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것보다 어려운 건 왜 떠나는지를 스스로에게 말로 설명하는 일이었다. 까미노를 가겠다고 결심한 건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온 일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 안에 씨앗처럼 숨어 있던 마음이 어느 날 갑자기 발아한 것처럼, 그 감정은 준비도 없고 논리도 없었다.
누군가는 종교적인 이유로 누군가는 인생의 전환점을 위해, 혹은 단순한 모험심으로 이 길을 택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다만 ‘이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울림 같은 것이 있었다.
“이유 없는 결심은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소명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토록 이 길에 끌리는 걸까. 일상을 버티는 데 익숙해진 내가, 왜 굳이 지구 반대편의 낯선 흙길을 혼자 걷고자 결심한 걸까. 그것은 마치 기억나지 않는 오래된 꿈의 조각을 붙잡는 기분이었다.
“요즘 잘 지내?”
그 짧은 안부 인사가 어색하게 느껴졌던 건 내가 오랫동안 진심 어린 대화를 회피해왔다는 증거였다.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고, 감정을 다루는 일은 피곤하게 느껴졌으며, 마음의 문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닫혀갔다. 무심코 웃고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때때로는 깊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적절한 말을 고르면서도 내 안은 점점 텅 비어갔다.
삶은 매끄럽게 굴러갔고 불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하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어딘가 매일 5%쯤 모자란 느낌. 어깨 위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얹혀 있었고 그 무게는 천천히 피로로 변했다. 일상은 루틴으로 굳어졌고 감정은 마모되었으며 내면의 파동은 너무 오래 정지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마음은, 결국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는다.”
까미노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은 마치 어릴 적 들었던 전설 같았다. 걷기만 하면 마음이 정화되고 인생이 다시 정돈된다는 말. 선뜻 믿기 어려웠지만 그 단순함에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한다는 행위, 그 안에 감정의 본질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게도 그 회복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항공권을 예매했다. 업무 일정을 조율했고 장비를 하나하나 준비했다. 스페인어도, 포르투갈어도 모르면서 유럽의 시골길을 혼자 걷겠다고 마음먹었다.
길을 나선다는 건 어쩌면 내 안에 있는 옛 기억을 다시 꺼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보는 것처럼 까미노의 흙길을 밟는 동안 나는 그동안 밀쳐두었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출발 전날 밤 나는 가방을 다시 열었다. 무엇이 불필요한 짐이고, 무엇이 진짜 필요한 것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간식도 챙기고 싶고, 사진도 잘 찍고 싶고, 좋은 숙소에 머물고도 싶었다. 하지만 짐은 곧 나의 욕심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챙기려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것은 여정에서뿐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울 앞에 섰다. 낯선 옷차림의 내가 거기에 있었다. 아웃도어 재킷, 통 넓은 바지, 묵직한 배낭, 한 달 치의 감정을 담은 눈동자. 그렇게 준비를 마친 나는 이제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이 여행은 단지 스페인 땅을 밟는 일이 아니라 내가 다시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느낌적으로 알고 있었다.
“길은 목적지가 아니라 내 안의 침묵을 마주하기 위한 공간이다.”
나는 그렇게 누구의 기대도 없이 스스로에게만 닿아 있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까미노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만 살 수 없다는 자각이 나를 이길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도착지는 스페인이었지만 나는 포르투갈의 국경 마을인 발렌사에서부터 걷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프랑스 길처럼 사람들이 많고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길이 아닌 조금은 덜 알려진 길, 조용한 길을 걷고 싶었다. ‘종단길’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아닌, 나의 중심을 향해 걷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평일 오전의 도로는 막힘이 없었고 라디오에서는 별 의미 없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마치 아주 오랜 시간 작별을 고하듯 천천히 흘러갔다. 나는 말없이 창밖을 보며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무겁지 않은 배낭이 옆자리에 있었다. 짐은 줄였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덜어내지 못한 무언가가 가득했다.
공항은 언제나 어떤 출발과 도착이 교차하는 장소다. 나 역시 누군가의 도착을 지나쳐 내 출발로 걸어가고 있었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단순히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오래된 일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마치 익숙한 삶의 배경을 잠시 꺼두고 완전히 다른 채널로 넘어가는 것 같은 기분.
