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발 비행기로 다시 한국을 향하는 그를 배웅하고 돌아온 어젯밤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에 도착했다. 인디애나에서 학교를 다니는 큰 아이는, 일주일 후에 그곳에서 한국으로 바로 날아갈 예정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국을 다녀갈 시간이 전혀 없었던 아이는 이제야 겨우 어렵게 시간을 냈다. 고작 일주일.
2년 전,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한학기도 지체 없이 4년 만에 졸업한 녀석은, 봄에 졸업식 후 여름을 송두리째 바쳐서 프로포잘 몇 가지를 물고 늘어졌다.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녀석은 집에 돌아온 후에도 밥 먹을 때나 되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을 뿐, 방 안에 틀어박혀서 텔레컨퍼런스와 프로포잘 작성으로 딴 세상을 살았다. 그러더니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 2년짜리 2 밀리언 그랜트의 책임연구자로 낙점되었다는 승전보를 알려왔다. 관련한 컨퍼런스를 공군기지 지하벙크에서 한다는 프로젝트의 내용은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비밀이다. 1차 계획이 이러하고 breakthrough가 있으면 계속해서 이어지는 life long - research and development가 될 프로젝트다. 다행히 지난겨울 연구에 breakthrough 가 있었다고 알려왔다.
아이가 fast moving meatball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던 지도 교수는 말 그대로 fast moving viehcle과 관련된 일들을 연구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교수다. 아이를 3학년 때부터 훈련을 시켜오다가 졸업과 동시에 본무대에 올린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학부를 갓졸업한 풋내기에게 primary investigator자리를 밀어주는 fast moving meatball 이야말로 엄청난 내공을 가진 사람이다. 스물두 살에 2 밀리언짜리 연구의 책임을 맡는 것은, 물론 지도교수의 백그라운드와 학교의 다져진 내실이 뒷받침한 결과이지만, 실로 우주개발을 본격화하는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놀랍고도 통쾌한 소식을 서울에 계신 조부모님께 전했을 때,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의 부심 넘치는 할아버지는 이 상황을 감을 잡지 못하는 눈치셨다.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한 전문가이시지만, 창공을 무대로 하는 일은 알지 못하신다. 더구나 한국 학계의 정서상 이런 일은 그다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아신다. 하물며 고작 학부를 마친 손자가?
몇 달이 지나 아이의 본교 교수 통신에 난 뉴스링크를 보내드렸을 때야,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셨다. 외국계열 회사의 사장으로 은퇴하신 동기분들 현역 무역회사를 운영하시는 동기분들 모여서 브레인스토밍을 하시고서야 충격의 대잔치를 벌이셨다 한다.
그러나 엄마는 혹시 아이가 버거운 일을 너무 일찍 맡아서 심신에 과부하가 걸릴까 걱정이 될 뿐이다.
꿈과 희망을 곁에서 보여주신 크리스 헤트필드 아저씨와 함께, 휴스턴에서의 첫 캐네디언 땡스기빙 날, 휴스턴 캐네디언 클럽 모임. 이날 나는 휴스턴이 맘에 안든다는 푸념을 오지게 늘어놓는 헤트필드 아저씨의 부인 헤더 여사와 죽이 맞았다. 순하고 착하기 그지없는 케네다 학교와 선생들에 비하면 휴스턴 교육 방식은 야만에 가깝다고 욕을 해대던 헤더 여사는. “오 여긴 너무 이상한 곳이예요. 학교 선생들이 어쩌구 저쩌구….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 건지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블라.. 학교 수준이 어쩌구 저쩌구…. ” “그래서 휴스턴의 학교가 너무 너무 싫었던 헤더 여사는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모두 캐나다로 돌려 보내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셨다고.그때의 자제들이 지금은 부모가 되었을 나이인데 여전히 캐나다를 지키며 잘 살고들 있을런지….
텍사스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키려면 학교측과 전쟁을 몇 번쯤 벌이긴 해야한다. 부모가 늘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와 똑바로 하지 않으면 그냥 있지 않겠다는 단호함도 때로는 보여줄 필요도 있다. 하지만 부모가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학교측은 세게 나오다가 결국은 학생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결말 짓는다.
2006년 7월 11일
그들의 고국 방문이 행복하고 감사한 일들로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