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절절한 고해성사 그리고 터닝포인트
들어가기 전에 : 채식을 시작하게 된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비건이시라면 보거나 읽기에 불쾌하실 수 있을만한 육류 음식에 대한 상세한 묘사, 육류가 포함된 음식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채식을 하지 않으신다면, 밤중에 배고픈 상태로 읽지 마세요. 음식 사진이 많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저는 육식하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채식에 대해서 부정적이시라면 이 글은 건너뛰어 주세요...ㅠㅠ
나는 육식교 광신도였다. 내게 '부의 기준'이란 먹고 싶을 때마다 스테이크와 초밥을 잔뜩 먹을 수 있는 재력, 그리고 가격표 보지 않고 한우 육회 시켜서 배부를 때까지 육회'만' 먹을 수 있는 삶이었다.
이런 내게 독일은 천국이었다. 소고기 스테이크로 배 채우는데 10 유로면 충분했다. 그것도 Biomarkt(유기농 마켓, 인도적으로 사육하고 도축한 고기만 판매한다)에서 신선한 냉장육을 사는 것을 기준으로 말이다.
삼겹살 (schweinebauch)? 구워 먹고 제육볶음 해 먹고 수육 보쌈해 먹고 하여간 별의별 식도락은 다 찾았다. 1주일에 최소 이틀에서 삼일은 고기'만' 먹었다. 이렇게 호사스러운 식사를 하는데 드는 재료비는 많아야 20유로. 먹고 싶을 때마다 고기만으로 목구멍까지 꽉꽉 채워 배 터지게 먹는데 필요한 1인 식재료비 예산은 한 달에 한국 돈으로 대략 10만 원 정도였다. 참고로 난 한국에서 혼자 먹는 기준, 삼겹살 기본 4~5인분을 먹었다. 양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 그뿐이랴? 종류별 요구르트, 과일주스, 하여간 아주 갖은 호사는 다 부렸다. 물론 식료품 가격이 싼 베를린에서 살았던 데다가, 많지 않긴 해도 인턴으로 일하며 생활비를 충당 가능한 수준의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육류 섭취량에 걸맞게 내 요리실력도 '육류에 한해' 나날이 일취월장했다. 머나먼 독일에서도 난 혼자 4시간씩 불 앞에 서서 마녀처럼 냄비를 휘저어 갈비찜을 해 먹는다던가,
독일에서 소갈비를 사면 약간... 원시인 만화가 떠오르는 '뼈다귀 손잡이'가 붙은 고기를 도끼로 뭉텅 썰어준다.
한인마트에서 산 당면을 넣고 소불고기를 해 먹는다던가,
삼겹살로 만든 수육. 된장부터 카레, 커피가루까지 다 넣고 제대로 만들었다.
(삼겹살도 뼈랑 붙어 있고, 털도 잘 제거되지 않아서 삶다가 중간에 꺼내서 손질을 여러 번 해야 했다.)
심지어 굳이 육회용 고기를 사서 (왼쪽에 보면 강판에 배를 갈려고 설치다가 베인 상처가 보인다. 이때 약간 회의를 느꼈다. 내 피가 생고기의 피와 다를 바 없이 느껴졌는데, 얘들도 이렇게나 따갑고 쓰라렸겠지.. 따위의 고찰을 했다. 게다가 꽤 깊이 아주 날카롭게 베인 탓에 1시간 동안이나 피가 멎지 않았다. 어쩌면 '죄받아서'일지도 모른다고 혼자 자책하며 잠시 입맛을 잃었다. 그리고 지혈을 끝낸 뒤 소고기 한 근치 육회를 다 먹어치웠다. 이때, 난 참 잔악무도하다고 스스로를 회의하기도 했다.) 제육볶음이나 닭갈비, 스테이크는 거의 일상식이라 사진을 찍어둘 생각도 않았다. 오죽했으면 방학 때 놀러 온 남동생이
"누나, 학교 앞 백반집보다 누나 제육이 더 맛있다. 얼마나 해 먹었으면 이 수준이 되지?" 했다.
그뿐인가, 회사에서도 고기 사랑은 계속됐다.
출근 첫날, 인도에서 온 동료(훗날 아주 소중한 채식주의자 선배이자 친구가 되었다)가 자신을 베지테리언이라고 소개하면서 너는 어떻냐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well... I'm a meatarian. I love meat. (음... 난 육식주의자야. 난 고기 사랑해.)"라고 이야기해서 오피스의 모든 사람이 박장대소했다. 당시 함께였던 팀은 거의 매일 회사 키친에서 같이 요리를 해서 점심을 먹었다. 나도 종종 한식 요리를 선보였는데, 어느 날 팀원 중 하나였던 세바스찬은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다양, 한국음식은 고기를 안 넣으면 만들 수 없어?