출국심사를 마치고 탑승구 앞에 앉았을 때 갑자기 이상할 만큼 평온해졌다. 낯선 땅에서 혼자 걷는다는 두려움보다는 이미 무언가가 끝난 듯한 감정이 먼저 찾아왔다. 익숙한 것들과 잠시 이별했다는 감각. 그것은 해방과 동시에 아주 작은 쓸쓸함이 섞인 감정이었다. 내가 떠나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도, 어디로 가는지를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 순간엔 오히려 위로처럼 다가왔다.
비행기 탑승이 시작되고 나는 무심하게 줄을 따라 움직였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창밖을 보면서도 실감은 잘 나지 않았다. 정말 가는 걸까? 정말 이 먼 나라까지 가서 흙길을 걷겠다는 생각이 맞는 걸까? 준비는 끝났지만 마음은 아직 어디쯤인가에 남아 머뭇거리고 있는 듯했다.
“출발은 발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걷기 시작하는 일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몸이 살짝 떠올랐다.
그 순간 마치 어떤 껍질이 벗겨지는 듯한 감각이 스쳤다. 세상이 아래로 멀어지면서 내 일상도 그만큼 작아졌다. 익숙했던 거리, 매일 지나던 사무실, 무의식적으로 반복했던 하루의 루틴들이 저 멀리 아래로 사라졌다. 불현듯 가볍고 동시에 조금은 허전했다.
기내식이 나오고 영화를 트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수면 안대도 쓰지 않았고 이어폰도 꽂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 막연한 기대, 조금의 두려움, 설명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파편들. 그것들이 천천히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어쩌면 거창한 시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무언가를 끝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아주 오래된 내면의 침묵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지금 ‘이 길’을 선택했고 그 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사실이다.
이 선택이 내 삶의 어떤 방향을 바꿔놓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는 출발했고 그 출발은 이미 내 안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흔들고 있었다.
Camino 소소한 TIP #1:
“첫 걸음을 준비하는 순례자에게”
까미노를 처음 준비할 때 가장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는 “일단 걷기만 하면 돼”라는 말이다. 이 단순한 조언은 맞기도 하지만, 막상 떠나기 전에는 수많은 사소한 고민들이 따라온다. 어떤 신발을 신을지, 무슨 가방을 들고 가야 할지, 몇 킬로그램까지 짊어질 수 있을지, 어느 정도 체력이 되어야 하는지 등등.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장비보다 ‘마음가짐’이다.
첫 번째로 준비할 것은 ‘왜 걷는가’에 대한 자기만의 이유다. 그것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애초에 까미노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기도 하니까.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졌느냐는 것이다.
둘째, 출발 전에 너무 많은 것을 계획하려 하지 말자.
특히 MBTI P형(계획보다는 즉흥과 흐름에 강한 타입)이라면 더더욱. 하루에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할지, 어디에서 잠을 잘지, 미리 다 정해두면 오히려 그 계획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순례길은 흐름을 따르는 것이 아름답다. 어떤 날은 예상보다 멀리 갈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예정보다 일찍 멈추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모든 변화에 유연해지는 것.
셋째, 꼭 필요한 짐만 챙기자.
까미노의 철칙 중 하나는 “배낭 무게는 자기 체중의 10%를 넘지 말 것.” 이것은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해 보여 챙기게 되지만, 막상 걷다 보면 정말 중요한 건 두세 가지밖에 되지 않는다. 가벼운 짐은 몸뿐 아니라 마음도 덜어준다.
마지막으로, 까미노는 완주가 목적이 아니다.
길을 끝까지 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길에서 ‘나’를 어떻게 만나는가이다. 힘들고 외로운 순간이 찾아와도, 그 시간 속에서 나와 깊이 대화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보물이다.
이 길은,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묻는다.
그러니 너무 완벽하지 않아도 준비가 덜 되어도 괜찮다.
그저 지금 당신 마음 한구석이 이 길을 원하고 있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Buen Camino!
곧 까미노가 시작된다.
언젠가부터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이 길.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다만 언젠가, 언젠가는 꼭 이 길을 걸어보리라 막연히 품고 있던 소망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었다. 나는 포르투갈 순례길, 그중에서도 북쪽 국경 도시 발렌사에서 시작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기에 포르투에서부터가 아닌 중간 지점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총 120km 남짓한 여정을 5일에 나누어 걸을 계획이다.
