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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l 05. 202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

계층을 나누며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그 어떤 서평도 읽지 말고 읽으실 것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왜 우리는 차별에 반대해야 하는가?
그 언젠가, 독서 모임에서 차별에 대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무엇에 대한 차별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무엇은 동성애였을 수도 있고 노인이었을 수도, 혹은 장애나 성별이었을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차별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히 알지만 '왜?'냐는 의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 바꿀 수 없는 속성에 대한 혐오의 비타당성, 이런 교과서적인 대답이 아닌 내 마음을 툭! 칠 수 있는, 조금 더 납득이 갈만한 설명을 원했다.

그때 한 사람이 답한 대답이 아직까지도 마음 한편에 보석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는 차별을 없애는 것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젠간 한 번씩은 차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그 어떠한 차별을 용인하는 순간, 그 차별은 미래의 다른 차별을 용인하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만약 지금 우리가 그 어떤 차별에 침묵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차별은 더 줄어들 것이고 그것이 좋은 사회로 나아가게 할 것이란 믿음이었다. 그 말은, 내가 너무도 쉽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차별의 말을 뱉으려는 순간마다 그 충동을 억제시켜 주는 마음의 소리로 작동하고 있다(종종 충동을 못 누를 때가 있긴 하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나의 마음의 소리' 같은 책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사다리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는 오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을 우리 시각으로 재단하고 줄 세울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더 나아가 나는 '무지하고', '가난한' 인간들보다 잘났고, 나보다 못난 '질병 같은' 인간들의 번식을 막아야 인류에 도움이 된다는 위험한 생각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준다.

어렸을 때부터 '물고기'들의 표본을 채집하고 이름을 붙이고 해부하여 우열을 나누고 진화척도에 따라 사다리화하는 일상을 보낸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물고기에서 만족을 못 하고 인간까지 우열을 가리려 했다. 가난하고 무식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번식을 막아야만 인류가 번영할 것이라 믿어, 우생학을 기반으로 한 강제 불임술을 옹호하고 시설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이런 사람이 평화상까지 수상을 했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는 몰랐을 것이다. 사람에게 '우열'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듯이, 실은 '물고기', 즉 '어류'라는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편의상 '어류', '물고기'라 부르는 그 집단 속 개개인들은 사실은 모두가 다르고, 어떤 건 오히려 포유류보다 더 인간과 가깝고, 그 어떤 것은 너무나도 거리가 멀어 하나의 개념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을. 결국 우리가 정의하는 개념, 분류, 계층 등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자연(있는 그대로의 우주)에 족쇄를 채우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불신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체계를. 인간의 잣대로 규정지은 그 무언가로부터 시작한 차별을 멈춰야 한다. 우생학이라는 것이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향했던,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구시대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해선 안된다. 지금도 이름만 다른 우생학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다수이기 때문에, 사회가 규정한 표준에 있기 때문에 우월하다는 것은 착각이자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이 책을 읽었고, 그래서인지 더 놀라웠다. 이 작가의 빌드업하는 능력에 정말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의 연속. 앞의 절반의 내용은 뒤의 절반을 위한 빌드업이었음을. 올해 읽은 책 중 단연코 1위인 이 책,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 ruler 뒤에는 지배자 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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