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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1. 2020

불안장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학기 초에는 꽤나 소심했던 A가 학기 후반부로 갈수록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중, 오늘 수업에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가끔 공황발작 (panic attack 패닉 어택)을 경험하지만, 그보다는 우울과 불안 장애로 이미 약을 복용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패닉이 일차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학기 초부터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또 다른 여학생 B는 손을 들더니, 자신은 일반화된 불안 장애 generalized anxiety disorder가 있다고 했다. 내가 웃으며, "진짜야? 누가 진단한 거지?"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의사가 진단했으며 자신도 고등학교 때부터 약물을 복용 중이라고 했다. 너무 솔직하고 갑작스러운 자기표현들에 살짝 당황스러워지고 있는 중에,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들어 말한다. 자신은 폐소 공포증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고 계단을 이용한다. 강의실에 8층이 아니라 4층에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아, 얘들아... 어떡하니... 대학의 심리학 수업 중 오가는 대화의 내용들이다. 오늘의 주제는 정신과적 장애와 병리에 관한 내용들이다. 비정상성 또는 이상 abnormal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관점의 문제에 답하는 것으로 시작해 불안 장애에 대해 알아보며 학생들 자신들이 일상에서 경험한 바를 수업 내용과 연결시키며 토론과 자유로운 대화로 불안장애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중이었다.


이제 겨우 열아홉, 스무 살이 된 적지 않은 수의 젊은 학생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불안장애를 겪고 있으며 약물 처방을 받아 증상들에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학기들에서도 확인이 되었던 바다. 이는 실은 좀 놀라운 사실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정신적 고난의 역사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주저나 망설임이 없다는 것이다. 어째서 이 아이들은 자신의 정신적 고난을 담담하게 수업 중에 공개하는 것인가? 실은 그렇다. 무슨 잘못된 일을 해서 불안하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려고 하다 보니 겪게 되는 일종이 비용이기에, 본인들이 부끄러워하거나 숨겨야 할 것은 아니니까..... 미국 대학생들의 정신건강문제에 관한 한 연구 결과는, 지난 10년간 대학생들의 우울과 불안장애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고 하며 특히 2006년 이후부터는 대학생들이 우울장애보다는 불안장애를 더 많이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 한다.


무엇이 그대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학교"라고 대답했다. 강의 듣는 과목들을 성공적으로 이수하고, 원하는 학위를 받아 성공적으로 졸업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기초에 받아 든 강의 계획서에 적시된 과제들은 너무나 많고, 각 과목에서 지정한 규칙과 규정들은 무척이나 세세하고 엄격하다. 심리학 개론을 강의하는 내 수업은 강의 계획서가 열한 장에 달한다. 학생들은 보통 한 학기에 네다섯 과목을 듣고 있으니, 총합 50-60장에 달하는 강의 계획서에서 제시된 과제의 내용과 타임라인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어겼을 때 돌아오는 결과와 좌절감이란 매우 혹독하다. 과제는 매우 다채롭게 제시된다. 리서치를 해서 두개 이상의 페이퍼를 써야 하는 과제도 있고, 매주 주어지는 숙제와, 수업시간에 토론 참여와 프레젠테이션, 중간/기말이 대신 학기 당 네 번에 걸쳐 치러지는 주요 시험들, 그리고 돌발 퀴즈까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도 이렇게 온갖 구색을 갖추어 커리큘럼을 짜는 일은 꽤나 피곤한 일이다. 이런 상황은 학생들을 초긴장으로 몰아가고, 학기 중에 저지르게 된 실수에 대해서는 그를 만회할 두 번째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것이 미국의 학교들이다. 스스로 생활할 최소한의 재정적 지원을 확보해야 하므로 학생들은 크든 작든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고, 학교와 일을 병행으로 인해 절대적인 수면부족을 호소하기도 한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감당해야 하는 불안의 총합이 주는 무게. 나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나의 정신은 불안에 잠식되어 있었다. 길고 긴 과정의 엄격함과 타이트함에 더해, 세컨드 랭귀지로 영어를 구사하면서, 말과 글로 업을 삼는 응용 심리학의 최고과정을 공부한다는 일은 편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더불어, 개인들의 극도로 사적이며 컨피텐샬한 문제을 다루는 전문가로서의 행동 코드를 체화하는데 무척 고된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했다. 환자의 진료 노트와 평가 보고서는 클리닉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보안 사항이었으므로 새벽 두 세시까지 클리닉에 앉아서 보고서를 완성해야 했던 날들의 고통은 나를 거의 paranoid 상태로 몰아갔다. 예를 들자면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앉아서도, 내가 쓴 환자 보고서의 흔적이 혹시 실수로라도 클리닉의 컴퓨터에 남아 누가 보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만 이상했던 것은 아니고, 수많은 동료 선배들이 비슷한 증상을 이야기하면서,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에 의지하며 공부를 해 나가고 있었다.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클라이언트의 약물치료에 관한 가족력을 조사할 때면, 눈이 반짝 떠지곤 했다. 클라이언트에게 효과가 있었다던 약물 이름을 기억해 놓고 언제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약을 복용해 보지는 않았다.  한국에서와는 달리, 미국의 고등교육 현장에서 보이는 이 같은 불안장애라는 에피데믹은, 문화 특징적인 것인가 또는 인종적 특징 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 이십 대를 보낸 나의 청춘도 많이 아프고, 불안하고, 암울했지만, 친구들끼린 고민 없고 마음이 안 아픈 청춘은 타락한 것 아니겠는가 하면서 꾹꾹 눌러 참고 견뎌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누군가도 말하지 않았나. 상당히 영리한 대중가수 장기하는 이를 꼭 짚어 노래로 불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네가 깜짝 놀라, 두 발 뻗고 잠잘 순 없을 거다"라며, 자긴 "별일 없이 산다, 별다른 걱정 없다고~~" 정말 깜짝 놀라게도 속 편한 소리를 했다.  