지금 나는 포르투에서 발렌사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있다. 고요한 차창 너머로 포르투갈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흘러간다. 햇살에 반짝이는 붉은 기와 지붕, 완만한 언덕을 따라 늘어선 포도밭, 작은 교회당과 먼지 쌓인 정류장 하나. 그 풍경은 이방인인 내게도 이상하리만치 익숙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버스의 편안한 속도감은 나를 점점 더 불편하게 만든다. 걷기 위해 이 땅을 찾았건만 나는 지금 그 걷는 길을 바퀴로 건너뛰고 있는 중이다. 이 길도 분명 까미노의 일부일 텐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이 길을 걷고 싶은 걸까?'
그 질문은 어느새 내 안에서 되뇌어진다. 현대 문명이 준 혜택 덕분에 우리는 비행기로 반나절 만에 지구 반대편에 도착할 수 있고, 지도 앱은 몇 초 만에 최단 경로를 알려주며, 수많은 정보들이 손가락 하나로 연결된다. 삶은 더 빨라졌고, 편리해졌고, 넓어졌다. 그런데도 왜 나는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굳이 낯선 땅 위를 발로 걸으려는 걸까.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었다지만,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만든 건 아닐까. 나는 무엇을 되찾고 싶어 이 길에 나섰을까.
“빠름은 많은 것을 잃게 한다. 나는 그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야 했다.”
버스는 조용히 달린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다 이내 눈을 감았다. 바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길을 택했지만 나도 모르게 아직 익숙한 방식으로 시간을 계산하고 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지도 위의 거리일 뿐, 그 거리의 온도나 냄새 그리고 햇빛의 각도는 아니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무언가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얻음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 까미노는 버티는 길이고 놓는 길이다. 그것은 나의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발렌사에 도착했다. 국경 도시답게 작고 단단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오래된 석축과 기념비, 어두운 타일로 된 건물들이 조용한 오후 햇살 아래 잠들어 있었다.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찾아 걸었다. 골목은 고요했고 길에는 순례자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문득 긴장감이 밀려왔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가방을 풀며 다시 짐을 정리하는데,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다. 정말로 필요해서 챙긴 것인지, 아니면 단지 ‘없으면 불안할 것 같아서’ 챙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몇 가지를 꺼내고 배낭에서 빼냈다. 줄이는 것은 늘 어렵지만 줄일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욕심은 어깨를 짓누른다. 걷기 위해선 손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침대에 앉았다. 다른 순례자들도 하나둘 도착하고 있었지만, 말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왔고,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침낭을 펴고, 내일을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다.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감정이 가슴 한가운데에서 뒤엉켜 있었다. 지금 나는 괜찮은 선택을 한 걸까. 여기에 오기 위해 들인 비용, 시간, 체력. 과연 그만큼의 의미를 얻어갈 수 있을까. 아니, 얻는다는 개념 자체가 이 길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인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말자. 그저 걷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렇게 까미노에서의 첫날 밤이 깊어갔다. 낯선 도시의 적막함, 침낭 안에서의 고요한 떨림. 나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일, 내가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첫걸음만큼은 내 의지로 시작하고 싶었다.
이른 새벽 알람 없이 눈을 떴다. 숙소 안은 고요했고 다른 순례자들도 묵묵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짐을 챙기고 신발을 신었다. 출발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새벽 공기가 얼굴에 닿는다. 서늘하고 조용하고, 어딘가 숭고하다.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 한편이 뻐근하게 울렸다.
“걷기 시작하는 마음엔 항상 떨림이 있다. 그 떨림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까미노는 시작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비가 있을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길 위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이상하게 든든했다. 아무도 없는 길, 이른 새벽, 그리고 걷는 발. 그것이면 충분했다.
처음 이 길에 오기 전, 나는 계산적이었다. 친구가 이 길을 단 3일 만에 걸었다는 말을 들은 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120km라는 거리. 지도 위에서 보았을 때 그리 길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체력과 의지를 믿었고, 어느 정도의 고생쯤은 예상 가능한 선에서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날 목적지를 꽤 멀리 설정했다. 출발 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무리 없이 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실제 길은 지도와 달랐다. 까미노는 단순히 A에서 B로 직선으로 이동하는 길이 아니었다. 그 사이엔 수많은 작은 마을과 골목, 고개, 대성당, 계단, 돌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존재했다. 지도로 본 거리와 현실의 거리는 달랐고, 발로 걷는 감각은 사진 속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하루의 해는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해가 기울 무렵 나는 아직도 목표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산속에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해가 기울자 산속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외로움과 불안이 함께 밀려왔다. 도로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남들처럼 바닷가에서 여유를 즐기며 휴가를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무얼 위해 걷고 있는 걸까. 한 걸음 한 걸음, 발바닥에 전해오는 고통은 나의 어리석음을 조용히 되새겨주었다. 가방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마음은 점점 작아졌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인적 드문 산속에서 밤을 맞는다는 건 그 자체로 위험이었기에 나는 결단했다. 10kg에 가까운 배낭을 멘 채 뛰기 시작했다. 속도를 내는 만큼 심장도 같이 뛰었고, 폐는 숨을 급하게 몰아쉬며 나를 밀어붙였다.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오포리뇨 외곽이었다. 겨우 도시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는 완전히 져 있었고, 나는 축 처진 어깨로 알베르게 문을 열었다.
