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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y 21. 2021

자아가 성장하는 공간- 요하네스 베르메르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 ~ 1675) 자아가 성장하는 공간


섬세한 묘사와 기억의 힘


<서양미술사>를 저술한 곰브리치는 베르메르의 섬세한 묘사를 “사람이 들어 있는 정물화”라고 극찬했다. 곰브리치 (Earnst Gombrich)의 스승이었던 독일의 문화학자 바르부르크 (Aby Warburg)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로 섬세한 묘사와 기억의 힘을 강조했다. 바르부르크와 곰브리치의 의견을 종합하면 베르메르는 그림의 신으로 격상된다. 렘브란트와 더불어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빛의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네덜란드가 대항해 시대의 부국으로 거듭나던 시절 델프트에서 활동했다. 델프트는 1640년대 일본과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를 수입하던 동인도 회사의 거점 항구도시로, 도자기와 직조업의 중심지였다. 여행이 일상화된 현대인에게 델프트는 네덜란드 로얄 더치 항공사 KLM이 자국산 진 쥬니버 Genever 를 담아 기념품으로 지급하는 델프트 블루 하우스 Delft blue houses 도자기로 잘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푸른 지붕에 흰 몸체를 가진 도자기 하우스는 바로 이 시절 성행했던 델프트 도자기를 상징하며 100여 가지의 디자인은 실재하는 네덜란드의 평범한 가정집의 모양을 본떠 제작했다. 초벌 도자기에 코발트나 철로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입혀 재벌 하는 델프트식 도자기 공법은 바로 청화백자 제작법과 다르지 않고 흰색과 푸른색의 담백한 조합 역시 우리에겐 익숙하다. 일본이 17세기에 네덜란드로 수출했던 흰바탕에 푸른 무늬를 입힌 도자기를 만든 사람들은 다름 아닌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차출당한 그 도공들이었다.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 그림 속에도 청화백자를 연상시키는 푸른색 델프트 타일이 배경 장식에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설립 100년을 막 넘긴 네덜란드 로열 더치 항공사는 도자기 하우스를 감상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제공한다.  손끝으로 클릭하면  기념품 도자기의 실제 모델이 된 가정집의 실제 사진과 건축 연도가 간략한 도시 정보와 함께 제공되고, 주소가 구글맵으로 연결되어 네덜란드 거리 곳곳에 위치한 실제의 가정집을 감상할 수 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문화학자 바르부르크의 말이 다시 한번 상기되는 섬세함이자 어떤 수집가들에겐 취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문화의 힘을 느끼게  한다. 박공의 지붕을 이고 운하에 도열한 수백 년 된 낡은 가정집이 국가를 상징하는 소박한 기념품이 되고, 과거가 현재를 통해 미래로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해 보게 하는 델프트 블루 하우스는 네덜란드의 소박한 문화적 캐릭터의 하나가 되었다. 내게도 청화백자 풍의 친숙한 빛깔로 만든 열 채의 델프트 블루 하우스가 생겼다.   

사진 상 델프트 도자기 하우스를 판매하는 가게 앞에서

사진  17세기 델프트에서 생산된 도자기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대항해 시대 네덜란드의 경제성장은 중산층과 시민계급의 확대 성장을 가져왔고,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던 그들은 종교적 이상세계나 신화의 세계가 아닌 일상의 실재성과 물질성 그리고 시간의 현재성에 눈을 돌렸다. 신흥 공화국의 신교도들은 개인의 초상화와 세상의 소박한 정물과 풍속화를 사랑했다. 베르메르는 바로 그런 델프트 시민들의 내밀한 일상풍경을 정물화처럼 사실적이고도 시적으로 포착해 냈고, 그의 그림은 델프트의 가정을 장식했다. 정돈된 실내에 들어온 햇살의 일렁임에서 감동의 순간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절의 베르메르와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가정의 질서 혹은 무질서, 시끌벅적한 회합과 모임들, 혼자 있는 고독의 즐거움, 습기 찬 대기 아래 놀고 일하는 일상의 서정….. 그들은 삶에서 친밀한 모든 순간을 그림에 담았다. 차분한 북해의 하늘빛과 말갛게 씻긴 델프트의 거리 풍경을 담은 두 점의 풍경화는 이유 모를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고 차분한 감흥을 불러온다.



작은 크기의 인물화를 주로 그렸던 베르메르는 단 두 점의 풍경화를 남겼는데, 그중 델프트의 차분한 거리를 그린 <작은 거리 Little Street> 가 내게는 특별한 서정으로 다가왔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 360년 전 델프트의 거리에 대한 기억이 내게 있을 리는 없건만, 그 거리의 고요한 풍경은 문득 유년기의 어느 아침으로 나를 데려간다. 붉은 벽돌로 장식된 낡은 건물 앞의 조용한 거리는 일과가 시작되기 전의 고요를 담고 있다. 마침내 어느 가을날, 암스테르담의 거리에서 나는 여전히 같은 모습을 간직한 베르메르 시대의 건물들을 만났다. 창문을 공들여 장식하는 그들의 취향은 현대에도 여전한 듯 창문 주위로는 색색의 돌로 패치워크 장식을 했다. 미술관 창밖으로 보이던 건물의 창문은 베르메르의 시간을 향한 타임머신 같았다. 외관이 아름답게 장식된 창문으로 스며든 실내의 빛. 그 창가에 앉아 17세기의 네덜란드인들은 먼  바다로 나간 연인으로부터 전해진 소식을 읽거나 답신을 쓰고, 뜨개질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우주와 지구의 운행 원리를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시간과 취향을 향유했을 것이다.  베르메르의 붓끝이 포착한 것은 그런 순간들이었다. 개인의 평범한 일상은 화가의 붓끝에서 시적인 풍경으로 승화되었다. 그것은 때로는 대항해를 통한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를 캔버스 속으로 들여오는 일이기도 했다. 베르메르가 그려낸 개인들의 공간은 두 가지의 심리학과 관련한 주제를 제시한다. 화가가 포착한 공간은 개인적 취향의 공간인 동시에 취미와 여가가 함께하는 근대적 공간의 탄생, 즉 슈필라움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또한 사적인 공간은 자아의 정체성이 자라는 곳, 외부와 현실 사이의 경계, 자아와 세상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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