한국에서 20대 안개 속을 걷는듯한 불안과 우울을 겪어낸 후에조차도,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남의 땅에서, 남의 말로 공부하면서 겪는 불안은 20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더군다나 남편과 아이 둘을 뒷바라지하는 엄마이자 주부로서의 역할은 그 어떤 것에도 우선권을 뺏길 수 없는 일이었기에 두 도시를 하루에 오가며 두 가지 역할을 하는 동안,  내가 숨 쉬는 공기는 불안과 초조로 벌겋게 달구져 있었다. 공황의 습격은 꿈결에도 머리맡을 찾아오곤 했다. 그런 경험이 지속되면서 불안은 어느 틈엔가 내 영혼을 잠식하고 있었으며,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자아 실종 상태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픈 것이 청춘의 정체성이라 오해하며 한국에서 20대를 보낸 내 세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요즘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라는 똑 부러진 말을 누가 한 것 같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아프면 환자이고, 아프면 치료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이다.  미국의 20대들과 미국인 전반은 마음이 아프면 환자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약물처방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픈 것은 죄도 아니고 숨길 것도 아니니까.

심리적 문제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다. 불안 장애는 세로토닌이라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 이상에서 원인을 찾는 의학적 관점도 있고, 사태를 침소봉대하며 받아들여 병을 키우는 개인의 사고방식이 (catastropizing though ) 문제인 것으로 보는 인지적 관점의 해석이 있고, 또는 잘못 익힌 행동방식이 불안을 야기하는 것으로 보는 행동주의적 관점이 (behavioral perspective) 있다. 예를 들면 특정 대상에 대한 비합리적인 공포를 느낀다든지 하는 포비아를 잘 설명하는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병이 생기는 이유는 문제를 가진 개인에게 있다기보다는, 개개인들이 인내할 수 있는 고통의 역치를 넘어서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퍼붓는 가정, 사회, 문화적 환경에 있는 있다는, 설명이 있다.

그러면 이중 어떤 원인이 미국 사회에 넓게 번져있는 불안장애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의 많은 이십대도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고민들과 미래에 대한 불안, 취직 걱정 등을 안고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불안장애나 우울장애로 약물치료를 받는 동기 선배들은 주변에 보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의 이십대들 역시 불안장애 우울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많지 않을것이라 생각된다. 이 문제에 대해 통계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으나, 나의 경험을 근거로 한국의 현실이 아직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가정할 때, 미국의 적지 않은 비율의 대학생들이 불안과 우울 등의 정신적 문제를 겪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는 관점은 무엇인까? 미국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보다 세로토닌 분비체계가 취약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들이 한국의 대학생들보다 나약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스스로 이겨보겠다는 정신력과 자아 통제력이 약해서 인가? 아니면, 미국이라는 사회가 너무 빡빡하고 치열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여러 가지 요인들의 복합적인 결과겠지만, 지난 10년간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보자면, 메뉴얼화된 규범과 법규를 강요하며 생활 구석구석을 간섭하는 사회적 통제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해석은 아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공황장애인생의 기어를 변환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


근년 들어 봄이 되면 이 도시는 큰 물에 잠기곤 한다. 올해는 유독 심한 비가 내렸고,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으며, 주말에 내린 큰 비 덕분에 월요일 휴교를 했던 교육청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급기야는 일주일간이나 휴교를 하는 전례 없는 사태를 맞았다. 옆 동네 호숫가로 난 산책길은 물에 잠겨 거대한 호수에 나무의 정수리만 떠 있는 풍경을 연출했고, 호수 뒤의 숲에서는 불어난 물이 폭포로 변해 호수로 쏟아져 내렸다.  도시 전체가 비상사태를 맞았던 그 무렵의 비 그친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볼 일을 보러 나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인 J 선생께서 나를 찾는다는 말을 건넸다. 