그날 밤, 침대 위에 몸을 눕히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고,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후회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고여 있었다.
“걷는다는 건, 때론 내가 만든 환상과의 싸움이었다.”
다음 날 아침 몸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어깨와 허리는 뻐근했고 허벅지와 종아리는 뻣뻣했다. 발바닥은 화끈거렸고 근육통은 아침의 차가운 공기마저 따가운 통증으로 변환시켰다. 하지만 그 고통보다 더 분명했던 건 전날의 교훈이었다. 나는 무리하지 않기로 욕심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새벽의 순례길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어둠 속을 걷다 보면, 차가운 공기 속에 머리도 맑아지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새벽의 정적은 사색을 위한 공간이 되었고, 그 속에서 나는 다시 걷는다는 의미를 붙잡기 시작했다.
그 무렵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던 중 앞서 걷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 역시 나처럼 숨을 몰아쉬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고개를 넘고 있었다. 나는 은근한 경쟁심과 함께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저 사람만 따라잡자. 딱 거기까지만.”
그렇게 나는 그를 따라 속도를 조금 올렸다. 그리고 그 짧은 목표는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는 포르투갈 사람 N이었다. 우리가 처음 나눈 대화는 어색했고 짧았다. 하지만 낯선 길 위에서 마주한 같은 리듬의 발걸음은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는 차분하고 느린 사람이었고, 나는 그보다 조금 더 빠르고 초조한 사람이었다. 서로 다른 속도는 처음엔 간극이었지만, 곧 서로를 보완하는 균형이 되었다.
어느 날, 나는 길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어디쯤인지, 다음 목적지까지 몇 킬로미터인지. 그때 N이 말했다.
“돈 치팅(Don’t cheating). 이건 커닝이야.”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우리는 과거의 길을 걷고 있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위치를 확인하며 걷는 건, 이 길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이야. 오늘 어디까지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다음부터는 그냥 걷는 거야. 이 순간을 보고, 느끼고, 숨 쉬는 게 먼저야.”
그 말은 단순한 충고 같았지만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나는 언제나 효율을 따지고 계획을 세우고 정확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 길에서는 지금 나의 속도와 감각, 피로와 감정이 모두 변수였고 그 모든 것을 '정답'으로 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Camino is not A to B. 이 길은 경주가 아니라 삶이다.”
그날부터 나는 더 이상 지도를 보지 않았다. 대신 길에 집중했다. 표지석에 새겨진 조개 무늬, 누군가 남긴 돌탑, 바람이 스치는 방향, 햇살이 머무는 나뭇잎의 떨림. 모든 것이 방향이었다. 세상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고 나는 그 조용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정은 점점 더 혹독해졌다. 발은 물집 투성이였고 이미 한쪽 발은 통증으로 절뚝거리고 있었다. 결국 걷다 걷다 나는 N에게 말했다. 잠깐만 쉬자고. 우리는 길가 바위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그는 조용히 가방에서 바셀린을 꺼내 발에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그게 뭐야?”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물집 방지용이야. 처음부터 발에 발라주면 통증을 줄일 수 있어.”
그 순간, 나는 내가 이 길을 얼마나 준비 없이 왔는지 깨달았다. 장비도, 지식도, 마음가짐도. 그는 바셀린을 건네주며 웃었다. 나는 그걸 조심스레 발랐다. 약간의 차이였지만 통증은 정말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N이 나를 보며 말했다.
“The worst is yet to come.”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나를 위로했다. 지금이 최악이 아니라면 나는 아직 웃을 수 있고, 아직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늘 최악을 두려워하지만, 때론 그 예고가 우리를 버티게 한다.”
