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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Oct 31. 2018

2018년, 시녀를 위한 파반느는 없다

예쁜 쓰레기 인증 시대에 읽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작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책 표지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빛과 구도로 인해 주인공인 시녀들보다 한가운데의 공주에게 이목이 쏠린다. 과연 시녀들이 주인공일까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2009년. 첫 발매되던 해에는 확실히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에 더 주목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시절 썼던 독후감을 보면, 한번도 빛난 적이 없었던 여자를 빛나게 해준 남자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이 담겨있다. 그 때는 사랑이 내 관심사의 전부였나보다.


그로부터 9년이 또 지나 2018년이다. 그리고 나는 8년째 화장품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로맨틱한 현실은 사라졌고, 매일같이 업무에 시달리는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책을  읽어보니, 이제는 사랑이야기보다도 소설 전반에 녹아있는 사회의 구조, 사회의 분위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

박민규작가가 이 책을 처음 썼을 때보다도 우리사회는 더 가지기 위한, 그리고 그 가진것을 더 보여주기 위한 경쟁 사회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가진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제 외모를 넘어 소비 행태에까지도 전염이 되어버렸고, 예전엔 예쁘게 나온 셀카에 머물렀다면, 이젠 예쁜 쓰레기를 사고 인증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31천개나 인증된 인스타그램 속 #예쁜쓰레기


한편으로는 이런 시대가 참 고맙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팔아야 하는 화장품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내가 아닌가.
사람들이 예쁜 것에, 아름다운 것에 열광할 수록 우리 회사는 망하지 않으며, 나의 일자리 역시 보장될 것이다.
게다가 합리적인 소비자는 머리가 아프다. 그들이 상품을 사게 만들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니 그저 인스타그램에 인증할 정도로 예쁜 상품이라면 열광하는 소비자는 우리로선 고맙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이런 시대가 참 피곤하다.

그 경쟁 속에서 나도 도태되지 않고자,

내가 선천적으로 가진 열등포인트를 무언가로 극복하고자,

가령 더 예뻐지기 위해 화장법을 익히고, 피부과에 다니고,

최대한 '좋아보이는 것'을 먹고, 그 '좋고 예쁜 것'을 인스타그램에 끊임없이 올린다.

거의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박민규 작가는 우리가 하이힐을 신고, 예쁘게 꾸미는 행위를 함으로써, 

꾸미지 않고 애초에 꾸밀 가치도 없이 못생긴 사람을 깎아내리며 경쟁의 우위에 서고자 하지만,

결국 어차피 세상은 1프로의 다이아수저간의 경쟁일뿐, 흙수저든 동수저든 다 똑같이 부질없다고 얘기한다.

책을 읽으며 크게 공감한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더 그럴싸하게 보이기위해 나를 꾸미고, 좋아보이는 것을 먹고, 인스타에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이게 다 상술이라는 것도 알만큼 알면서도.


그렇기때문에 박민규작가는 부끄러워하지말고 부러워하지 말라는데

도리어 나는 이 책을 읽고 몹시 부끄러워졌다.

아둥바둥해도 어차피 쳇바퀴일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천적으로 특출나지 않은 것을 극복하며 나의 가치를 더 높이려는 노력은 특히나 한국사회에선 필요해보인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혹은 결혼상대)을 찾으려고 할 때도 모두 A+인데 한가지 항목이 D인 사람보다, 모든 항목이 B이상 되는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민규가 이 책을 썼던 2009년 보다도, 2018년 지금은 더더욱 왕녀의 옆에 있는 못생긴 '시녀'에게 주어지는 자리는 없다.

D인 외모를 B로 끌어올리기위해 사람들은 성형을 하고 시술을 하고 다이어트를 한다.

자리하나라도 차지하기 위해.

옳다는 생각은 당연히 들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2018년 지금으로선, 시녀를 위한 파반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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