그도 그럴 것이, 난 심지어 비빔밥을 만들어도 약고추장에 소고기 간 것을 넣고, 고명으론 고기볶음을 올렸다.
어느 날 아침, 회사 사람들 중 하나가 아침으로 먹을 빵을 나눠준대서 받으러 가봤더니 이런 것이 있었다.
고기 간 것을 스프레드처럼 빵에 발라 생양파를 올려 먹는 것인데, 놀랍게도 돼지 생고기였다. 영어와 독일어로 확인해봐도, 돼지였다.
난 우리나라에선 돼지를 절대 날 것으로 먹지 않는다고, 덜 익혀 먹어서도 안된다고 외쳤지만 그들은 태연했다. 독일은 기후가 다르니 괜찮다나? 웬 어불성설인가 싶었지만 건강염려증도 호기심은 당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먹어치웠다. 결과는 뻔했다. 난 그 이후로 누텔라와 버터, 딸기잼을 뒤로하고 빵에 고기 스프레드를 발라 먹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내가, 정말이지 채식이라곤 평생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채식을 시작한 경위는 당연하게도, 단순하게도 고기였다.
교포 2세이자 독일에서 나고 자란 친구 코니를 따라 kreuzberg에서 요즘 가장 핫하다던 베트남 식당에 갔던 어느 날, 그 사건은 일어났다.
오리고기에 코코넛 카레 비슷한 고소한 소스를 끼얹은 이 요리는 미각의 저 편에 흐릿해지던 오리고기에 대한 열망을 폭발시켰다. 바삭바삭한 껍질, 쫀득한 고기, 야들야들한 육즙과 찰진 식감... 오리는 역시 맛있었다.
"코니, 진짜 맛있다. 독일도 오리를 많이 먹나 봐? 난 크리스마스 칠면조 요리는 맛이 없던데. 오리는 되게 맛있는데? 베트남 식당이어서 그러나? 왜 이렇게 맛있지?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그런데 코니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나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언니, 오리 진짜 맛있어?"
나는 이미 내 몫인 오리 절반을 먹어치웠기에 한 점 더 먹어도 될까 호시탐탐 노리다가 코니가 물어보는 사이
"응, 진짜 맛있어." 건성으로 대답하며 한 점 슬쩍 들어 올렸다.
그때 코니가 다시 물어보았다.
"언니, 진짜 오리 맛이 있어?"
"응?"
"이거 채식주의자를 위한 가짜 고기야. 이거 오리 아니고 콩고긴데. 그렇게 맛있어? 그럼 이제 오리 먹지 말고 가짜 오리 먹어 언니."
콩고기라고? 내게 콩고기는 급식에서나 주던 싸구려 반찬이었다. 어묵 같기도 하고, 고기인 척하는 이상한 물체. 찌득찌득하고 퍼석퍼석하고 하여간에 맛없는. 그래, 나로 하여금 아예 짜파게티 건더기 후레이크를 넣지도 않게 만드는 원흉이 바로 콩고기였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게 콩고기라고?
"언니, 독일에는 채식주의자가 많아서 콩고기도 많이 발전했나 봐. 오리 맛 콩고기, 소고기맛 콩고기 다 있어. 식감도 똑같지? 고기 포기 못하겠으면 이런 거 먹으면서 줄여봐."
그랬다. 내가 고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식감과 고유의 풍미 때문이었다. 그런데 콩단백으로 그와 똑같은 맛과 향, 질감을 구현하자 나의 마음은 완벽한 충족감을 얻었다. 꼭 '고기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만큼 맛있고, 고기만큼 영양가 있으면 되는 거였다. '고기'가 아니어도 되는 거였다...!
'어쩌면 다른 동물의 살점을 먹지 않고도, 식도락을 지속할 수도 있겠구나.'
독일은 채식주의자에게는 또 다른 천국이기도 했다. 베트남 식당의 오리고기, 아니 가짜 오리 경험 이후로 독일에서 자주 가던 식당의 메뉴들이 달리 보였다. 정확하게는, 보이지 않던 것, 보려고 하지 않던 것을 보기 시작했다. 가게마다 꼭 하나씩은 있는 옵션이 바로 'Veggie, Vegan, V'였다. 고기를 빼는 것이 길거리에서 파는 케밥 노점에서도 가능한 옵션이었다. V메뉴들은 단순히 '고기를 뺀', 어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메뉴로 존재했다. 콩고기를 쓴다던가 두유를 넣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소시지부터 파스타, 초밥까지 다 비건 옵션이 있었다. 다 같이 식당에 가도, 다 같이 샌드위치나 수프를 테이크 아웃해서 강가에 앉아 먹어도 소외되거나 타협하지 않고 나만의 식습관을 지킬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베를린에서 채식이 유행이기 때문이었다.
