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까미노가 시작된다.
camino에는 여러 개의 길이 있다. 다들 잘 아는 길은 그중에 제일 대중적인 프랑스 길 French way이다.
내가 선택한 길은 포르투갈 순례길 camino portugues,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이 길을 선택했고 이마저도 이 길 전체의 절반 되는 120km 여정을 5일간 걸을 예정이다. 포르투에서부터가 아닌 발렌사 valenca 지역에서부터 시작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지금은 포르투에서 버스를 타고 발렌사까지 가는 중인데, 느낌이 묘하다. '지금 버스가 가고 있는 이 길도 역시 까미노 순례길일 텐데, 나는 버스를 타고 4일간의 여정을 그냥 한 번에 뛰어넘다니'
갑자기 의문점이 생겼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서 자동차, 기차, 비행기까지 발명이 되었는데도 나는 왜 내 발을 고집하여 이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일까?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더 빠른 시간과 더 넓은 공간 안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면 지구 반대편까지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빠른 시간 안에 살면서 되려 놓치게 되는 것들이 많아진다. 빠름이 미덕인 오늘날 현대인에겐 오히려 느림이라는 것을 즐기고 누리기가 더 힘들어지고, 이것들은 오히려 때때로 나에겐 독이 된다.
바쁨은 나를 밀어내고, 나를 멍청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돌아볼 시간
그리고 지금 순간에 집중하고 행복하게 보낼 여유.
비포장도로 위 돌멩이를 밟고, 지쳐가는 다리를 이끌고 걸음을 옮기다 보면
출발점에서 했던 다짐은 저 멀리 잊고, 떠나오기 전 가방에 넣었던 것들은 다 버리고만 싶어 진다.
꾸역꾸역 가방에 이것저것 넣었던 나의 욕심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느끼며 한 가지를 깨달아간다.
과한 욕심을 비우는 것을 배워가는 길이구나
가방 안에 이것저것 넣었던 잡동사니들이 떠오르며 허덕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자책한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무작정 많은 것들을 깨닫고 얻어갈 줄 알았는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 순간이 왔다. 순례길은 떠나기 전 내가 생각해왔던 모습과는 과연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천년 된 오래된 길을 걸으면서 햇살 떨어지는 숲길을 걸으면서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내 자아에 대해서 고민하고 무언가 깨달음을 느끼면서 걸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무거운 배낭 메고 허덕이면서 어깨에서 비명, 발바닥에서 비명, 그렇게 힘겹게 한 걸음씩 발을 옮겨가고 있다.
상쾌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면서 사진 한 장 찍으면서 시작했던 그 시작에서의 기억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까미노 순례길 위에서 발걸음을 옮겨간다.
그렇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욕심쟁이였다.
떠나오기 전, 친구가 이 길을 3일 만에 주파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나도 충분히 120km 되는 길을 그리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나의 여정 계획을 짰다. 지도를 바라보는 나는 욕심에 차 있었고 목적지를 저 멀리 레돈델라le dondela로 잡았다. 오후 2시라는 늦은 시각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의욕은 과하게 잡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은 직선이 아니었다. 큰 도시, 작은 도시를 지나갈 때마다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을 안으로 들어가거나, 큰 도시일 경우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 대성당을 지나쳐서 가야 하는 것이 순례길이었다. 이를 몰랐던 나는 그저 지도 위 길만 바라보며 직선거리만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결국 해가 지기 시작하는 8시가 되어서야 나의 과한 욕심을 뒤늦게나마 인정을 했고, 결국 난 산속에서 노을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다음 도시 오포리뇨o porrino까지는 7km 넘게 남았고 해는 계속해서 져가고 있었다. 그 순간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봤고,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 휴가와 이 돈이면 남들처럼 발리나 몰디브 같은 바닷가에 누워서 쉬고 있을 텐데 나는 지금 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과욕에 활활 불타오르던 나는 한순간에 재가 되어 불을 꺼뜨린 채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그래도 인적 없는 산속에서 밤을 맞이할 수 없기에 뛰기로 결단을 내렸다. 10kg 정도 되는 배낭을 짊어지고 산속을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응원을 해주기도 하면서 점점 정신줄을 놓아가고 있었다. 2시간 가까이 지나자 오포리뇨o porrino 외곽이 나타났고, 해는 이제 다 져서 어스름해진 도시를 바라보며 숙소에 도착했다. 경주 같은 순례길을 걸으며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이며 그렇게 기절해버렸다.
첫 번째 날, 나의 과한 욕심에 대해서 후회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서, 새로운 날을 맞이했다.
