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 이게도, 그는 우리를 '유기물'이라 불렀습니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W를 찾아서'를 다시 보며


약 15년 전, 아주대학교 강당에서 있었던 전설적인 강의 하나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비록 그 시절 그 자리에 직접 있지는 못했지만, 저는 유튜브에 남겨진 그날의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며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님의 메시지를 뼈에 새겼습니다.


영상 속 그는 특유의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통찰로 인류를 잔인하게 딱 세 부류로 나누더군요.

0.1%의 창의적 인간 (W):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남들이 미쳤다고 할 때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천재들.

0.9%의 안목 있는 인간: 스스로 W가 될 수는 없지만, W를 알아보고 그들의 배에 함께 올라타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

99%의 잉여 인간 (유기물): 세상이 바뀐 뒤에야 "와, 세상 좋아졌네"라며 감탄만 하는, 그저 밥 먹고 이산화탄소만 배출하는 존재들.


처음 '유기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유기물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강의를 반복해서 들을수록, 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뼈가 시리도록 아팠지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아, 내가 바로 그 유기물이었구나."

수의사 면허가 있고, 원장 소리를 듣지만,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른 채 그저 병원 문만 열고 닫으며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성실함' 하나로 버티던 저의 모습. 그것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그저 소비하고 배설하는 '경제적 유기물'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1. 록펠러는 왜 차도 없는데 주유소부터 지었을까?



강의에 나오는 흥미로운 예시가 있습니다. 헨리 포드가 처음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세상 99%의 사람들은 그를 조롱했습니다.

"말보다 비싸고, 기차보다 느린 저 시끄러운 쇳덩이를 누가 타?"

하지만 그 순간, 동네 건달 출신의 록펠러(0.9%)는 무릎을 쳤습니다.

"저게 미래다. 저게 돌아다니려면 기름이 필요하겠군."

그는 차가 거리에 10대도 다니지 않던 시절, 미리 길목을 선점해 주유소를 짓기 시작합니다. 대다수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때, 그는 묵묵히 '판'을 짰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석유 재벌의 탄생입니다.

0.1%가 판을 깔면, 0.9%는 그 기회를 선점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99%는 뒤늦게 비싼 기름값을 내며 소비자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역사의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2. '성실함'이 최고의 미덕인 시대는 끝났다



박경철 원장은 말합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는 '기계의 시대'였다고요.

이때 인간에게 요구된 미덕은 '성실함'이었습니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 시키는 대로, 정해진 매뉴얼대로 나사만 잘 조이면 됐습니다. 여기서 "왜(Why)?"라는 질문은 불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세상은 '인간의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더 이상 성실함만으로는 부가가치를 만들 수 없습니다. 구글, 애플, 그리고 지금의 AI 혁명을 보십시오. 기계가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인간의 창의력과 "왜?"라는 질문 하나가 수백조 원의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부품인가, 아니면 질문을 던지는 주체인가?"


3. 통찰(Insight)은 어디서 오는가?



그렇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0.1%의 천재는 못 되더라도, 그들을 알아보는 0.9%의 투자자는 될 수 있을까요?

박경철 원장은 그 방법으로 의외의 것을 제시합니다. 경제 신문이나 차트 분석이 아니라, '예술'과 '철학'을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영화 (친절함): 밥상을 다 차려서 입에 넣어줍니다.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편안합니다. 뇌는 쉽게 받아들입니다.

추상화, 난해한 연극 (불친절함): 생략되어 있습니다. 칼로 찢긴 캔버스를 보며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저게 도대체 뭔데? 작가는 왜 저랬을까? 이게 나에게 주는 의미는 뭐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애쓰고, 행간을 읽어내는 훈련. 그 '인문학적 근육'이 단단해져야 비로소 남들이 보지 못하는 투자의 기회(W)를 알아보는 직관(Intuition)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결론: 유기물로 살다 죽을 것인가

저는 진료실에서 가끔 이 강의를 떠올립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찾아오는 환자들, 그리고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그저 숨 쉬고 밥 먹는 유기물로 살다가 갈 것인가?"


우리가 투자를 공부하고, 역사를 배우고, 자본주의의 규칙을 익히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불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99%가 아니라, 그 파도의 방향을 읽고 올라타는 0.9%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어딘가에는 또 다른 W가 "이게 미래야!"라고 외치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AI일지, 블록체인일지, 우주 산업일지는 모릅니다.) 대다수는 여전히 그를 미치광이 취급하겠죠.

투자하는 수의사로서, 그리고 이 글을 쓰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짐해 봅니다.

적어도 세상의 변화를 '남의 일'처럼 구경하다 뒤늦게 감탄만 하는 삶은 살지 않겠노라고.

당신은, 준비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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