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격으로 취향을 결정(판단)할 수 있을까?
취향 전성 시대에서 취향 존중 시대로. 2021년까지 우리의 로망이었던 ‘라이프스타일’이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취향’으로 발전됐다. 스스로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확고한 취향’, ‘취향의 개인화’등 점차 세분화되는 취향 존중의 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취향은 어떻게 형성되고,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여러가지 선택의 근원은 무엇일까?
20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1]는 개인과 집단의 문화적 취향은 선천적이 아닌 개인의 사회적 조건(사회계층, 직업, 학력 등)에 의해 구축되고, 이를 ‘아비투스(habitus)’ 라 논한다. 1990년대 후반 팝아트가 유행하면서 고급미술과 대중미술의 구분이 불분명해지고, 옴니보어(Omnivores)[2]와 스놉(snob)[3]경향이 나타나면서 문화적 취향이 계급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게 되었다. 스마트폰과 ICT기술의 확산으로 인해 융복합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SNS 유행과 소셜커머스 도입으로 문화 취향의 구조도 변했다.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패턴으로 고정되지 않고 개인의 관심 및 성향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로 문화 소비가 일어나는 ‘취향 절충주의(taste eclecticism)’가 구축됐다. ‘코로나19’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개인에 대한 고민은 깊어 지고, 주류에 편입하려는 '보여주기'보다 '진짜 본인의 가치관'을 중시하면서 '자기만의 생각과 철학을 정리'하려는 태도가 강해졌다.[4] 물질이 아닌 철학을, 고급이 아닌 고유가, 어나더 레벨이 아닌 넥스트 레벨이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이다.[5] 로즈우드(Rosewood)
호텔 그룹의 최고 경영자 소니아 쳉(Sonia Cheng)은 “새로운 럭셔리는 가격이 아닌 취향이 정한다.”라고 주장하며 특정 계층의 전유물을 벗어나 ‘얼마나 가격이 높고 품격 있는가’가 아닌
‘얼마나 개인의 취향을 잘 맞추는가’로 럭셔리 브랜드의 기준이 변하고 있다는 소견을 개진했다. 이는 혁신적이고 의미 있고 진정성 있는 경험으로 나타난다. 성수동의 개척자, 아틀리에 에크리튜(Atelier Écriture)의 김재원 대표는 자그마치, 오르에르, 포인트오브뷰, LCDC 등 발견의 기쁨을 주는 다양한 공간 경험을 제안하며 “취향에는 위아래가 없다.”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에르메스의 켈리백을 든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오픈 런(open run)으로 명품 이미지가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샤넬을 사려고 줄을 선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일명 '에루샤'라고 불리는 프랑스 3대 명품이 지난해 국내에서 3조2000억원대 매출을 거두며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6] 그렇다면 취향 존중 시대에도 여전히 가격으로의 취향 판단은 유효한 것일까? 근대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7]의 ‘가치 관련성 value-relevance’에 입각하여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매출에는 한 가지 이유가 아닌 MZ세대 투자 개념의 소비, 코로나19 여파로 보복 소비, 브랜드 일부 제품 가격 상승 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이분법적으로 고가의 가방을 드는 것만으로도 고급 취향을 드러내어 계급 간의 ‘구별 짓기’[8]가 가능했으나, 지금은 탈세 혐의가 있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든 연예인보다, 저렴한 에코백을 든 자연 보호 운동가를, 비싼 화장품을 쓰는 사람보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비건화장품의 사용자를 오늘날 더 고급 취향 소유자로 인정한다. 이는 물질의 가격과 취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허버트 마르쿠제(Marcuse Herbert)[9]는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가 생산되는 욕망을 과잉 억압하여, 내가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배타적 독점’을 하여 개성이 박탈(objective personality)된 획일화된 ‘일차원적 인간(One-dimensional Man)’을 논한다. 그 해결 방법으로 ‘감각기능의 자기승화’와 ‘이성의 탈승화de-sublimation’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의 소비 관행이 미적 유토피아의 허상 행태를 대변하고 수동적인 청중의 ‘행복한 의식’을 이용한 자유는 모조품이지, 실재가 아니다. 자유에 대한 비판적인 전망을 하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제안한다.[10] 커뮤니케이션 철학자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디자이너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닌, 대중의 가치 요구에 부흥하는 사람을 넘어서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거나 부여해주는 사람이라고 증언한다.[11] 21세기 취향 존중 시대의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참여 지식인으로 '부르디외 학파'를 형성하고, 사회학을 '구조와 기능의 차원에서 기술하는 학문'으로 파악하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범세계적인 지식인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대표적인 저서에는《구별짓기》, 《호모 아카데미쿠스》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 상류층이 클래식과 오페라에서부터 뮤지컬, 록, 심지어 힙합까지 좋아한다는 것이다. 배타적이고 제한적인 고급예술뿐 아니라 저급예술까지 포괄적으로 수용한다는 뜻: Austin Harrington, 정우진, <예술과 사회 이론>, 이학사, 2014, p. 156
[3] 특정상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희소성이 떨어져 차별화를 위해 다른 상품을 구매하려는 현상, 속물효과 [네이버 지식백과] (한경 경제용어사전)
[4] 최인수 외, <2022 트렌드 모니터>, 시크릿하우스, 2021
[5] 신수정 외, <2022 트렌드 노트>, 북스톤, 2021
[6] 출처: 컨슈머타임스(Consumertimes)(http://www.cstimes.com)
[7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치는 시대에 활동한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사상가. 대표 저서에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있다.
[8]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취미판단의 사회적 분석』(1984): Austin Harrington, 정우진, <예술과 사회 이론>, 이학사, 2014, p. 150
[9]1960년대 서구 학생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두였던 사회철학자. 대표저서로 『이성과 혁명』 Vernunft und Revolution, 1941, 『일차원적 인간』 One-dimensional Man, 1964, 『에로스와 문명』 Eros and Civilization, 1959가 있다.
[10] Austin Harrington, 정우진, <예술과 사회 이론>, 이학사, 2014, pp. 215~216
[11] Vilém Flusser, <Vom Stand der Dinge. Eine kleine Philosophie des Design>, STEIDL,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