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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Jun 09. 2024

생말로, 그야말로 야생의 바다

 maison du quebec


캐나다의 프랑스령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은 자끄 까르띠에. 생말로에서 태어났다.

빨간 창문을 가진 이 나지막한 돌집은 자끄 까르띠에를 기리기 위해 복원한 그의 생가라 했다.

복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20세기 중반이었다.


유럽이 중세를 벗어날 무렵, 자크 까르띠에는 1534년

왕의 명을 받들어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러 나섰다.

콜롬버스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아 나섰듯.

항해를 나서기 전에 그도 마을의 가운데 돌을 쌓아 올려 세운 성당에서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대서양을 건넌 그는 세인트 로렌스 하구 일대를 탐사하고

이듬해 두 번째 항해에서 강을 따라 대륙 깊숙이 올라갔다.

그때 까르띠에는 다정하고 고즈넉한 그 땅 퀘백을 만났다.

지구본을 놓고 보면 대서양을 향해 끝이 톡 튀어나온 브리타니 지역,

즉 유럽대륙의 귀퉁이에서 대서양 건너

현재의 캐나다 영토인 뉴펀들랜드와 세인트 로렌스 강 하구까지는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넘어오는 사실상의 최단거리다.

까르띠에 당시에는 한두 달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대항해 시대를 선도했던 이베리아의 국가들과 영국이

인도로 믿었던 남미와 미국 동부를 훨씬 앞서 점령했을 무렵이었다.

이들보다 늦게 신세계 탐험에 합류했지만 그들의 항해는 보다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정착민과 항해자 (혹은 유목민)



2023년 가을 보스턴에 내려 뉴잉글랜드의 정취를 호흡하며

애팔래치아를 차로 넘은 그와 내가 퀘백 국경에 닿았을 땐

백합깃발 플레르 드 리스 fleur-de-lis 가 휘날리며

우리를 환영했다.

해발 고도가 높은 버몬트의 애팔래치아를 지날 무렵

옅게 물들기 시작하던 은은한 단풍이 아름다웠으나

산맥을 넘어 퀘백의 평지에 닿았을 땐 다시 우거진 녹음을 만났다.

20년 만에 다시 찾은  몬트리올에서 무대장치가 세련되었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관람하고,

퀘벡시티를 거쳐 배생폴까지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내쳐 달렸다. 상쾌한 설렘을 안고.


퀘백. 불어로 된 표지판을 읽을 수 없었던 그곳은 여전히 미지의 영토였고

세상의 가장자리, 고즈넉한 여백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배생폴을 향해 나 있던 나지막한 구릉과 산의 오르내림,

주택지 한 가운데를 뚫고 쏟아져 내리던 거대한 폭포

그리고 아름다운 수종과 식생으로 가득한 포근하고 다정하던 땅.

완전히 낯선 풍광과 식생을 놀람으로 받아들이던  그 여행에선

신대륙을 처음 발견했을 까르띠에의 심정을 상상해 보곤 했다.


세상에는  두 개의 다른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견고한 자기 보금자리를 만들고 그 위로 성을 쌓아 올리고,

일상을 운영하는 완고한 룰을 만들고 스스로 엄격하게 그 룰을 준수하며

그 담장 안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정착민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이 가꾼 민들레의 영토.


하지만 그 반대쪽에는 마음 한 구석이 열려있는 사람들.

그 열린틈 사이로 미지의 땅에서 불어 온 바람이 드나든다.

그 바람이 속삭이는 먼 곳의 산과 강과 바다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은 자주 떠날 채비를 한다. 여전히..

가꾸고 닦아 놓은 자기 영토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해가 뜨고 지는 지평선 너머에 있을 그 무엇이 궁금해지고,

수평선 너머에 있는 강과 호수의 이야기가 궁금한 유목민과 항해자의 영혼은

또 다시 길을 떠날 궁리를 하는 것이다.   


까르띠에는 분명 항해자였지만

가없이 넓고 상쾌한 푸른 바다, 해가 뜨면 저만치 물러나고 해가 지만 이만치 들어오는

살아 움직이는 바다를 안고 살던 그에게

잔잔하고 포근한 세인트 로렌스 강은 어쩌면 너무 안온해서 졸리는 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다의 주인은 갈매기.

언제나 그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절벽과 바윗돌의 제일 높은 꼭대기에

느긋하게 자리 잡고 앉아 꼬박꼬박 졸면서 햇살과 바람을 느긋하게 즐긴다.  

길이 되었다 바다가 되었다를 반복하는 흥미와 스릴이 넘치는 물길을 굽어보며.



프렌치들의 유별난 조형 감각과 숫자 감각


숙소는 성의 입구에 위치해 있었다.

신혼부부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정갈한 작은 아파트에 유닛 하나를 빌렸다.

새파랗고 투명한 바다를 보지 못해 아쉬웠던 내 지난 시간을 보상해 주겠다는 듯

숙소의 모든 창은 바다를 향해 있었고, 실내의 어디로든 바다가 밀고 들어왔다.

한없이 푸르고 한없이 넓고 한없이 변덕스런 야생의 새파란 바다.

북해보단 대서양에 가까운 바다다.

푸르고 투명한 바다를 밀린 숙제 하듯이 원 없이 마음에 담았다.

마음 속까지 새파랗게 물이 들었다. 심장의 온도가 서늘해졌다.  

우리가 잠든 시간에 바다는 인간들의 거처에 최대한 가까이 귀를 열고 들어와 있었고

태양이 고도를 높여갈 때면 바다도 함께 더 깊은 바다로 밀려나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테라스 유리벽 너머로 옅은 안개를 피워 올리는 바다가 침실로 몰려왔고

삼면으로 나 있는 거실의 창문을 통해서도  바다가 앞과 오른쪽, 그리고 왼쪽에서 밀려들어왔다.

침실 뒤의 키친벽에도 잠수함의 유리창처럼 바다를 향한 통로는 둥그렇게 나 있었다.

프렌치들의 조형에 대한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과 사려 깊은 센스는 참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저녁에 로컬 티비에서는 첫날은 프리다 칼로의 다큐멘터리가 진행되고 있었고

둘째 날 밤에는 북한 탈북자들의 서울살이 현실이 프랑스 말로 방송되고 있었다.

불어를 몰랐지만 꽤나 몰입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언어를 몰라도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어째서 숫자에 대한 감각은 별나라 감각이었는지.

한 층에 네 가구 정도가 있을 뿐인 아담한 아파트였지만

호수도 층수도 비밀에 부치기로 한 그 건물은

현관도어 위에  자그맣게 붙여 놓은 주인의 이름으로만 누가 사는 집인지 식별을 할 수 있을 뿐,

두 사람의 학위 수를 합하면 다섯 손가락으로도 모자라는 부부가

네 개의 유닛 중 하나인 2층의 숙소를 찾기까지 쩔쩔매며 짧지 않은 혼돈과 경악의 시간을 보냈다.

지하 주차장으로부터 계산하는 층수와 1층의 현관으로부터 계산하는 층수가 달랐고,

문 위에 유닛넘버 하나 적어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프렌치는 왜 숫자에 관한 모든 것이 엉망일까.   

로직은 내 맘대로 창조할 테니 너네가 참아라 하는 자기중심적 톨레랑스의 발휘였을까.

아니면 해적의 도시라 그랬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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