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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Sep 11. 2020

2.5단계 시국 패스트푸드 알바 후기. txt

슈퍼을 열아홉 알바생의 버거왕에서 살아남기 - 먹고 살기 힘들다 ep.1

< 먹고 살기 힘들다 >

부제 : 슈퍼을 열아홉 알바생의 버거왕에서 살아남기


ep.1 - 2.5단계 시국 패스트푸드 알바 후기. txt


줄거리 : 유럽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코로나로 인해 모든 계획이 망가지는  지켜보던 열아홉 백수는  시국이 끝나는 날을 기다리며 자본주의 사회에 발맞춰 금전적 대비를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친구의 꼬드김에 갑작스레 입사한 버거. 아무것도 모른  주휴수당만 바라보고 일을 시작했던  때는 몰랐다. 내가 일하게  곳은 지하철 1호선 뺨치는 무법지대라는 것을….






7월 말에 5개월 간의 버거왕 크루 생활을 때려치고 양양으로 줄행랑쳤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거의 매일 햄버거를 먹으며 마스크+비닐장갑 착용 상태로 온갖 무겁고 기름진 것들과 함께 일하니 만신창이가 된 건강 상태(엄청난 피부 트러블+거의 맛이 간 손목과 뒷목+everyday가 배탈 day+6시간 근무 중 앉아있는 시간은 단 30분 간의 휴게 시간 뿐)

둘째. 어느 순간부터 돈에 집착하는 강박 증세 발현(aka. 아무리 힘들어도 야간 수당을 받기 위해 마감 근무…)

가장 중요! > 셋째. 안하무인 얼렁뚱땅 유아독존 진상들을 하루에 열 명 씩 응대



이런 총체적 난국의 상황 속에서 돌아보면 어떻게 5개월이나 버텼는지 참 신기하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퇴사를 결심했다. 계속 골든 버거를 만드는 킹메이커로 살기에는 내 몸과 마음이 이미 너덜너덜해져서 감당이 어려웠다. 물론 악착 같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 덕분에 적금을 꽤 모으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얼른 퇴사 수순을 밟고 양양에서 검정고시 공부와 지인의 가게를 도와주며 나름의 요양(...)을 했던 건데….



점장님과 나눈 대화. 현대인의 필수품이라는 '넵' 말투를 사용하는 나.



다시 재입사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을 모아야 하는 확실한 목적의 탄생.(이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차차 설명하겠다.) 하지만 세상이 멸망해도 버거왕을 내 통장을 채워주는 장소로 삼을 마음은 없었다. 알바몬을 이 잡듯이 뒤지며 알바생을 구하는 온갖 가게에 지원 메시지를 보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근데 그러던 와중에.



출처 연합뉴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었다.


그다음은 독자 여러분이 예상하시는 것과 같다. 알바몬에 올라와있던 공고의 절반이 사라졌으며 내가 지원했던 곳들 중 단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남은 곳은 버거왕뿐이라는 친구(=날 꼬드겼던 그 친구)의 말에 흔들리던 나에게 점장님이 메시지를 보내셨고, 결국 난 홀린 듯이 재입사를 하게 되었다. 돈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어쨌든 다시 버거왕 킹메이커의 삶이 시작됐고, 늘 마감 근무를 도맡아 하던 내가 오픈 근무를 하게 되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마감 근무에 비해 건강한 생활이 가능해졌다. 아침 9시부터 근무를 시작해서 집에 돌아오면 4시쯤 되는 고정적 스케줄은 규칙적인 기상과 취침을 가능케 해주었다. 퇴근 후부터는 자기 계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메리트였다. 정신없이 바쁜 오전 타임에 근무하는 게 피곤하긴 해도 이제 어느 정도 해탈을 했는지 그러려니 하며 넘기는 중이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자 큰 변화가 생겼는데, 오히려 우리 매장의 경우 방문 손님이 거의 배로 많아졌다는 점이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으니 단돈 천 원인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몇 시간 내내 자리 잡고 있는 게 가능한 패스트푸드점으로 사람이 몰리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매장의 눈에 띄는 특성 중 하나가 방문 고객층의 연령대가 매우(정말 매우) 높은 편이라는 사실인데, 2.5단계 이후로 왠지 더 높아진 느낌이다.


