타난다. 상태가 진행이 되면 가정에서나 회사에서의 분노 발작이나 심각한 논쟁 등의 형태로 악화된다. 분노의 감정에서 비롯된 폭력 행동을 보이게 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냉소와 냉담한 감정


1. 흥미 상실


초기단계의 증상으로는 회사에 출근하기 싫고, 회사에서는 퇴근시간만 기다린다. 무언가 적절한 개입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일상에서의 전반적인 의욕상실, 흥미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에서는 프로젝트에 관여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피해 다닌다.



2. 부정성


초기에는 부정적인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매사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보기 시작한다. 상태가 악화되면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동료들이나 가족들에 대한 신뢰도 잃어 가게 되고 고립무원 감,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다.


3.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초기에는 점심 식 사나 회식자리를 피하는 등 대인관계를 소극적으로 피하기 시작한다. 상태가 악화되면, 누구와도 일 관계 외에는 대화하기 싫어지고 이야기가 길어지거나 일 이외의 이야기를 하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4. 단절감


주변 환경이나 타인들과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형태로 나타나거나, 악화되면 일과 관련된 스거나 책임들로부터 스스로를 감정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외면한다. 병가를 자주 쓰고 전화나 메일에 답신을 하지 않고, 자주 지각을 한다.


비 효능감과 성취감을 못 느끼는 증상



1. 냉담함과 무기력감


전반적으로는 우울감과 부정적인 감정들과 유사하다. 이 감정은 제대로 되어가는 일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상황이 악화되면 이런 기분은 만성적으로 굳어진다


2. 늘어나는 짜증


짜증은 비 효능감, 무가치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비롯되는데, 본인이 예전에 하던 것만큼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더하게 만든다. 초기엔 이 증상이 대인관계를 해치지만 이 증상이 악화되면 대인관계와 커리어를 망치게 될 수도 있다.


3. 생산성의 결핍과 무능함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당신은 오랜 시간 과제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향상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과제를 끝맺지 못하고, 해야 할 일들의 내용과 목록은 점점 길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물론 직업을 가지고 회사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증상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람쥐 쳇바퀴도는 듯한 과도한 경쟁 사회, 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덫에 빠지기 십상이다. 위에 설명된 여러 가지 증상에 공감을 한다면 한 번쯤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과열된 엔진을 쉬어줄 필요가 있다. 파위 스위치를 끄고 연결된 전력을 끊는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고, 어쩌면 불가능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스스로를 조금씩 풀어줄 필요가 있다.


일에 내몰리며 앞만 보고 달리던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태가 된 후에야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적’이 되었다. 벌레로 변태하여 인간 세상에서 물러선 후에야 인간적인 사유를 시작한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고, 사랑하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에 감동할 시간이 마침내 돌아온다. 가족들의 일과를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그레고리 잠자의 변신 이야기는 카프카가 살았던 당대보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의 지구인들에게 더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소설이며, 개인이 겪게 되는 번아웃에 증상에 대한 심리학적 은유로 매우 뛰어난 사례집으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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