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어릴 적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열여섯의 첫 시도. 엄마 몰래 예고의 문예 창작과 시험을 봤었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가 났고 합격했다. 하지만 엄마는 어린 나를 불러 앉혀 놓곤 이야기했다. '글 써서 먹고살기가 얼마나 힘이든지 아냐며' 그땐 그랬다.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정말 하면 안 되는 줄만 알았다. 엄마와의 애정이 넘쳐서도 아니었고, 말을 잘 듣는 아이 여서도 아니었다. 그저 가보지 않은 길의 끝이 어디일까 두려웠고, 그나마 가장 믿을만한 구석이 큰 어른들 중 가장 가까운 이가 겁을 주니 나는 더 큰 겁을 먹고 만 것이었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었다. 스무 살, 나이만 먹었지 처음 해보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나의 경험치는 너무 작았기에 재미있었고, 혼란스러웠다. 재미와 혼란 사이에서 폭주하듯 엄마가 알면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은 일상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20대. 막내 에디터, 모델, 미술관 인턴 큐레이터, 막내를 전전하던 나는 스물다섯, 모든 것들을 멈춘 채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다. 스물다섯, 인생을 책임지지 못할 만큼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애매한 나이. 나는 나와 함께 사회생활을 하던 그 무리의 사람들 중 가장 어렸지만 가장 먼저 '결혼과 육아'라는 세계로 뛰어든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지금 나는 서른셋, 아홉 살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대학에서 예술 비슷한 걸 전공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칠 수 있었지만 지금 나의 가장 큰 직업은 '엄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10대와 20대의 나는 어딜 가도 주목받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나의 생김새, 분위기, 말투 모든 것이 오해받기 딱 좋은 타입의 사람이었다는 걸 30대가 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오해와 이해 사이의 나.
나는 나의 서른셋이 그러하다.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은 오해인 것 같은 나이. 모든 것을 오해에서 시작해서 이해할 수 있는 나이. 아니 어쩌면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의 오해.
'뭔가 오해하신 거 같은데요.... 이해가 되세요?'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네요..'
어느 날, 그냥 갑자기 툭 하고 내뱉고 싶어 진 말들. 아마도 10년 넘게 마음속에서 꿈들 대던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를 모니터와 키보드 앞으로 앉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에세이스트'가 되려고 해.
'에세이스트? 그게 뭔데?'
'그냥..계속 쓰다보면 내가 누군지, 내 마음이 어떤지, 알수 있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