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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Aug 12. 2024

이렇게 또 사람을 거릅니다. 내 인생 두 번째 중대사.

Day 14 : 혈의 누 "XX브랜드에 누가 되지 않게"


내 인생의 두 번째 코로나?

오늘 아침 일어나 요가를 하고, 조식을 야무지게 먹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팠다.

최근 엄청난 두통이 있었고, 어제부터 속이 좋지 않았는데 이제 배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코로나인가 싶었다.


함께 철야를 진행했던 한국 디자인 업체분도 코로나에 걸려 떠나셨었고, 함께 팝업을 준비했던 마케팅 선배도 코로나에 걸린 채로 방콕을 떠나셨었기에 코로나가 의심되었다.

특히 2년 전 프랑스에서 코로나에 걸려 돌아왔을 때도 전조 증상이 심각한 장염이었기에 아뿔싸, 그것이 또 왔구나 싶었다.


급히 호텔 1층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코로나 검사 키트를 샀다.

코로나 검사 키트 있나요?


태국의 코로나 검사 키트는 참 신기했는데, 우리나라의 코로나 검사 키트가 코로나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태국의 것은 코로나 한 줄, A/B형 독감 한 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타쌍피 가능.


호텔 1층 화장실에서 조용히 작업을 진행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맞다고 나오면 타이레놀을 사러 가야 하니, 방까지 갔다가 가기가 귀찮았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

고로 스트레스성 장염으로 판정. 땅땅.

뭐라도 맛있는 걸 먹다가 걸렸으면 이해라도 하지, 매일 지쳐 쓰러져있다가 1일 1식 대충 룸서비스로 먹는 내게 잔인하기도 하다.


네, 음성입니다




내 인생의 또 다른 중대사, 결혼 말고 론칭

스트레스성 장염이 올 만도 했다. 이야기했듯이 정말 단 하나도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에 대해서도 그랬다.


사람이 중대사를 앞두면, 곁의 사람들을 한번 거른다고들 하지 않나. 내겐 태국 론칭이 그랬다.

다행히도 주변에 늘 응원해 주고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예를 들어, 유관부서에서 일하는 한 동기오빠는 내가 새로운 시스템을 어려워하자 스스로 하우투 영상까지 만들어서 내게 전달해 주고,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항상 달려와주었다. 그리고 갑자기 태국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픈데, 급히 비주얼 작업이 필요할 때, 옆팀 디자이너들이 발 빠르게 도와주셨다. 말하자면 끝도 없다. 그분들의 에너지에 그래도 한 발짝씩 내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면,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것 같은 일도 있었다. 상대는 내가 정말 사람 좋다고 생각했고 늘 믿어왔던 사람이었다.


철야 작업 가기 전, 저녁 8시경(한국은 10시).

남편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남편과 전화하는 중이니 카톡으로 하라고 했는데 내용이 황당 그 자체였다.


(※카카오톡 원본을 박제하고 싶지만, 마지막 의리로 참겠다.)

여러 에피소드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브랜드의 현지 디자이너가 역량이 부족해 끝까지 사고를 치는 상태였고, 이대로는 매장을 오픈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법인장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주셨다. 전직 디자이너였던 타 브랜드의 마케팀 팀장과 디자이너를 매장 오픈까지만 붙여주신 것이다. 대략 3주 정도 되고, 특히나 전담해서 한 기간은 10일 정도 된다.

(그녀는 내가 이전 에피소드에서 말한 그 '슈퍼맨'이다)


그런데 내게 연락이 온 사람은 그 타 브랜드의 본사 태국 담당인데(나와 같은 처지), 요는 나에게 본인의 팀장에게

"본의 아니게 XXX 인력이 헤라를 도와주게 되었다. 감사하고 XXX브랜드에 누가 되지 않겠다"라고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한숨)


아니, 내가 XXX 브랜드의 누구를 꽂아 달란 것도 아니었고 나의 의사결정도 아니었다(그럴 권한도 없다). 이 모든 것은 법인의 특단의 조치였는데, 지금 나더러 저 말을 본인의 팀장에게 하라는 것인가?

내가 고맙고 미안할 사람은 우리로 인해 매일 야근하는 현지의 그 브랜드 팀장과 담당이지, 그 브랜드의 본사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답을 했다. 그것은 내가 아닌, 법인장님께서 하셔야 할 말 같다고.

그러자 "나는 너니까 조언을 해준 건데, 그렇게 따지면 너를 공적으로 대해주리?"라는 답.

그런 사람이 오픈 직전 바쁜 나에게 그날 4시에 연락해, 본인 브랜드의 매장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나.

나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할 자신은 있고?


그 말에 전화로 이야기하자고 해서 통화를 했는데, 전화 내용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내가 그 얘기를 하면 모든 것이 쉽게 지나가는데, 나더러 일을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본인들의 윗선으로 올려 우리 브랜드를 깨버린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상황을 설명하려고 해도 말을 자르고 자기 이야기만 반복한다. 브랜드를 깰 거라고.

이쯤 되면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상황.

철야 전 조금이라도 쉬려고 했는데, 이대로 계속 전화하다가는 쉬지도 못하고 나갈 각이었다.

그래서 그냥 답했다.

제발 위에 얘기해서 우리 브랜드 좀 깨달라고.

그 외 선 넘는 여러 말들도 했으나, 의리로 적지 않는다.

(팩트 체크되지 않은 우리 브랜드 비하 발언 등)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감정적으로 너무 지쳤다.

아무것도 쉽게 되지 않는 와중에, 나한테서 대접과 대우를 받아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게 내가 친분이 있던 사람인 것도 슬펐다(그것도 좋게 생각해 왔던).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그렇게 1시간을 남편과 통화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아마 아직도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할 것이다.

여전히 내가 본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겠다'라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의 소통을 하고 싶지 않아, 카톡, 인스타, 전화를 모두 차단했다.


이것이 바로 내게 태국 론칭이 중대사가 된 이유이다.

사람을 거름종이로 거르듯 걸러버렸다.


잘 가.

내 마음속에서도 천둥번개가 쳤고, 나의 눈은 툭눈붕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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