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사친에 대하여
나의 동료이자 친구인 바네사는 예쁘고 패셔너블한 젊은 디자이너다. 스스로도 문제라고 할 만큼 쇼핑을 자주 하고(심지어 한국 쇼핑몰까지 섭렵하고 있다), 레드립은 기본이요 딸기우유색, 핫핑크, 선명한 보라색까지 아주 다양한 립스틱을 매일 다르게 바르며, 손톱까지 립에 맞춰 매일 바꾸는 트렌디한 사람이다.
아침 출근 시간,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배꼽이 보이는 크롭티에 쫙 달라붙는 레깅스, 한정판 운동화를 신고 지하철역에서 모델워킹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게 그녀다. 처음엔 그녀가 너무 힙하고 차도녀같은 이미지여서 말도 걸지 못했는데, 알면 알수록 이 예쁜 아가씨는 정말로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자기 친구의 파티에 친하지도 않은 나(외로운 외국인 노동자에겐 같이 놀 친구가 별로 없을 것으로 추정되었나 봄)를 초대해서 데려가지를 않나, 갑자기 회사 메일 계정으로 우르르 메일들이 쏟아져서 뭔가 하고 봤더니 '다양이 베를린에서 가보기 좋을 것 같은 곳', '내가 좋아하는 베를린의 미술관들', '요즘 베를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핫한 곳들' 등을 빼곡히 채워 보내주었다.
내가 최근 곤란한 일이 생겨 관청에 가야 했을 때도, 그녀는 자신이 나를 꼭 도와주겠노라며 기꺼이 자신의 점심약속을 취소하고, 업무시간까지 희생해가며 멀리까지 나와 함께 다녀와주었다. (해결에는 실패했지만 그건 원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기가 잘못해서 해결하지 못한 것마냥 미안해했다.)
SNS 친구가 된 뒤로는 페이스북 메시지와 다이렉트 메시지로 퇴근한 뒤와 주말에도 그녀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와의 대화들은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고 더욱 확신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예컨대 같이 퇴근 후 저녁 먹고 칵테일도 마시고 집에 가던 날엔
"구글 맵으로 길찾기를 하는 것을 보니 너에겐 대중교통 앱이 없는 것 같아서. 넌 다다음 역에서 갈아타야 해. 네 다음 트램은 M2고 그건 지금부터 10분 뒤에 와. 네 목적지까지는 타고 나서부터 10분이 걸려. 안전을 위해서, 집에 도착하면 꼭 내게 메시지보내. 지금부터 30분 이상 지났는데도 너로부터 연락이 없으면 경찰에게 네가 내리게 될 역을 말하고 신고할거야." 하거나,
"내일 베를린에서 벚꽃 축제가 있대. 너도 가고 싶으면 내 친구들이랑 같이 갈래?",
"내가 재밌게 본 전시가 있는데 이런저런 거야. 너도 관심있으면 내가 한번 더 봐도 되니까 같이 가 줄까? 독일어로 진행되는 체험전이라 혼자 가면 힘들거야." 하는 식이었다.
키가 180에 다다르는, 올블랙을 입고 보라색 립에 스모키 아이의 금발 미녀가 길거리에서 빵을 쭉 찢어 "먹어봐, 독일식 계피빵 내가 좋아하는거야." 할 때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그녀는 정말이지 겉으로 보기엔 알 수 없는 멋진 성품의 소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