연세가 60이 넘으신 J 선생님은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오신 대만 출신의 해양엔지니어인데 지난 수 십년간 세계를 날아다니며 엔지니어로서의 기량을 펼쳐왔고 자신이 속한 회사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계시는 분이다. 물론, 일중독이다. 엄격한 식생활을 유지하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던 J 선생님은 뜻밖에도 지난 겨울을 나면서 대동맥 혈관 확장술을 받았고 , 그 전에는 하나뿐인 외아들을 출가시켰고, 지난해 봄 이맘 때는 귀가 길에 갱들에게 습격을 당해 어깨가 골절을 당하는 불의의 사고를 입은 역사가 있다. 그분이 겪은 일련의 다사다난을 전해 들으며, 그 경험들이 불러왔을 심리적 압도를 나 혼자 짐작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아마도 panic attack을 겪으시나 보다 생각하고 전화를 드렸다. 더구나 작년 이맘때 갱의 습격을 받았고, 올해 4월은 동네가 떠내려가도록 비가 내리는 상황이니.... 공황의 Anniversary Reaction 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J 선생님은 처음 경험하는 심리적 위기 상황에서 급히 도움을 청할 사이칼러지스트가 필요했을 것이고, 마침 가까이에 있는 내가 떠올랐던가 보다.


"숨은 쉬실 수가 있으신가요? 일단 침대에 누우시고 호흡하기가 곤란하시면, 맘 속으로 사각형을 그리면서 들 숨, 날 숨을 천천히 반복하세요. 아니면 종이봉투를 입에 대고 천천히 호흡을 하시고요. 지금 상태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요 며칠간 불면증이 있어왔고, 현재는 안절부절 불안하고 어떤 것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침에 텍스 보고와 관련한 계산을 하던 중,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으며 안절부절못하여지고 집중을 할 수가 없으며, 평소와는 달리 마음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고 완곡하게 상태를 보고하셨다. 당신은 충분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니 최근에 겪은 혈관 수술이나 지난해에 겪은 불의의 습격 정도로 마음이 어지러울 내가 아닌데.... 어째서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며칠 째 계속되는지 난감해하시는 듯했다. 이해를 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신건강과 관련한 심리학적 설명을 별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시안 특유의 문화는 아시안을 제외한 세상이 다 아는 습관이다.  


그분이 엔지니어이시니, 다른 이야기보다는 사람의 두뇌 구조를 간략히 설명하고 지금 경험하고 있는 당혹스러운 심리적 상태를 유발한 뇌의 화학적 신호 이상을 설명드렸다. 그리고 그 두뇌의 화학작용이 신체의 호르몬 체계에 주는 영향과, 그 패턴이 장기화되었을 때 면역체계에 일어날 수 있는 변화도 설명드렸다. "안 믿고 싶으실지 모르지만 심리적인 불안도 역시나 우리 몸이 일으키는 작용이예요." 그리고 당신이 겪고 있는 공황 상태에 대한 원인을 짚어보고 심정적으로 공감하고 있음을 알려 드리고자 요가 클래스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나를 찾아왔던 panic attack의 경험을 풀어놓았다. 이와 관련한 키워드는 이메일. 휴가 중에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회사로부터 온 이메일에 답장을 하는 그분의 일중독을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남편 역시 비슷한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 해전 나는 요가를 하던 중, 낮에 발송한 여러 통의 이메일 중 단어 선택 하나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며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던, 고작 단어 하나로 유발된 그 부조리하고 수소 풍선처럼 어디론가를 향해 마구 부유하던 이성의 통제력 상실, 공황의 습격,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업무상의 "이메일"이 유발하는 스트레스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전미 공통의 키워드가 아닐까. 일을 하시기가 힘드시면 당분간 휴가를 내고 약물처방을 겸하시면서, 개업 중인 사이컬러지스트를 지속적으로 만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한 시간에 걸친 응급처방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팔로우 업을 하면서도 향후 대책에 관한 이런저런 두런 두런 이야기는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본인의 상태를 이해하기 편하게 공황 장애의 기저에 깔린 이 신경학적 연계 과정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


그리고 두 주 후, 그때까지도 병가를 내고 계시던 그분을 점심 식사에 초대한 것은 우리 부부였지만, 정작 식사를 하게 된 곳은 그분의 단골집인 근사한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평일이었으니 짧은 점심을 할까 하였으나, 또 오랜 동료인 네델란드 출신의 엔지니어까지 합석을 하면서 자리가 커졌다.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이 자리를 유쾌한 분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살짝 느껴지면서 3초간 땀이 삐질 흘렀다.