소위 '힙한' 문화 중 하나였다.
'건강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며 '개념 있게 소비하고 개념 있게 먹는' 개념 있는 나! 정말 멋지다! 나란 존재!' 이런 느낌? 인기 있는 음식점 하면 손꼽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아예 '비건 푸드'만 취급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죄다 '비건 메뉴 있어요?'하는데, 장사 잘 되는 레스토랑들은 죄다 비건 레시피를 개발해서 메뉴판에 떡하니 써놓는데 안 구비하고 배기겠는가? 자연스럽게 비건 메뉴를 갖춘 식당이 하나둘씩 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모든 곳에서 당연히 '비건 손님'이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내 회사 동료들은-나만큼이나 육식을 좋아했는데도!-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 먹을 때면 '음, 난 오늘 베지메뉴로 먹을래.' 하기도 했다. 육식주의자였을 때 내가 이들을 어떻게 놀려댔는지 아직 선명히 기억난다.
"야, 너 고기 정말 좋아하잖아. 왜 유난 떨어?"
"건강 생각하는 거면 담배를 덜 피우는 편이 더 나을걸?"
"고기는 몸에 좋아!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해! 인간은 초식동물이 아니야!"
"으, 난 베지 메뉴 치고 맛있는 거 못 봤어. 저 고기 라자냐가 훠얼씬 더 맛있을걸?"
"오~ 마크~ 힙스터~ 채식하는 힙스터~힙스터 마크~"
(주제넘고 못된 오지랖을 끊어내지 못했던 자아의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고해성사니까 솔직하게 기록한다.)
나의 무례에 가까운 질문에 그들은 쿨하게 대답하곤 했다.
"응, 그렇겠지. 근데 담배 안 피우는 건 힘든데 고기 안 먹는 건 조금 더 쉽잖아. 내 건강은 약간 안 좋아지더라도, 어떤 동물은 살아남는 거잖아. 한 끼라도 채식하는 게 한 끼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 오늘 하루만큼 채식주의자인 게 누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닌걸? 유행 따르면 안 돼? 좋은 유행이면 따라야지. 베지 메뉴 덜 맛있는 건 맞아, 근데 내 입맛이 뭐 그렇게 중요해? 한 끼 맛없는 거 먹어도 상관없잖아."
그래, 그게 가능했다. '오늘만큼은', '이번만큼은', '지금만큼은' 한 끼라도 채식하기.
아예 평생 고기를, 탕수육을, 육회를, 스테이크를, 갈비탕을, 족발을, 삼겹살을 포기하라면 난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안 할 것이라 믿었다. 나는 세치 혀의 노예, 먹고살려고 돈 벌고, 맛있는 거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독일에서 채식주의자 친구들과 놀고, 요리해먹고, 어울리며 채식 식당에 가고, 덩달아 채식 메뉴를 고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보다 채식은 어마어마한 결심이나 무시무시한 자기학대쯤이 아니라, 그냥 매 순간의 작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고. 고기 토핑 대신 구운 두부를 올린 쌀국수를 선택하는 것, 한 끼쯤 조금 덜 맛있게 먹는 것,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 대체재를 찾아보는 작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래서 나도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루에 최소 한 끼 이상은 꼭 채식으로 먹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루에 세 끼를 10년 채식하는 것과, 하루 한 끼를 30년 하는 것이 똑같다는 단순 무식한 주먹구구 계산에 의해,
나는 하루에 한 끼 이상 평생 채식하기로 결정했다. 진짜 '비건'들이 보기엔 가당치도 않을지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하는 편이, 실천하는 편이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육식주의자의 천국인 독일에서, 나는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주의자에게도 충분히, 다른 의미에서, 천국이었다.
난 늘 아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늘 동경하고 부러워하던 바로 그런 멋진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그 소소한 자기만족이 나의 결심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패션 비건이라고, '가짜'라고 지탄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 지금 내가 또 아주 조금이나마 고기를 덜 먹었다는 사실이, 혹은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하는 개인적인 가치관이다. 이렇게 한 끼만 참으면 한 마리의 닭이, 한 달이면 한 마리 돼지가, 이렇게 1년쯤이면 소 하나만큼의 생명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작은 실천이 모여 작은 변화를 이루더라도, 내게는 그 작은 변화가 큰 기쁨이고 행복이다. 나에게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