나는 다시 일어섰고 걸었다. 걷는다는 건 포기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고 있었다. 발은 여전히 아팠고 하늘은 뜨겁게 내리쬐었지만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조용한 숙소의 침대 위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까미노는 단지 여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리듬 위를 다시 배우는 일이었다. 버리며 걷고, 고통 속에서 웃고, 익숙함을 놓아버리는 연습이었다.
“걷는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다시 걷기로 했다.
첫날 밤 알베르게의 좁은 이층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은 딱히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형광등 잔상이 남아 희미하게 보이는 회색빛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천장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피곤에 절어 잠이 쏟아졌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했다는 후회 그리고 내가 이 길을 얼마나 얕잡아봤는지에 대한 자책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들은 까미노를 걷는다고 하면 대부분 ‘힐링’이니, ‘자아 성찰’이니, 말로는 멋진 의미를 붙인다. 나도 그랬다. 숲길을 걷다 보면 어떤 깨달음이 불현듯 찾아올 줄 알았다. 흙을 밟으며 내면의 평화를 마주하고,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여유로운 숨을 쉬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었다. 10kg 가까운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고, 배고픔과 땀 그리고 발바닥의 통증은 ‘성찰’ 같은 낭만적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깨달음은 고요한 평화가 아니라, 불편과 마주하는 데서 온다.”
그건 ‘치열한 걷기’였다. 몸이 무거워질수록 마음도 가라앉았고, 욕심도 함께 드러났다. 나는 사실 걷고 싶었다기보다는 성취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5일 안에 120km 완주’라는 목표를 세웠고, 첫날부터 그 목표에 나 자신을 욱여넣고 있었다. 지도 위에 손가락을 대며 정한 도시는 결국 나의 고집과 허영의 집합체였다. 난 내 욕심을 가방에 꽉꽉 눌러 담고 이 길에 들어선 셈이었다.
다음 날 아침 통증을 안고 일어나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길은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 자존심까지 함께 끌고 가는 길이라는 걸. 걷는 동안엔 나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배낭의 무게는 내가 지닌 욕심의 무게 그대로였다. 걷는다는 건 결국 내가 짊어진 모든 것을 나 혼자 감당하는 행위였다.
알베르게를 떠나기 전 나는 다시 배낭을 열었다. 전날 밤에도 몇 개를 빼냈지만 아직도 너무 많았다. 물티슈 두 팩 중 하나를 꺼냈고 예비 티셔츠는 한 장만 남기기로 했다. 구급약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줄일 때마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한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물건 때문이 아니라 내가 손에 쥐고 있었던 ‘불안’ 때문이었다.
“불안은 물건의 형태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걸 짐이라 부른다.”
가볍게 다시 짐을 꾸려 나섰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마을은 고요했다. 걷는 이들만이 도로에 서서 준비운동을 하거나 조용히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어깨에는 여전히 무게가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전날보다 가벼웠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도로를 벗어나 숲길로 접어들면서 나는 다시 이 길의 고요함 속으로 들어갔다.
길은 사람을 가르친다.
어제는 욕심을, 오늘은 겸손을.
내가 내 체력과 의지를 과신했을 때 길은 그 즉시 경고했고 나는 그 안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이 길 위에서는 누구도 내게 ‘잘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박수도 없고 응원도 없다. 내가 나를 스스로 다독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다독임은 위로가 아니라 솔직함에서 시작해야 한다. ‘욕심 부리지 마. 넌 지금 지쳤어. 충분히 지쳤으니 이제는 천천히 가도 돼.’
그날 하루는 그렇게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이었다. 처음엔 ‘오늘 몇 km 걸었지?’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떠올랐지만 곧 그마저도 놓게 되었다.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의 성취였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방향이었다. 그리고 방향은 언제나 ‘조금 더 나다워지는 쪽’으로 향해야 했다.
고요는 처음엔 불편했다.
둘째 날 아침, 어제의 혹독한 첫날을 보내고 난 뒤 나는 여전히 쓰라린 발바닥을 질질 끌며 길 위에 다시 섰다. 알베르게를 조용히 나서며 문을 닫는 손끝이 조심스러웠고 한밤중의 적막은 아직 잔잔하게 머물러 있었다. 새벽 공기는 살짝 서늘했고 입김이 옅게 흘렀다. 가방을 짊어지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와 길 그리고 발소리만 있었다.