바로 그게 문제다. 정부 지침에 따라 수기 또는 QR코드로 무조건 방문자 명부를 작성해야 하는데, 방문 손님은 훨씬 늘었건만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비협조적인 손님들이 수두룩하다는 것.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는 안하무인 손님들(aka. 진상)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크루들을 국정원 직원으로 생각하는 유형

- 우선 첫 번째는 말단 오브 말단인 매장 직원들을 국정원이나 청와대, 혹은 CIA 직원 즈음으로 여기는 유형이다.  매장 식사나 포장 등 방법에 상관없이 모든 손님들은 무조건 방문 기록을 남겨야 하므로 직원들은 손님이 주문한 제품을 수령할 때 해당 사항을 안내하는데, 이 유형의 손님들은 본인의 개인정보를 왜 알려줘야 하냐며 따진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적사항을 이용해 사찰이라도 할 셈이냐고 화를 내기 시작한다. 이건 명백한 불법이라는 말과 함께 대충 아무 법이나 늘어놓는 이 유형의 고객들을 마주치면 노이로제에 걸리는 건 시간문제!


2. 귀차니즘에게 지배당하는 유형

- 첫 번째 유형이 대부분 노인 고객층인 반면, 이 유형은 거의 젊은 손님들이다. 수령 시 기록을 남겨달라고 이야기할 때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아니, 포장만 하는데도 이걸 적어야 돼요?" 하는 본 유형의 고객들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온몸으로 본인의 스트레스 게이지가 맥시멈을 찍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 유형의 손님들이 가진 또 다른 특징이 있는데, 절반 이상은 에어팟을 끼고 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본인 귀에 꽂힌 이어폰 때문에 제대로 안내를 못 들었으면서 직원들에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다. 근데 10초 동안 QR코드 인증하는 게 어려우면 햄버거는 도대체 어떻게 사러 오셨어요?


3. 고집불통 시치미 유형

- 개인적으로 제일 넌더리 나는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유형의 고객들일 경우 보여주는 태도가 거의 똑같다. 기록을 남겨 달라고 하면 일단 모른다고 잡아떼거나 혹은 듣는 둥 마는 둥 가버린다. 쫓아가서 붙잡을 경우 적반하장으로 가시를 세운다.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니까!"와 "됐어, 안 해도 돼!"가 주로 등장하는 대사다. 정말 꿀밤이라도 때려주고 싶지만(아니 사실은 정강이를 걷어차고 싶지만) 직원들은 슈퍼을이므로 그럴 수 없다. 이런 고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경우 난 분명히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나라 팔아먹은 을사오적이라도 된 기분이다. 안 해도 된다는 걸 왜 본인이 정하시냐고요.

+) 계속 잡아떼던 고객 중에 본인의 것이 아닌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긴 경우도 있었다.




7천만 명이 다 같이 하는 조별과제의 조장이신 정은경 청장님... 사진은 3월 6일 자 브리핑 사진. 출처 보건복지부


이렇게 한도 끝도 없는 민폐 손님들을 만나면 2.5단계 격상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7천만 명이 다 같이 하는 조별과제라는 말이 정말 딱 맞는다. 조금만 배려하고 협조하면 될 일을 왜 그렇게 어렵게 만드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이런 고객들을 마주할 경우 대부분은 경찰 신고 가능 여부나 벌금 및 구상권 청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럼 대부분은 투덜대며 억지로 기록을 남긴다. 그러나 종종 굴하지 않고 마이웨이 진상 짓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벌금과 구상권의 액수까지 알려준다.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돈만큼 중요한 게 없다 보니 마지막까지 버티던 고객들 역시 그 부분에서 백기를 든다.


물론 모두가 침울한 코로나 시국에 개인 정보가 민감한 문제라는 것도 알고, 피로감이 쌓이다 보니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크루들도 전부 평범한 사회의 구성원일 뿐이다. 우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지만, 그게 우리의 존엄성이 무시당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손님이 왕이라고? 죄송한데 저희는 버거가 왕이라서요.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도, 만약 어딘가 방문했을 때 직원이 명부 작성이나 QR 인증을 요청한다면 협조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직원들 대부분은 최저시급 받는 말단 알바생이라는 것도 기억해주시길….






<먹고 살기 힘들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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