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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Aug 04. 2024

8월의 첫 토요일



줄기차게 내리던  7월 장마는  8월이 되자 딱 그치고 여름의 마지막 열기를 가열하게 태운다. 텍사스의 강인한 시민들은 비보다는 차라리 타는듯한 열기를 원한다. 편집장의 빚독촉하듯 원고마감을 서두르는 메일은 받은 것이 며칠 전이다. 10월 출간을 앞두고 때 이른 독촉은 말하자면 다음 계절을 준비하라는 신호 같은 것. 곧 원고는 마무리해서 넘길 것이지만, 토요일은 토요일에 할 일이 있다. 가을엔 태평양이 아닌 대서양을 건너 지구를 반대로 돌아서 들어가는 경로를 궁리 중이다. 미국 비행기가 싫어서고, 유럽 항공사의 친절한 서비스와 넓은 공간이 좋아서다. 또한 유럽의 가을을 하루정도  볼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기회다.  


아침의 요가는 강도가 너무 세지 않았고, 트레드밀도 30분만 탔으니 오늘 오후는 그리 힘들진 않을 것이라 주문을 걸면서 아트 스튜디오를 향해 출발할 땐 음악의 볼륨도 높였다.  8월이 시작되었고, 토요일 정오 시내로 들어가는 하이웨이는 트래픽이 꽤 걸렸다. 덕분에 스튜디오에 도착하기까지 딱 한 시간이 걸렸다. 정각에 딱 맞춰 들어섰다.


스튜디오에는 zack선생이 등을 보인 채 테이블 앞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몇 사람은 이미 이젤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은 실물 모델 대신  새하얀 skelleton 이 조명 아래서 앙상한 전신을 드러내고 서 있었다. 오늘은 반 고흐처럼? 그럴리가..... 그럴수가.... 세상에나 다시 봐도 천재는 천재시네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



수업 준비에 골몰하는 zack 선생의 등을 지나쳐 안쪽의 이젤 앞에 자리를 잡았을 때 곧 선생이 나를 돌아보며 상냥하게 이름을 불렀다.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려고 한다고 했다. "지난주에 decaffenated 되었던 베로니카 시죠??"순간 당황스러웠지만 keep calm and smile on... 민망하게 뭘 그런 걸 기억하시는지....  


지난주 첫 시간엔, 잭 선생이 데모를 보이자마자 피로가 아득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간신히 비티며 세 시간을 그림에 집중했다. 마지막엔  알렉스 카츠 스타일의 프로필 하나를 끝내 놓았다. 원했던 건 싱어 사전트 스타일이었으나 결과는 알렉스 카츠 스타일이 나오고 말았다.  세 시간이나 앉아 있었던 미모의 모델과 친절한 선생의 가이드가 무색한 결과에 대해 왠지 미안했다.   

“결과가 그만 알렉스 카츠 스타일로 나오고 말았네요.  이게 카페가 문을 닫아서 커피를 못 마셔서 그래요. 다음 시간에 좀 더 잘해 볼게요. 하하하 "

잭선생은 지난주에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오늘 내가 커피를 준비해 온다는 것이 그만 깜박했다. 다음 시간엔 준비해 오겠다. 미안하다"라고 했다. 미국에도 이렇게 순한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다행히 오늘은 커피를 플래스크 가득 내려왔다. 그거면 괜찮을 거라고, 함께 나눠 마실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대답했다.  

앞으로 두 달간 토요일 오후에는 초상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여름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skelleton을 탐구한 오늘은 두번째 시간. 이 대책 없는 형상을 앞에 둔 심정은 언제나 막막하다. 깨트린 계란의 색깔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할 때보다 더 막막하다. 가장 막막한 형태는 인체의 근본 구조다. 집중적인 관찰 결과를 바로 화면으로 가져와 색을 입히면서 형상을 완성하는 알라프리마 기법은 실력이 쑥쑥 늘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정밀한 관찰을 할 수만 있다면.... 색의 농도와 명암이 달라지는 미묘한 경계의 모자이크를 파악해 낼 수 있다면... 오랜 훈련이 필요하지만..


피부색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사실 수학적인 부분이 있다. 여덟 가지의 색을 필요에 따라 섞어서  피부의 밝고 어두움, 차고 따뜻함을 표현을 해야 하니 보통 정교한 작업이 아니다. 꽃보다 어려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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