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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Nov 01. 2023

자화상의 심리학 - 연재를 시작합니다.

들어가며

들어가며


우리가 한국이라는 공간에 태어나 자연스럽게 익힌 한국어를 사용하며 존재하고 있는 것은 순전한 우연의 결과다.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것은 내가 원해서도 아니고, 그래야만 할 이유도 분명한 당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태어난 것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히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주어진 조건으로 존재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자아가 눈을 뜨고 자신을 발견하는 사건은 대개 10대의 어느 날 불현듯 일어난다. 남들과 다른 ‘나’를 발견하는 깨달음은 곧 심리적 탄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의 간단치 않은 삶의 여정, 혹은 고난의 투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실제로 발견하는 ‘현실’의 자아와 ‘이상’적인 자아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고 심리적 탄생이 이루어지는 10대 시절에는 대개 그 간극 사이에서 방황하기 마련이다. 그 후에는 존재의 우연성과 무의미를 필연성과 당위성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꿈 혹은 목표라는 이름의 현실적 과제를 설정하며 20대를 헤쳐 간다. 그리고 취한 채로 혹은 몰입한 채로 시간의 무게를 버텨 내며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자 애쓴다. 결국 삶이란 내 안의 내적 조건을 씨줄로, 나를 에워싼 외적 사건을 날줄로 삼아 시간을 엮어 가는 직조 과정이다. 씨줄이 되는 내적 조건은 동기, 욕망, 노력, 재능이 될 것이고, 날줄이 되는 외적 조건은 부모의 지지와 도움, 사회의 가치 기준, 문화적 토대와 국가의 제도 등 여러 층위를 포함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시간과 공간의 두 축이 만들어 내는 좌표 공간에서 직조된다. 그렇기에 잘못된 시간, 잘못된 공간의 좌표 상에 존재했던 재능 있는 자들이 불운한 천재로 기억되고, 적절한 시간(시대)과 적절한 공간(국가나 사회)을 만날 수 있었던 재능 있는 사람들이 천재 혹은 위인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중세에서 현대까지, 600여 년의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이 이루는 좌표 위에 자기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시켰던 화가들과 그들의 자화상을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접점을,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공명하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미래의 자아를 모색하는 이들을 위해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으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강을 건너갔던 화가들의 삶과 예술, 그들이 도달했던 이상, 그리고 그들이 써야 했던 페르소나, 즉 자화상을 살펴본다. 삶은 결국 이러저러한 모습, 특정한 이름으로 존재하는 나를 발견하는 그 순간부터 내가 여기 이곳에 존재해야만 하는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삶의 국면이 전환될 때, 혹은 삶이 우리에게 다른 역할과 임무를 부여할 때, 우리는 자아의 변화를 겪으며 페르소나를 바꿔 쓰고 새로운 역할극에 익숙해져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변화 앞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너무 크지 않기를, 새로운 사회적 가면이 너무 이질적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역사의 긴 시간 동안 화가들이 연출했던 자화상이라는 이름의 가면극이 상연되는 극장이라 할 수 있다. 열여섯 개의 가면극이 진행되는 이 극장에서 여러분은 자신과 가장 흡사한 페르소나를 발견할 수도 있고, 갖고 싶은 가면/되고 싶은 페르소나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쓴 사회적 가면 뒤의 어두운 그림자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만만하고 위풍당당한 페르소나로 살아가기도 하고, 생에 상처받았으나 의연한 얼굴로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어느 때는 직설적으로 반항하고 포효하며 거부의 몸짓을 휘두르기도 한다. 아직 그런 때가 오지 않았다면 언젠가 그런 시간은 찾아올 것이다.


스스로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주장했던 니체는 인생의 발달단계, 인생의 각 국면을 헤쳐 나가는 마음 상태를 ‘사자’와 ‘낙타’와 ‘어린아이’에 비유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자화상에 반영된 자아의 유형은 니체의 발달단계와 어느 정도의 유사성을 가진다. 이성 편향의 시대를 살며 지성의 명령으로 삶의 과제를 완수했던 화가들의 반듯하고 위풍당당한 페르소나가 책임감으로 사막을 건너는 낙타와 같다면, 기괴한 모습으로 자제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감정을 발산하며 반항하는 사자 같은 화가들의 자화상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생이 나를 상처 냈지만 상관하지 않겠다는, 아프지만 웃을 수 있다는 성스러운 긍정의 자아들도 있다. 책을 구성하는 3부는 각각 그런 자아의 페르소나를 그려 냈던 화가들을 묶었다. 열여섯 명의 화가와 함께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공감을 느끼는 화가를 만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화가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거장들이 남긴 회화 예술은 우리에게 놓칠 수 없는 감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개인적 서사든 역사라는 집단적 서사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인생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다. 어마어마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편적인 지식이나 우리를 향한 세상의 평판과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불확정성의 시대를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유연한 적응력과 통찰력, 통합된 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인간 활동의 많은 영역을 대체하고 진화된 형태의 정보통신이 삶을 좌우하는 시대,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을 살아 낼 힘은 바로 나—self—라는 운영체제가 작동하는 방법을 알고 효율적인 실행 능력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심리적 근력을 강화하는 일이 아닐까. 구체적이고 상세한 자기 관리와 자기 경영법의 메뉴얼을 작성하는 것 또한 자화상을 그리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이 여러분의 자화상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5~10 p.


2023년 여름의 끝에서 윤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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