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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1. 2020

공황장애:인생의 기어를 변환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

근년 들어 봄이 되면 이 도시는 큰 물에 잠기곤 한다. 올해는 유독 심한 비가 내렸고, 도시전체가 물에 잠겼으며,주말에 내린 큰 비 덕분에 월요일 휴교를 했던 교육청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급기야는 일주일간이나 휴교를 하는 전례 없는 사태를 맞았다. 옆 동네 호숫가로 난 산책길은 물에 잠겨거대한 호수에 나무의 정수리만 떠있는 풍경을 연출했고, 호수 뒤의 숲에서는 불어난 물이 폭포로 변해 호수로 쏟아져 내렸다. 도시 전체가 비상사태를 맞았던 그 무렵의 비 그친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볼 일을 보러 나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인 J 선생께서 나를 찾는다는 말을 건넸다. 


연세가 60 이 넘으신 J 선생님은 20대에 미국으로 유학온 대만 출신의 엔지니어인데 지난 수 십년간 세계를 날아다니며 엔지니어로서의 기량을 펼쳐왔고 재직중인 회사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계시는 분이다. 물론, 일중독이다. 엄격한 식생활을 유지하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던 J 선생님은 뜻밖에도 지난 겨울을 나면서 대동맥 혈관 확장술을 받았고 , 그 전에는 하나뿐인 외아들을 출가시켰고, 지난 해 봄 이맘때는 귀가길에 갱들에게습격을 당해 어깨가 골절상을 입는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그분이 겪은 일련의 다사다난을 전해 들으며, 그 경험들이 불러왔을 심리적 압도를 나 혼자 짐작하고 있던 중 공황장애 panic attack 의 증상을 겪으시나 보다 생각하고 전화를 드렸다. 더구나 작년 이맘때 갱의 습격을 받았고, 올해 4 월은 동네가 물에 잠기도록 비가 내리는 상황이니.... 해마다 때가 되면 심리적 트라우마를 다시 겪는 공황 발작 (Anniversary Reaction) 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J 선생님은 처음 경험하는 심리적 위기 상황에서 급히 도움을 청할 사이칼러지스트가 필요했을 것이고, 마침 가까이에 있는 내가 떠올랐던 것이다. 


전화벨이 울리고 J 선생님의 저음이 들려왔다.

"숨은 쉬실 수가 있으신가요? 일단 침대에 누우시고 호흡하기가 곤란하시면, 마음속으로 사각형을 그리면서각 변을 따라 들숨,날숨을 천천히 반복하세요. 아니면 종이봉투를 입에 대고 천천히 호흡을 하시고요. 지금 상태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며칠간 불면증을 앓았고, 현재는 안절부절 불안하고 어떤 것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아침에 세금보고와 관련한 계산을 하던 중,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으며 평소와는 달리 마음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고 마음을 달래는 목소리로 상태를 보고하셨다. 당신은 충분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니 최근에 겪은 혈관 수술이나 지난해에 겪은 불의의 습격 정도로 마음이 어지러울 내가 아닌데.... 어째서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며칠 째 계속되는지 난감해하시는 듯했다. 이해를 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신건강과 관련한 심리학적 설명을 별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시안 특유의 문화는 아시안을 제외한 세상이  다 아는 습관이다. 


그분이 엔지니어시므로, 다른 이야기보다는 사람의 두뇌 구조를 간략히 설명하고 지금 경험하고 있는 당혹스러운 심리적 상태를 유발한 뇌의 화학적 신호 이상을 설명드리는 것이 이해를 도울듯 했다. 그리고 그 두뇌의 화학작용이 신체의 호르몬 체계에 주는 영향과, 그 패턴이 장기화되었을 때 면역체계에 일어날 수 있는 변화도 설명드렸다. "안 믿고 싶으실지 모르지만 심리적인 불안도 역시나 우리 몸이 일으키는 작용이예요." 그리고 당신이 겪고 있는 공황 상태에 대한 원인을 짚어보고 심정적으로 공감하고 있음을 알려드렸다. 일례로 요가 클래스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나를 찾아왔던 공황발작 panic attack 의 경험을 풀어놓았다. 업무상의 "이메일"이 유발하는 스트레스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전미 공통의 키워드가 아닐까. 공황 증상  관련한 키워드는 이메일이었다. 휴가 중에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회사로부터 온 이메일에 답장을 하는 그분의 일중독을 내가 알고있는 이유는 남편 역시 비슷한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해 전 나는 요가를 하던중에, 낮에 발송한 여러통의 이메일 중 단어선택 하나가 잘못되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루 말할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며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고작 단어 하나로 정신의 통제가 무너진 순간, 정신은 손에서 놓친 수소 풍선처럼 허공을 향해 목적없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손과 발이 굳어졌고 체온은 급강하했다. 체온이 떨어지면서 몸이 떨리자 요가 동작을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다. 나는 스튜디오를 천천히 빠져나와 주차장에 주차된 차에 드러누워 체온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믿지기 않게 황당했던 통제력 상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을 하시기가 힘드시면 당분간 휴가를 내고 약물처방을 겸하시면서, 개업 중인 사이컬러지스트를 지속적으로 만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한 시간에 걸친 응급 상담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팔로우 업을 하면서도 향후 대책에 관한 이런저런 두런 두런 이야기는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본인의 상태를 이해하기 편하게 공황 장애의 기저에 깔린 이 신경학적 연계 과정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드렸다.  