나는 걷기 시작했고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 조용함 속에서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전날의 무리함, 산속에서 해가 질 때 느꼈던 두려움, 뛰어내려오며 들었던 자책들 그리고 끝내 도착한 후의 안도감, 그 조각들이 고요한 새벽 안개 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그 고요는 나를 밀어냈고 동시에 끌어안았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단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내가 그동안 눌러두고 있던 감정들이 다시 떠오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내 마음과 조금씩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까지도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까미노에서는 의외로 종일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 날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나는 걸었고 그 걷는 시간 안에서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친구와 헤어진 날, 첫 직장에서 좌절했던 밤, 오래된 연애가 끝나던 날의 침묵. 그런 것들이 천천히 내 안에 다시 흐르고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다리는 여전히 뻐근했고 허벅지와 종아리가 번갈아 비명을 질렀다. 발가락은 감각이 둔해지고 있었고 배낭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숨은 점점 가빠졌고 마른 입술은 갈라졌다. 그런데도 걷고 있었다. 묵묵히 아무 말 없이.
커다란 나무 아래 두 사람이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옆에 놓인 두 개의 배낭.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도 나를 향해 부드럽게 고개를 들었다. 먼저 인사를 건넨 건 남자였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Buen Camino”를 건넸다. 나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되돌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독일에서 온 커플이었다. 남자 D는 러시아계 독일인으로 피아니스트였고, 여자 H는 유대인계 독일인 성악가라고 소개했다. 음악을 통해 처음 만났고, 사랑을 통해 길을 함께 걷고 있다고 했다. 대화는 조심스럽게 시작되었지만 음악이라는 공통된 감성이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D는 조용했고 말을 아꼈지만 필요한 순간엔 언제나 묵직한 울림을 주는 사람이었다. H는 그보다 조금 더 밝고 유쾌했으며 감정의 결을 따뜻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천천히 그러나 깊게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한적한 숲길을 걷다가 커다란 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 쉬게 되었다. 조용한 순간이었다. 바람만이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D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어릴 때 러시아에서 들었던 자장가가 있어요. 이 길 위에선 왠지 그 노래가 떠오르네요.”
그는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낮고 깊은 저음의 목소리가 나무 그늘 아래 울려 퍼졌다. 언어는 알 수 없었지만 멜로디와 음색은 마치 자연에 녹아드는 듯했다. 그의 노래는 바람이었고, 숲이었고 어머니 품 같은 따스함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 나는 H에게 물었다.
“혹시 히브리어 노래도 부를 수 있어요? 예전부터 히브리어의 음률이 너무 궁금했거든요.”
H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히브리 민요 한 곡을 불러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성악가답게 소울이 가득 담겨 있었고, 흙길 위에 스며드는 듯한 고운 선율은 듣는 이의 가슴을 천천히 조여왔다. 마치 천 년 된 나무가 그동안 지나간 모든 이들의 노래를 기억해낸 듯한 순간이었다.
그 감동의 여운이 가시기 전 그들은 내게 말했다.
“이제 너의 차례야.”
나는 처음엔 손사래를 쳤다. 부끄럽기도 했고, 이 감성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정도 앞섰다. 하지만 그들의 격려는 진심이었고,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결국 노래를 시작했다. 고심 끝에 내가 택한 곡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였다.
이 노래에는 한국의 역사와 감성이 담겨 있다. 가족을 떠나는 순간의 절절함, 분단국가로서의 비극 그리고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는 한 소년의 순수한 슬픔. 가사를 설명하며 나는 내 나라의 이야기, 내 세대의 감정을 전하려 애썼다.
D와 H는 조용히 듣고 있었고 노래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노래를 통해 단지 여행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깊이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말보다 멜로디가 앞섰고 설명보다 울림이 더 오래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힘들 때면 마치 노동요처럼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피곤한 다리를 달래듯 노래는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는 응원이 되었다. 까미노 위의 작은 콘서트는 그렇게 나무 아래에서 시작되어 길 위에서 이어졌다. 우리의 걷는 걸음마다 리듬이 있었고 숨결마다 멜로디가 있었다.
함께 걷는다는 건 단순히 속도를 맞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같은 길 위에서 같은 햇살을 받고 같은 고통을 견디고 같은 리듬으로 호흡을 나눈다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가 이 먼 곳의 흙길 위에서 같은 속도로 걸으며 나눈 대화는 어쩌면 언어보다 더 깊은 공감이었다.
