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이 투자판에서 '호구'가 되는 이유

면허증은 당신의 계좌를 지켜주지 않는다

전문직 투자가 어려운 이유.jpg


동창회나 학회 뒷풀이 장소, 술잔이 몇 잔 돌고 나면 으레 주식이나 코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평소 진료실에서는 세상 점잖고 냉철하던 김 원장, 박 원장들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내가 재무제표를 얼마나 꼼꼼히 봤는데! 이 회사는 기술력이 확실해. 시장이 지금 미친 거야."

"내가 아는 고위급 정보통에 의하면 이건 무조건 가는데, 세력이 장난치는 거라니까."

참 아이러니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공부로는 상위 2% 안에 들었던 그 똑똑한 사람들이, 왜 투자판에만 들어오면 수익률 하위 10%의 '호구'가 되는 걸까요?

저 역시 그 뼈아픈 과정을 먼저 겪어본 동료 수의사로서, 우리 전문직들이 투자에서 필패(必敗)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심리적 함정 3가지를 고백하려 합니다.


1. '선생님' 소리에 익숙해진 자의식(Ego)의 함정



우리는 진료실에서 늘 '선생님'으로 살아갑니다.

보호자분들은 우리의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판단에 따라 소중한 생명의 건강이 좌우됩니다.

물론 우리가 틀릴 확률도 존재하지만 매우 낮고, 대부분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습니다.

문제는 이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그대로 주식 시장에 들고 올 때 발생합니다.

시장은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확신해도 주가는 보란 듯이 반대로 곤두박질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 내가 틀렸나?" 하고 겁을 먹고 빠져나옵니다. 하지만 평생 정답만 맞혀온 전문직들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내가 틀렸을 리 없어. 시장이 비이성적인 거야."

오기를 부립니다. 일명 '물타기'를 하며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입습니다. 진료실에서는 원장님이지만, HTS(주식창) 앞에서는 그저 자본금 1,000만 원을 쥔 '익명의 개미 1'일 뿐이라는 사실. 대부분의 동료들은 비대한 자의식 때문에 이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2. "공부하면 된다"는 '성실함'의 배신



전문직이 되기까지 우리는 엄청난 양의 공부를 했습니다. 엉덩이로 버티면 성적이 오르고, 합격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는 '정직한 인과관계' 속에서 20~30년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투자도 똑같이 접근합니다.

퇴근 후 피곤한 눈을 비비며 밤새 차트를 분석하고, 뉴스를 3개 국어로 읽고, 복잡한 보조지표를 공부합니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보상 심리를 갖습니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시장은 그에 합당한 수익을 줘야 해."

하지만 투자의 세계는 학교 시험이 아닙니다. 공부만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오히려 복싱이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에 더 가깝습니다. 내가 가진 기술과 능력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변하는 유동적인 시장 상황에 맞춰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실천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꽤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잠시 손을 놓았다가, 수의대 예과 때 동기들과 다시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실력이 비슷비슷했습니다.

그런데 방학이 지나고 나서, 제가 동기들을 압도적으로 이기기 시작했습니다. 동기들이 물었습니다.

"너 왜 이렇게 늘었어? 비결이 뭐야?"

제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많이 져봤거든."

방학 동안 배틀넷에서 수많은 고수들에게 깨지고, 지면서, 지금의 트렌드를 익히고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처절하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빌드를 외운 게 아니라, 패배를 통해 감각을 익힌 것이죠.

투자가 딱 그렇습니다. 책상 앞에서의 공부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시장에서 깨지고 손절매를 해보며 '대응하는 법'을 익히는 경험이 훨씬 중요합니다. 너무 많이 아는 것(지식)은 오히려 독이 되어, 단순한 추세를 보지 못하고 복잡한 음모론에 빠지게 만듭니다.

시장은 '가장 열심히 공부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게 아니라, '가장 유연하게 대응하는 사람'에게 상을 줍니다. 이 억울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3. 계급장을 떼지 못하는 지적 허영심



투자 사기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 누군지 아십니까? 은퇴한 노인? 세상 물정 모르는 가정주부?

아닙니다. 바로 '세상 물정 모르는 전문직'들입니다.

"원장님 정도 되시는 식견이면 이 복잡한 금융 구조가 딱 보이시죠? 일반인들은 이해 못 합니다."

이 한마디에 우리는 무장해제됩니다. 우리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면, 우리는 엉성한 투자 설명서도 남들은 모르는 '고급 정보'로 착각합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나는 특별한 정보를 얻을 자격이 있다'는 그 오만함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가장 쉬운 호구로 만듭니다.


투자의 세계에 면허증은 없습니다



저는 투자를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주식 계좌를 열 때는 수의사 가운을 벗자."

시장은 내가 서울대를 나왔든, 전문직이든, 자산이 얼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저 냉혹한 숫자의 원리로만 움직입니다.

제가 투자로 유의미한 수익을 내기 시작한 건,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인정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시장을 가르치려 들지 않고, 시장의 거대한 파도 앞에 납작 엎드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학생'의 태도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계좌의 파란 불이 빨간 불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동료 원장님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전문직 여러분.

혹시 지금도 "내가 샀는데 왜 떨어져?"라며 시장과 자존심 싸움을 하고 계신가요?

그 싸움을 멈추십시오.

당신의 화려한 면허증은, 당신의 계좌를 1원도 지켜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급장을 떼고 시장 앞에서 겸손해져야, 이 거친 머니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여전히 시장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알량한 자존심 대신 '유연한 대응'을 택하는 것이, 진료실 밖에서 내 자산을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말입니다. 부디 진료실 안에서도, 밖에서도 현명한 원장님이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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