여전히 나의 어깨는 비명을 지르고 발바닥은 망신창이이며, 무리하게 뛰는 바람에 허리, 허벅지 근육들도 다 같이 오케스트라 합주를 하는 마냥 이곳저곳에서 삐그덕 댄다.
하지만 어제의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나는 새벽 일찍부터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나선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공기는 상쾌하다. 해가 없으니 앞이 안 보이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머리가 더 시원하여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여명이 올라오고 아침 일출이 시작된다.
차분하게 혼자서 걷다 보니 어느새 점심이 지나 해가 중천에 올랐다. 생각해보니 어제부터 시작한 순례길에서 지금껏 아무와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들 순례길에 오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아직 그런 시간은 없었다.
무거운 허벅지를 움직여 산 오르막 코스를 열심히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허벅지는 나를 배신한다. 점점 속도가 쳐져갔다. 그러던 와중에 저 앞에 어떤 남자가 보였다. 그 역시 이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바로 허벅지가 힘을 낼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였다.
'저 사람만 따라잡자' 그리고는 속도를 가해 그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포르투갈 친구 N을 만나게 되었다.
돈 치팅! Don't cheating!
포르투갈 친구 N이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건넸다. 나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져 있었고, 구글 맵을 켜서 나의 위치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N으로부터 들은 한마디로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을 이해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친구야, 과거의 길을 걷고 있는 와중에 현대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나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엄연히 커닝이야. 아침에 맵을 보고 어디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왔으면, 그다음부터는 길에 집중하고 느끼고 만끽하길 바라.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에 너무 집중하고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다 보면 지금 나의 이 순간들을 놓치니깐 말이야. 기술의 발전이 나를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지만, 반면에 그 기술로 인해서 지금 이 순간 느끼고 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지"
머리를 해머로 맞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멍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기술을 이용하고 내 것으로 활용하는 데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다른 것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까미노는 빠르게 완주하려고 걷는 길이 아니다. A에서 B까지 걷는 경주가 아니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재정비하고자 하여 와 놓고는 경주처럼 이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출발 후부터 내가 얼마나 걸어왔는지, 얼마나 빠르게 이를 수행하는지, 그렇기에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체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길을 빠르게 지나쳐가야 하는 경기장 트랙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신체적 괴로움에만 집중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지, N 덕분에 중요한 것을 다시 찾은 느낌이다.
다시금 나에게 상기시킨다.
까미노는 A에서 B까지 가는 경주가 아니다, 과정을 만끽하고 즐기는 길이다.
발이 물집 투성이다.
첫 번째 물집은 터뜨렸다가 지금 계속해서 쓰라리다. 지금 왼쪽 발에 물집이 두 개가 신규로 추가되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금 그 발은 바쁘게 움직이며 산을 오르고 있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전해오는 자잘한 고통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힌다. 참다못한 내가 N에게 발이 아프다고 잠깐 쉬었다 가자고 청했다.
잠시 길가 바위에 앉아서 쉬었다. 발이 너무 뜨겁고 습해서 신발끈을 풀어서 쉬었다. 옆에서 보니 N이 발에 바셀린을 바르고 있었다. 산악에 대해선 전혀 몰랐던 나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N은 바셀린을 진짜 몰라?라는 표정으로 나에게 바셀린을 바르는 이유는 물집이 방지용이라고 알려주었다. 물집이 예방도 된다니! 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몸만 챙겨서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N으로부터 바셀린을 건네 받아 발에 천천히 도포시켰다. 바셀린으로 무장하자 통증이 조금은 덜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N이 물집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말을 건넨다.
"The worst is yet come" 그 말을 건네고는 피식 웃는다. 최악은 아직이다라는 말인 건가..
그 말을 혼자 잠깐 동안 곱씹어보았다. 최악은 아직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멀었고, 지금 상황은 최악이니 아직 웃을 수 있다는 말인 건가. 또 더 생각에 잠겼다. 흡사 무언가와 닮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것과. 그렇다! 우리가 흔히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우리 인생과 흡사 닮은 상황이었다.
살다 보면 안 좋은 일들은 언제나 발생한다. 이를 나는 어찌 받아들이고 행동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항상 이렇게 좌절해왔던 것 같다. 아직 이건 최악이 아니잖아 The worst is yet come을 스스로에게 얘기해주고 지금의 힘든 상황을 피식 웃으면서 일어나본 적은 없던 것 같았다.
생각보다 생각을 한 날이었다. 다시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잠시간 다녀간 온기만을 조금 남긴 채 씩씩하게 다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