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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y 21. 2021

자기만의 방 - 베르메르





대항해 시대의 후발주자로 국제 무역을 선도하던 17세기 초중반의 더치 공화국은 경제정치가 안정을 찾아가며 유럽 최고의 생활 수준을 자랑했다. 주택을 소유한 시민들이 증가하면서 사적인 공간의 중요성이 높아졌고, 공간을 장식하는 회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종교와 경제적 상황이 네덜란드와 비슷하던 당시의 영국에서 건축양식의 변화에 관한 문헌은 17세기 공간의 특성에 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영국의 건축사학자 지루아드 (Mark Girouard)는 17세기 영국의 건축물에서 개인 방, 밀실, 개인 휴식실과 같은 사적인 공간들이 중요성을 띠게 된 것에 주목하면서 사적인 내부 공간이 발전한 것을 개인주의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관련짓는다. 우리가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17세기 델프트 여성들의 사적인 공간, 혹은 남성학자들의 개인적 공간, 사교의 공간 등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여인의 손은 화면의 소실점과 관객의 눈높이에 위치하고 화면의 구도는 정교하다. 수평선과 수직선을 조화롭게 배치한 기하학적 질서는 아름답다. 관객의 마음엔 차분하지만 미묘한 감정의 동요가 인다. 그림 속 개인들은 특별하거나 거룩한 것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조용히 자기 일에 집중하는 일상의 편안하고 고요한 모습은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베르메르는 연극의 무대를 보는 듯한 공간을 화면 속에 창조하고 개인의 사적인 시간과 존엄이라는 주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움직임이 정지된 그림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면서도 거리를 유지한 채 그 공간을 관조한다.



자아가 성장하는 공간


Johannes Vermeer <The allegory of painting>1666–67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요하네스 베르메르 <회화의 알레고리> 1666–67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비엔나, 오스트리아

이전 시대 플랑드르 풍속화의 대가인 피터 브뤼헐의 그림엔 마을  전체가 화면에 등장해 흥미롭고 다채로운 옛날이야기를 보여준다면 평범한 개인의 생활 공간이 무대로 등장한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그의 동료 피터 드 후치의 장르화는 근대의 시작을 알린다. 다수의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개인이 그림의 주제로, 공간의 주인으로 등장한 것은 베르메르를 비롯한 델프트 유파의 특징이다. 흥미롭게도  개인의 발달과정에서도 사적 소유와 사적 공간에 대한 배타적인 점유와 주장은 자기 정체성 발현의 중요한 지표다. 유아가 돌을 지나 언어 사용이 가능해질 때 자기 물건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을 외치는 것은 (내 것이야!) 자신이 타인과 구별되는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다음에 오는 나의 자아가  타인과 다르다는 인식의 발달 증거는 가시적인 공간의 경계를 선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아가 눈 뜨는 사춘기 청소년은 가족들의 자기 방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배타적인 공간의 경계를 선언하지 않던가. 자신만의 공간은 곧 심리적  경계를 주장하는 것으로, 자신은  엄연히 가족 구성원과 구별되는 개별적 자아를 가진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자기 정체성은 내가 타인과 다름을, 내가 외부세계와 구별되는 존엄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영역과 경계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한다.  역사라는 거시적 맥락에서도 자유로운 개인의 등장은 중세로부터 근대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핵심 가치는 개인의 존엄과 자유이고 그것은 자기 가치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개인의 존엄과 공간의 구성방식 관계에 주목한 유발 하라리는 다음과 같이 사피엔스에 쓰고 있다.


“현대의 이상적인 집은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 있다. 어린이들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사적 공간을 가져 최대한의 자율권을 지니도록 한다. 이런 사적인 방에는 대부분 문이 달려 있다. ………… ……. 중세는 개인주의를 믿지 않았다. 사람의 가치는 위계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뭐라고 말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비웃음을 당한다는 것을 끔찍하게 여겼다. 귀족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의 훌륭한 이름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보전해야 한다고 다짐해 왔다. 중세의 가치체계는 현대 개인주의가 그러하듯이 상상의 자리를 떠나 중세 성의 돌에 섞여 들어가 자신을 구현했다.  성에는 어린이 개인 방이 거의 없었다. 중세의 남작의 십 대 아들에게는 성 2층에 자기 방이 있지 않았다. 아이는 큰 홀에서 다른 많은 젊은이와 나란히 누워서 잤다. 그는 언제나 노출되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사회적 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에 속하느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하라리가 지적한 역사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세포의 미시적인 생명 분화 과정 역시 동일한 과정을  따른다. 환경으로부터의 나눔과 경계 지으려는 생명 현상의 결과로 세포막이 형성되고 그로부터 생명체가 시작되듯, 인간의 정체성 발달 역시 유사한 과정을 따른다.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감정과 생각이 타인과는 구별되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것임을 인식할 때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의 감정과 사고의 흐름을 정확하게 명명할 수 있게 된다. 아동이 보통 3~5세가 되면 역할 놀이를 할 수 있다. 상징 놀이, 역할 놀이를 한다는 것은 나와 타인이 다름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아동이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식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마음 이론 (Theory of mind) 이 작동한다고 한다. 타인의 생각을 추측하고 헤아리는 마음 이론은 인지적 공감 능력의 토대가 된다. 나와 타인의 생각이 다르고, 원하는 바와 감정이 다르고,  믿는 바가 다름을 인식할 때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는 토대를 형성한다. 공감 능력을 갖추게 되고 타인의 존엄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원활한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사람 인자의 두 획이 기대 서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적 조건을 상징한다. 서로 마음을 기대고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신뢰와 공감이 필요하고, 마음 이론 theory of mind는 그것을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능력이다.


마음 이론이 발달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신경학적 장애인 자폐증은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사회생활이 곤란하다. 타인의 행동과 표정을 관찰할 때, 상대방의 신경회로와 동일한 회로가 내 머릿속에서도 활성화되는 신경학적 거울 현상이 일어난다. 타인이 웃고 웃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반사적으로 유사한 표정을 짓고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뇌의 동일한 부위에서 거울 신경 회로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거울 회로가 작동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글을 해독하는 데 곤란을 겪는 난독증에 비유할 수 있다. 거울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타인의 표정을 읽는 데 곤란을 겪는다. 그 결과는 타인을 배려 못 하고 자기중심적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 이론 theory of mind이 적절한 시기에 발달하고 대인관계를 통해 훈련하는 과정에서 공감 능력은 강화되고 뿌리 내린다. 공감 능력은 생득적이지만 그 능력이 정교해지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 상호작용을 통한 훈련이 필요하다. 유아와 청소년기의 사회적 활동과 교육의 중요한 목적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타인들의 생각과 행동과 감정을 교환하고 자기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상황에 적합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사회화는 초기 교육이 지향해야 할 점이다. 사회화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존중받는 경험만큼 타인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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