그리고 두 주 후, 그때까지도 병가를 내고 계시던  그분을점심 식사에 초대한 것은 우리부부였지만, 정작 식사를하게 된 곳은 그분이 단골로 가시는 근사한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평일이었으니 짧은 점심을 할까 했으나, 또 오랜 동료인 네델란드 출신의 엔지니어까지 합석을 하면서 자리가 커졌다.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이자리를 유쾌한 분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손에 땀이 삐질 흘렀다. 


"나 오늘 사이 칼러지스트 만나러 가기로 한 약속 취소하였습니다."
 "오늘은 저랑 세션을 하시려고요?"
 "그런 셈이죠."하하하..."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J선생은 두 개의  약병을 내보이며,이건 하루 한 알,이건 하루 두 알 먹는건데, 적응상태는 꽤 괜찮은것 같다고 조금은 장난기 섞인 웃음을 보이셨다. 또 다른 엔지니어는 자신은 십년 전에 하루 한알짜리를 복용하기 시작했고, 하루 두알 짜리는 스스로 조절해가며 간간이 복용하는 중이라고 대화를 이어갔다. 세계 곳곳으로 부터 수천만불짜리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그 일을 감독해 나가는 세 사람의 엔지니어들이 매일같이 느낄 중압감과 책임감을 상상해 보니 나는 한숨만 났다. 그 세명의 사나이 중 아직 약병을 들고 있지않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J선생은 지금의 남편을 보면 마치 십오년 전의 자기를 보는것 같다고 나를 향해 경고를 날리신다.....으음.... 남편은 그 사태가 올까봐 예방적 처방으로 저녁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고 말해주면서 , 같이 그림 그리시자고 권유를 해 보았다. 


 만성 스트레스가 몰고 온 심리적 파국, 공황장애의 예방과 처방에 대한 논의가 오갔고, 이분들은 오피스 밖에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살아남기 위해 릴렉스~~ 릴렉스~~ 하는 방법을 권해보던 점심식사 자리였다. 평생  지속해 온 일중독의 습관.그리고 최근의 혈관수술과 공황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J 선생의 히스토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비슷한 사례가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이경규 씨에게서 찾아진다. 개그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지나가다 들었다. 좀 더 세월이 흐른 뒤에는 가슴의 통증으로 심혈관 수술을 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일중독인 사람들의 성격에 관해서는 대중적인 인식의 합의점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성격과 심혈관 질환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할 때 심리학에서는 대화의 편의를 위해 type A personality 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꾸려 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성격으로, 철두철미, 매우 과제 지향적이고, 융통성 별로 없으며, 강박적으로 몰두하는 습성이 있으며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으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일이 계획대로 되도록 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 이분들의 교감신경계는 늘 아드레날린 러시를 이루며 전투대세를 갖추고 있는 셈인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신체는 물론 장기의 활동패턴 역시 늘 긴장해 있고, 혈관이 수축되고 혈압이 상승해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 그러다보면어느 날인가는 질식상태로 막혀버린 혈관을 뚫어주는 수술을 해야 할 때가 오기도 하는 것이다. 반대인 type B personality 는 예술가나 여행가들의 느긋함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그래서 우리는 글쓰기를 즐기며 비유형의 스타일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누구나 어느 한쪽으로의 경향성은 보이겠지만, 각자가 처해진 삶의 현장에 따라 우리는 A 와 B 의 스펙트럼 상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닐까. type A personality 가 주도하는 자기 삶의 현장이 너무 과열이 되었을때,우리머릿속변연계에위치한불안과우울,분노통제센터인 아미그달라 (편도핵)는, 어느 날 갑자기 "이건 아니야. 이럴 순 없어!"라는 거부의 몸짓으로 화학적 시그널을 시도 때도 없이 방출하기 시작하고, 그 화학적 불균형에서 비롯되어 엉켜버리는 몸과 마음이 교란된 응급상황을 우리는 공황의 습격 panic attack 패닉 어택이라 부른다. 약한 불안감 우울감 분노감도 역시 조금씩 동반이 된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가, 불시에 공황의 습격을 몇 차례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삶의 기어를 저속으로 변환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은 고 3 교실을 방문하시며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기를 독려하시곤 하셨다. 재기 발랄 장난기로 무장한 그때의 우리들 중 몇몇은 당돌하게도 "선생님, 우린 가늘고 길게 갈 건데요!"라고 말대답을 하곤 했다. 그때의 우리는 치기와 반항으로 "가늘고 길게!"를 외쳤지만, 지치고 분노한 아미그달라가 내뿜는 그 패닉상태를 유발하는 신경전달 물질의 교란을 경험하기 시작했다면 이제는정말로 "가늘고길게"갈수있도록인생의기어를변환해야할 때가온것이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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