"구름님아, 나 오늘 사이 칼러지스트 만나러 가기로 한 약속 취소하였습니다."

"오늘은 저랑 세션을 하시려고요?"

"그런 셈이죠."

"하하하..."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J 선생은 두 개의 약 병을 내보이며, 이건 하루 한 알, 이건 하루 두 알 먹는 건데, 적응 상태는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조금은 장난기 섞인 웃음을 보이셨다. 또 다른 엔지니어는 자신은 십 년 전에 하루 한알 짜리를 복용하기 시작했고, 하루 두 알 짜리는 스스로 조절해가며 간간이 복용하는 중이라며 대화를 이어갔다. 전 세계 곳곳으로 부터 수천만불 수억불짜리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그 일을 감독해 나가는 세 사람의 엔지니어들이 매일같이 느낄 중압감과 책임감을 상상해 보니 나는 한숨만 났다. 그 세명의 사나이 중 아직 약병을 들고 있지 않는 사람은 남편뿐인데, J 선생은 나를 향해 경고를 날리신다. 지금의 남편을 보면 마치 십오 년 전의 자기를 보는 것 같다고....으음.... 남편은 그 사태가 올까봐 예방적 처방으로 저녁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고  말해주면서, 같이 그림 그리시자고 권유를 해 보았다. 만성 스트레스가 몰고 온 심리적 파국, 공황장애의 예방과 처방에 대한 논의가 오갔고, 이분들은 오피스 밖에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살아남기 위해 릴렉스~~ 릴렉스~~ 하는 방법을 권해보던 점심식사 자리였다.  

평생 지속해 온 일중독의 습관. 그리고 최근의 혈관 수술과 공황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J 선생의 히스토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비슷한 사례가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이경규 씨에게서 찾아진다. 개그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지나가다 들었고, 좀 더 지나서는 가슴의 통증으로 인한 심혈관 수술을 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일중독인 사람들의 성격에 관해서는 대중적인 인식의 합의점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성격과 심혈관 질환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할 때 심리학에서는 대화의 편의를 위해  type A personality라는 개념을 적용한다: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일구어 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성격으로 철두철미, 매우 과제 지향적이고, 융통성 별로 없으며, 강박끼도 많이 있고,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으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일이 계획대로 되도록 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 이분들의 교감신경계는 늘 아드레날린 러시를 이루며 전투대세를갖추고 있는 셈인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신체는 물론 장기의 활동 패턴 역시 늘 긴장해 있고, 혈관이 수축되고 혈압이 상승해 있는 상태가 지속되고, 어느 날인가는 막혀버린 혈관을 뚫어주는 수술을 해야 할 때가 오기도 하는 것이다. 반대인 type B personality는 예술가나 여행가들의 느긋함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그래서 우리는 글쓰기를 즐기며 비형의의 스타일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누구나 어느 한쪽으로의 경향성은 보이겠지만, 각자가 처해진 삶의 현장에 따라 우리는 A와 B의 스펙트럼 상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닐까. type A personality가 주도하는 자기 삶의 현장이 너무 과열이 되었을 때, 우리 머릿속 변연계에 위치한 불안과 우울, 분노 통제 센터인 아미그달라 (편도핵)는, 어느 날 갑자기 "이건 아니야. 이럴 순 없어!"라는 거부의 몸짓으로 화학적 시그널을 시도 때도 없이 방출하기 시작하고, 그 화학적 불균형에서 비롯되어 엉켜버리는 몸과 마음이 교란된 응급상황을 우리는 공황의 습격, panic attack 패닉 어택이라 부른다. 약한 불안감 우울감 분노감도 역시 조금씩 동반이 된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가, 불시에 공황의 습격을 몇 차례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삶의 기어를 저속으로 변환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은 고 3 교실을 방문하시며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기를 독려하시곤 하셨다. 재기 발랄 장난기로 무장한 그때의 우리들 중 몇몇은 당돌하게도 "선생님, 우린 가늘고 길게 갈 건데요!"라고 말대답을 하곤 했다. 그때의 우리는 치기와 반항으로 "가늘고 길게!"를 외쳤지만, 지치고 분노한 아미그달라가 내뿜는 그 패닉상태를 유발하는 신경전달 물질의 교란을 경험하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정말로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도록 인생의 기어를 변환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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