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나는 지금 시들해진 상태이지만 한때는 나도 뮤지컬 ‘회전문’을 줄기차게 돌았다. 지금은 많이들 알려진 이 ‘회전문’이라는 은어는 같은 공연을 여러 회차 관람하는 행위를 일컫는데, 보통 이러한 덕질 생태계에 무지한 이들은 이 개념을 듣고나서 해맑게(또는 정말이지 놀라서) 묻는다. “왜 같은 극을 또 봐요?”라고.
사실 이는 비단 뮤지컬 덕후(매니아)들만이 겪는 일화는 아닐 것이다. 비슷한 장르인 영화나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도 시작과 끝 그리고 기승전결이 명확한 장르의 특이성 때문이겠지. 이미 내용을 다 아는 것을 또 본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지루한 요소가 될 것이니까.
나 또한 그들의 심정에 일부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뮤지컬 회전문의 당위성에 대해 짧게 항변해보자면, 딱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봤던 걸 또 보기 위해, 그럼에도 보지 못하고 놓친 걸 이번에야말로 보기 위해.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뮤지컬이지만 그날의 컨디션(배우든 나든), 하다못해 주변 관객들과의 호흡도 감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그런 면에서 여행도 비슷하다. 같은 곳을 또 방문한다는 것은, 내가 처음 느꼈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은 이유도 있고 처음에는 미처 즐기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체감하고 싶은 목적도 있다.
나는 이번 두 번째 파리를 바로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각각 즐겨보기로 했다. 이전 여행 때 좋았던 건 이번에도 다시 해야지, 싶어 같은 미술관을 예약했고 심지어 같은 레스토랑도 예약했다. (그 미식의 나라에서! 많고 많은 미슐랭 대신에!)
반대로 하지 못했던 걸 하기 위해서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은 일정 중 제일 마지막으로 미루어두었다. 첫 파리라면 분명 이 일정에 나 스스로도 불안함을 가졌을 테지만 이제는 나도 알고 있다. 에펠탑 따위야 파리 어디에든 있다는 것을.
취사선택의 설렘은 구글 지도 곳곳에 깃발을 내렸다. 바게뜨 대신 ‘트라디’를 먹기 위한 여정도 만들었고, 달리기 좋은 러닝 코스도 알아보았다. 책 읽기 좋은 도서관과 카페를 몇 군데 기억해두고 그림과 연이 없는 사람임에도 화방과 문구점을 체크해 두었다. 조카 선물을 위한 장난감 가게는 물론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이 그대로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장담한다. 변수는 곳곳에서 내 발목을 잡을 것이고, 방전된 체력은 끊임없이 그곳을 꼭 가야만 하냐고 방문의 필요성을 되물을 것이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떤가. 인생사 언제 계획대로 진행되었다고. 내 여행의 기승전결은 시간순이 아니다. 고작 발 닿는 방향이 바뀌었다고 해서 전개가 삐끗하지는 않는다. 절정의 순간은 이 여행의 종결 후, 언제인지 모를 세 번째 파리 여행을 준비함과 동시에 찾아올 터.
나는 그렇게 짐이 가득한 캐리어의 지퍼를 채우며 회전문을 돌린다. 이 뮤지컬의 오버추어는 어쩌면 진작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