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선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며

by 화산대폭발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두운 밤 침대의 발 아래로 빛나는 브라운관 TV와 시작된다. 네 식구가 한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다 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침대 위엔 나와 누나뿐이었다. 부모는 자리를 비운 채였다. 잠에 취해 멍해 있을 때 누나도 부스스 일어났다. TV의 부욱 찢어지는 지지직 소리와 함께 정신이 들었다. 기다려도 부모는 오지 않았다. 누나와 나는 겁에 질렸다. 누나와 울먹이며 당시 세 들어 살던 2층 주택의 외부 계단을 내려와 잠시 헤맸다. 조금은 건조한 어두운 밤, 풀꽃밭 사이로 풀벌레 우는 소리 들리고 멀리 거리의 불빛과 자동차 소리가 스몄다. 거리가 나오자 대로 맞은편 슈퍼의 파라솔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 보였다. "엄마!"하고 젖은 소리를 내니 둘이 휙- 돌아봤다. 어머니는 놀람과 걱정이 섞인 웃음으로 우리를 환하게 안아줬다. 어리광을 피우며 다시 품에 안겨 잠에 들고 기억은 끝이 난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만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형체는 파라솔 건너 기억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대신 또렷이 남는 건 그 밤의 기온과 습도, 신기할만치 차가 없던 거리, 내 삶은 결국 부재에 대한 갈망으로 채워질 것이란 예감 같은 것이다.


어머니는 늘 경험을 허락하는 사람이었다. 영화와 책, 음악과 미술이 나를 드나들었다. 특히 영화는 내가 가장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비디오 대여점을 했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게를 접으며 남은 비디오테이프를 집에 들여왔고, 난 손만 뻗으면 어떤 영화든 볼 수 있었다. 손에 잡힌 영화에는 때로 피와 폭력이 넘치는 것도 있었고, 이해 자체가 안 되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끝내 묻곤 했다. "어땠니?". 그 물음은 형식적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세상을 곱씹는 훈련이 됐고 말로 남기는 습관을 남겼다. 경험이라는 건 언제나 내게 물음이 뒤따라오는 것이었고, 그 물음이 또다시 다른 경험으로 향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영화는 그렇게 나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쳤다.


아버지는 내게 오래도록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현실보다 상상으로 더 많이 존재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메리야스 차림으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뒷모습, 담배를 피우며 어느 반지하 사무실에 있던 모습)이 너무 적어서 도리어 전설처럼 남은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이라크 전쟁을 보며 파병을 갔다고 믿었고, 아버지를 닮은 영화 속 배우를 보고 아버지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어떤 이름은 알았지만, 그 이름 뒤에 붙은 삶을 알 수는 없었다. 그 빈 자리는 내 상상의 놀이터였던 셈이다.

초등학교 5학년의 어느 날, 친가 사촌 형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 "너네 아빠 카드빚 때문에 이혼했잖아." 그 말 한 마디로 아버지는 더 이상 내게 신화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충격은 얼마 가지 않았는데, 기억이 없으니 잃어버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속상했던 건 이제 내가 그 빈 자리의 놀이터에 더이상 갈 수가 없게 된 점이지, 애당초 없던 것을 누군가가 없다고 확인시켜준다고 해서 찾아오는 슬픔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버지의 빈 자리를 '남들과 다른 나'라는 점으로 되려 자존감 삼았다. 내게 아버지란, 없는 자리였기에 더 크게 자라난 하나의 상상력이자 날 구성하는 공간이었다.


아쉬운 건 스크린 위에서였다. 부재 자체는 무겁지 않았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채로 삶이 계속 흘러갔고, 되려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속 부자의 의미만은 내게 전부 공백으로 남았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아버지를 보며 관객들이 아버지의 장난스런 모습을 보며 눈물 젖을 때, 나는 그 감정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었다. <위플래쉬>에서 부자가 함께 영화를 보며 팝콘을 함께 나누는 장면은 공허하게 흘렀다.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가 자신의 숙적인 다스베이더,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절규를 잘 이해하지 못 했다. 어차피 평생 몰랐던 사람인데 이제서야 아버지라고 알게 된 것이 대수인지? 영화가 의도하는 누군가의 감동은 내 감정의 공백 위에 있었다.

처음엔 어머니를 대입해 이해하려 했으나 상황이 달랐다. 엄마는 초인이었다. 단순히 아버지를 대신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삶을 전부 바쳐 누나와 나를 키운 존재였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개념보다 항상 커다랗게 다가왔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가진 그 작은 빈 자리에는 너무 거대하여 대체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내가 놓친 무엇이 영화의 감동 전략 대상인지 직접 파악하고자 했다. 단순히 '아버지'를 나타내는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영화에는 사회적 아버지상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고, '아버지' 자체를 공부해야 영화에서 전달하는 캐릭터의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부재는 나를 고립시키는 대신, '아버지'의 존재 의의를 내가 더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게 해줬다.


돌이켜보면, 나는 누나와 함께 부모를 찾아 헤메던 기억을 영화의 최초의 형태로 받아들인 것 같다. 내 어릴 적 기억의 공간은 더 이상 찾아갈 수 없는 장소에 있다. 훌쩍 커서 다시 찾아가 본 그곳은 내 기억과 전혀 달랐다. 2층 집 앞의 대로는 단순히 2차선 도로였다. 키를 훌쩍 넘기던 풀꽃밭은 사라지고, 슈퍼는 흔적조차 없고, 그 공기의 입자감마저 부재했다. 그러나 내게 남겨진 슈퍼 앞 파라솔의 영상을 다시 재생해내는 순간 나는 다시 불안한 아이가 된다. 물기 머금은 풀들이 내 발목을 스치는 감각이 떠오른다. 옅은 바람이 내 머리를 헝클며 지난다. 재회할 수 없는, 손에 닿지 않는 만큼 더 단단히 내 것이 된 나의 기억.

그렇다면 내게 영화란 무엇이었을까. 가장 먼저 본 예술이고, 가장 먼저 잃어버린 장소다. 동시에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아버지의 빈자리이기도 하다. 내가 쓰려는 책은 아버지의 빈 얼굴에서 시작된, 아버지를 찾기 위한 여정이고 그 부재를 인정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다. 영화 속에서 나는 아버지를 만났고, 잃어버리고, 다시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