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번째 도시, 15번째 나라로의 여정을 준비하며
처음 유럽을 밟았던 것은 2013년 1월. 교환학생으로 입성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학생, 젊음, 여행. 이 키워드들의 로망을 하나로 응축했던 유럽에서의 생활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주인공은 나야 나"에 취해있었던 꿈같은 시간들로 기억된다. 슬럼프나, 우울감, 외로움 등과 같은 홀로 서는 생활에서 떨어지는 부산물조차도 청춘의 나이테(?)라고 여겼던 시간들.
내가 취했던 유럽의 강렬한 첫 감상은 결코 나만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제는 너무나도 대중적인 작가가 된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여행의 기술> 에서 암스테르담을 이렇게 묘사했다.
Aankomst(도착)에서 a를 두 개 쓰는 것에, Uitgang(출구)에서 u와 i가 잇달아 나오는 것에, 외국어 밑에 영어가 쓰여있는 것에, '접수대'라는 말을 쓸 곳에 balies라고 쓰는 것에, 프로티거체나 유니버스체 같은 실용적이면서도 모더니즘 냄새가 나는 글자체를 사용하는 것에. 그 안내판이 나에게 진정한 기쁨을 준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다른 곳에 도착했다는 첫 번째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내 머릿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구절이다. 노랗고 파란 것이 많은, 영어는 잘 들리지 않지만 그래서 더 안들리지만, 입에 머금는 소리나 파찰음이 난무하여 재미있는 현장. 그리고 여기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는 느낌. 그렇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에서 우두커니 서서 캐리어를 꽉 쥐었다.
다행스럽게도 네덜란드의 남부도시에서 열심히 살아가던 교환학생은 자신의 유럽 여행기를 블로그에 꼬박꼬박 기록했다. 이제와서 들춰보니 정말, 써놓길 잘했다. 날 것으로 기억하기에는 내가 이제는 꽤 오래산 축이 되어 버려서 하나하나 붙잡고 있지 못했었다. 게다가, 현재로써는 그저 평화롭고 순조로운 생활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던 것이 함정이었다.
몇 년동안 묵혀있었던 기록물은 시트콤이 따로없는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놀랍게도 매일매일이 블링블링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나날. 무사한 날이 없었을 정도다. 헤드라인으로만 뽑아봐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더불어 생의 지혜를 격한 방식으로 득했던 나날이기도 하다.
1. 벨기에 브뤼셀: 버스 놓치고, 역에서 밤새다가 노숙자에게 손목 잡히고 도망치다가 러시아인에게 구조
[교훈] 노숙은 절대 하지 말아야한다.
2. 프랑스 파리: 민박집 담 넘다가 발목이 삔 채로 근교 투어, 심야에 의대생이던 투숙객이 응급조치 시행
[교훈] 담 넘기는 절대 하지 말아야한다.
3. 스페인 마드리드: 샹그리아 3잔 정도 마시고, 지갑을 통째로 분실(혹은 소매치기)
[교훈] 과음은 절대 하지 말아야한다.
4. 헝가리 부다페스트 : 트램 안에서 지갑 훔치던 소매치기한테 소리질러서 겨우 지갑 세이브
[교훈]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애초에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5. 스위스 제네바 : 역에서 밤새다가 노숙자를 피해 즉석사진 촬영기에서 노래부르며 하룻밤 버티기 성공
[교훈] 노숙은 절대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야한다.
얼마나 지난걸까. 그렇게 첫번째 도시 암스테르담을 밟은 이후, 이제 서른여섯번째 유럽 도시로 향할 준비를 한다. 국가로 헤아려본 적은 있었지만, 도시로 나열해보니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다. 부단히 노숙 하고, 야간 기차와 버스를 동원하면서 달성한 기록이라 개인적으로는 뿌듯한 숫자다.
"그래서, 이번엔 어디로?" 라고 묻는 지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럽 지도를 넘겨다 본 순간부터 정해져있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갈 수 있을때까지 가자. 이 하나로 심플해졌다. 제한이 많은 신분으로 전락해버린지 꽤 되었지만, 멀리 가보기로 했다.
내 여름방학을 잘 부탁해, 오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