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빙하를 만난다는 것

요쿨살론(Jokulsarlon)

by 베링



이륙에 가까운 설렘 : 빙하를 만나러 가는 길


기대감에 이른 새벽부터 눈이 반짝 떠지는 날. 오늘은 빙하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아이슬란드를 이루는 키워드 중 단연 원탑의 존재감과 신비감으로 여행자를 설레이게 하는 주제.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빙하지대에서 녹아내린 빙하호수인 요쿨살론으로 향하는 일정이다. 10시간이 넘게 버스에 몸을 싣어야 하는 여정, 이륙 만큼이나 멀리 떠나는 길, 긴장과 설렘이 반반.


아이슬란드행을 확정지을 무렵, 가장 먼저 스케줄링을 끝낸 일정인데다가, 생애를 통틀어 몇 번이나 올 지 모르는 기회로 여겼기 때문에 경량 패딩과 양말을 두 겹 덧대며 그 설렘을 노출한다. 그치만, 레이캬비크 시내에서는 사실 눈의 자취조차 쉽게 관찰할 수 없었고, 버스를 타고 1-2시간을 내달려도 얼음 조무래기(?) 비슷한 것도 찾을 수가 없어서 사실 빙하를 볼 수나 있는 것인지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계속 내달려도 나오는 풍경. 쨍한 하늘빛과 흙색, 녹색의 조화는 매일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못내 아쉬운 식단의 연속이지만, 든든히 먹어두기로 한다.



빙하 티켓 오피스 앞에 당도해버렸다





바로 눈 앞의 장면, 이게 진짜일 리 없어


얼마나 지났을까. 버스 투어 가이드가 수시간을 버스에서 묵혀진 여행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금세 티켓 오피스를 통과하고 보트에 태워버린다. 몽롱한 정신,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녹초다. 오피스 앞에서도 빙하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보트에 올라타고, 유난한 엔진소리를 내며 호수로 진입한다.


차가운 바람을 직통으로 맞는다. 이제, 잠이 깬다.



슬슬 신세계로 입장하는 기분이 드는 순간, 이게 빙하입니다 빙하.



빠른 속도로 눈 앞에 그 대열을 펼치는 빙하 무리.



?

이게 정녕 현실의 장면이 맞는 것인지. 얼떨떨한 여행자를 싣고 보트는 계속 빙하를 스쳐간다.


단체로 멍한 상태의 여행자들에게 가이드는 또 하나의 감각을 선사하고자 설명을 덧붙인다. 보트 끝 쪽에서 간단히 빙하 한 덩이를 끌어올려서, 잠시 전시하더니 이내 있는 힘껏 깨부순다. 그리고 한 조각씩 손에 쥐어준다.


"깨물어 먹어보세요, 이게 빙하입니다. 빙하"


속이 훤히 비치는 얼음이라, 불순물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바로 입에 가져다가 깨물어 먹는다. 시원한 감각, 다시 느껴지는 싸-한 호수의 바람. 내가 요쿨살론에 왔구나.



빙하를 와그작 깨물어보길 권했던 가이드


널부러진 빙하조각들, 투명한 것들을 뽀각뽀각 밟고 만져보았다



보트에서 내리고 나면, 이제 적나라한 빙하의 풍경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이 풍경을 어떻게 소비해야 할까. 사진만 찍기에는 참으로 가볍고 아쉬울 따름. 그래서, 여행자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셀피(Selfie)를 촬영하고, 연이어 다양한 포즈로 단체 사진을 찍어 보는일. 괜히 돌을 주워 빙하 호수에 던져보는 일. 다양한 각도와 빛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빙하를 공들여 기록하는 일. 빙하를 앞에 두고 음료를 마시며 그 분위기 자체를 음미해보려고 하는 일. 빙하 호수 앞에서 돌을 쌓아올리고 어떤 소원을 빌어보는 일.


참으로 다양한 행동들이 빙하 호수를 감싸고,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이 존재를 꾹꾹 새겨넣는다. 나도 먼발치에서 파노라마뷰를 기록하기도 하고, 다시 맛을 보기도 하면서.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체험을 해보려 애썼다. 애썼어.


각자의 방식으로 풍경을 맞이하는 자세. 본인도 그 속에 슬쩍 끼어들어본다.




조각들이 틱틱 부대끼는 소리가 파도만큼이나 크다.


요쿨살론을 먼발치서 바라다본다. 얼어붙은 것은 빙하, 녹은 것은 빙하 호수가 된다.



2시간이 채 못되는 시간동안 이 곳에 머물렀고, 이제 또다시 긴 길을 돌아 레이캬비크로 돌아갈 시간이다.


내 뒤로 요쿨살론에 도착한 다른 여행자들의 환호성에 괜시리 뿌듯한 마음마저 느껴진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뽀각이는 얼음 조각을 신발 밑굽으로 잘잘하게 뽀개며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보트를 타고 조용하게 흘러내려가는 빙하를 가로지른다


만져보면 조금이라도 실감이 날까? 아이처럼 입 속에 가져가보는 이들도 다수.




이번 피서가 단연 최고였다고 전해라


돌아가는 길에는 긴긴 시간 버스에서 삭혀진 여행자를 딱 한번 다른 곳에 내려주었다. 대단히 큰 스케일의 폭포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사운드나 비주얼이 꽤 존재감이 있는 편이었다. 폭포를 둘러서 내려오는 간단한 체험 속에서 폭포수의 남다른 파워가 끼얹어주는 미스트를 맞기도 했으나, 덤덤했다. 요쿨살론이라는 본 게임을 끝나고 온 터라, (과장을 보태자면) 그저 그런 천지연 폭포(2)를 본 느낌이랄까. 대형 폭포를 쉽게 스킵할만큼 내가 만났던 풍경의 임팩트, 그 후유증에 놀란다.



여정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시간, 여전히 건조하게 느껴지는 아이슬란드의 메뉴지만, 로컬 맥주 한 잔을 끼우면 그래도 하루를 탈탈(?) 터는 개운함과 함께 오늘자 감상이 정리된다.

나는 오늘 결국 빙하를 만났다 - 내가 몸 담은 행성에서 이런 뷰를 한 번 쯤 누리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기특하게도 여기 찾아 올 생각을 했다는 것. 반도의 여름을 피해 떠나 온 피서 중 단연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을지.



빨간 점처럼 박힌 여행자의 크기로 느낄 수 있는 폭포의 스케일
아이슬란드 하루의 마무리는, Gull 맥주가 책임져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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