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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Nov 21. 2020

헬싱키, 메리 론리 크리스마스

아카데미아 서점, 카페 알토(Cafe AALTO)




크리스마스에는 유럽이지, 그리고 나는 혼자 왔지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물건너   했지만, 북유럽의 도시는 기가 막히게 조각조각을 접붙여서 크리스마스 바이브를 조성했다. 거리 한복판, 골목 구석구석 귀여운 것들로 눈과 귀를 즐겁게 채워주는 나날들. 털모자와 양털부츠로 한껏 겨울 착장을 완성해봤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기분은  쓸쓸했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던 요며칠과 달리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질수록 연약한 마음가짐(?)으로 스톡만 백화점을 어슬렁거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기는 글렀다. 진눈깨비가 날리던 12월의 헬싱키.



Merry Christmas Market 그리고  Merry-go-round(회전목마)



헬싱키를 비롯한 유럽의 도시들은 이순간을 기다린것마냥 빠르게 분위기를 바꾼다.





그래서, 책과 커피가 달래줄 수 있을까 했지


크리스마스 주간에 헬싱키역 근처를 지나며 스톡만백화점 옆에서 어렵지 않게 아카데미아 서점을 찾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꽉찬 연말의 기운 속에서 한아름 책을 고르려는 발길이 이어지던 곳이다. 핀란드 뿐만 아니라 북유럽 내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내가 점심시간에 자주 붙어있곤 하는 광화문의 교보문고와 비슷한 역할로도 보였다. 영어 서적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원하는 책을 고르고 독파해내긴 어려웠지만, 아름다운 서가와 그 사이에서 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를 찾던 공간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벽에 전등이 알알이 맺힌 모습



모던한 디자인에 수를 놓으니 따뜻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완성되었다.



빙그르르 서점을 돌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면 서점의 전경을 한 눈에 보면서 커피타임을 즐길 수 있는 카페 알토가 등장한다. 서점과 카페로 이어지는 동선이 마음에 들어서 꼭 오전 타임 즈음에 가서 글을 읽기도 하고 적기도 했다. 틈틈이 적던 헬싱키에서의 글은 여행을 다녀와서 아직까지도 읽지 않았다. 이 때의 일상과 기분은 더 시간이 지나서 꺼내들고 아련하게 우려먹을까 해서다.



카페 알토 속을 비집고 들어선 나, 그리고 여정 내내 들고 다녔던 Alice in Wonderland



카페의 네이밍은 이 공간을 핀란드의 디자이너 알바 알토가 설계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핀란드의 화폐가 유로화에 통합되기 전에는 알바 알토가 새겨져있었을 만큼 핀란드 디자인에서는 큰 존재감을 가진 아티스트라고 한다. 파이미오 사나토리움(Paimio Sanatorium)이나 이딸라(iittala)의 사보이 베이스(Savoy Vase) 디자인이 우리가 알고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카페 알토는 본인의 최애 영화인 <카모메 식당>에서 인물간 첫 만남을 그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쓰고 읽는 것 외에도, 다양한 북 커뮤니티 활동이 있던 공간이기도 하다.



커피가 주를 이루지만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이들도 더러 있다. 알코올과 책이 결합된 트렌드가 한국에서는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향유되고 있지만, 이 곳에 있는 중장년층의 사람들은 그게 진작 체화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오전타임에도 알코올과 글자를 함께 즐기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어느 오후에는 초록색 목도리를 한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서 글을 끄적이고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그가 참 멋스러워서 말이라도 걸어볼까 했지만, 내 목도리만 만지작 거리다가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전등 너머 보이는 주문테이블에 서있었던 뿔테를 낀 점원은, 대단히 젠틀하게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를 설명해주어서 방문할 때마다 활짝 웃으며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따뜻한 잔과 달콤한 접시를 앞에 둔, 메-리 론-리 크리스마스.



즉석에서 내려주는 커피와 내 사랑 시나몬롤을 한 상으로 차리고 나면 나도 <카모메식당>의 사치에처럼 헬싱키에 새로 터전을 잡아가는 세미로컬(?)이 된 듯한 기분이었달까. 의외로 고소하기 보다는 산미가 강한 커피의 맛과 밀도가 높고 쫀쫀한 시나몬롤을 다 먹어갈 때 즈음엔 진눈깨비도 맞을 수 있을만큼 기력이 차올랐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의 도시, 그리고 따뜻하게 속을 데우고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소화하는 하루,

적어도 이너피쓰를 이루었다. 이만하면 메리 론리 크리스마스였다-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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