길은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접어들었고 내 다리는 다시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새로 생긴 물집이 발바닥 깊은 곳을 찌르고 있었고 어깨끈은 피부를 쓸어내려 따끔했다. 걸음을 멈추고 싶은 유혹이 끊임없이 밀려왔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한 발짝 더 내딛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도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그들, D와 H의 존재가 주는 미묘한 위안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앞서 나를 감동시켰던 그 민요의 멜로디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고, 나는 따라 부르지는 못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다시 발걸음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 D도 흥얼거리듯 노래를 이어갔고, 나도 입을 벌려 간단한 한국 동요 한 구절을 읊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보다 노래로 서로를 부축하며 걸었다. 우리는 때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다가도 다시 옆으로 나란히 걷기를 반복했다. 어느 시점엔 H가 앞장서 노래를 이끌었고, 어떤 순간엔 D가 조용한 저음으로 무게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나만의 걸음과 숨을 다듬어갔다. 길 위의 우리는 마치 오래된 삼중주 같았다. 리듬은 어느새 발걸음을 밀어주는 에너지가 되었고 고통의 순간을 덜어주는 음악이 되었다. 피로 속에서도 음악은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은 다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길 위에서 음악은 그냥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정체성과 기억, 감정이 담긴 메시지였다. 말보다 더 솔직한 고백이었고 피로와 고독을 덜어주는 약과도 같았다.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우리 셋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발걸음을 의식했고 멀리 보이는 마을 지붕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풍경에 함께 안도했다.
“Camino는 꼭 인생 같아.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서 멈춰야 할지도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걸어야만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다. 아침엔 분명히 쨍쨍했던 하늘이 오후엔 흐려지기도 했고, 햇살에 웃던 순간이 이내 소나기로 얼룩지기도 했다. 길은 예측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정해놓은 계획들이 얼마나 자주 어긋났는지를 떠올리게도 했다.
“처음에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줄 알았어. 그런데 걸을수록 알겠더라고,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게 아니라 걷는 그 자체를 배우고 있는 중 이더라고.” 그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하루하루 걷는 그 자체가 수업이자 경험이라는 것.
Camino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느끼게 한다.
걷는 중간중간 간단한 스낵을 나누고, 물을 건넸다. 어느 마을에서는 마트에서 사온 바나나 하나를 나눠 먹었고, 어느 순간에는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직 괜찮아”라는 눈빛을 건넸다. 그건 한국어도, 독일어도, 영어도 아니었지만 분명히 ‘응원’이었다. 말이 없어도 다 전해지는 그런 감정들, 길은 아직 멀었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 어깨에 짊어진 배낭은 여전히 무거웠고 발바닥은 아팠지만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단지 방향을 맞춘다는 것 이상으로 삶의 고비들을 나눠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만 더 가면 전망대가 있어,” D가 조용히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곧 길은 작은 구릉지 끝에 다다랐고, 시야가 확 트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 전망대 끝에 섰다. 시야 아래로는 들판과 마을이 펼쳐졌고, 저 멀리 오늘 밤 묵게 될 작은 도시의 지붕들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모두 숨을 가다듬었고 말없이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다. D는 어린 시절 러시아에서 듣던 쇼스타코비치와 차이콥스키에 대해 얘기했고, H는 오페라에서 부르던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와 곡에 대해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들었던 김광석, 이문세의 노래들, 그리고 내가 군대를 앞두고 느꼈던 감정들을 담은 노래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래는 나라를 넘어서는 것 같아. 정치도 역사도 언어도 다 다르지만 음악은 마음을 직접 만지잖아.”
H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말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불었고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며 우리 주위를 감쌌다. 그건 마치 누군가가 우리의 대화를 조용히 감싸 안아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지나간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은 단지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 그 이상이라는 것을. 같은 시간을 걷고 같은 풍경을 나누고 같은 멜로디를 기억한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 아닐까.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서로 눈빛을 맞추지 않아도 리듬을 알 수 있었다.
해는 점점 기울고 있었고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말보다 더 깊은 무언가로 이어져 있었다.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붉은 빛이 더 깊어졌다. 저녁 노을은 마치 하늘이 불을 지핀 듯 구름 하나하나를 불타는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 빛은 길가의 돌담과 나무 그리고 우리 셋의 어깨 위에도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고단한 하루의 끝자락, 우리는 그렇게 노을 속을 걸었다.
마을 입구의 조용한 골목 끝에 위치한 알베르게는 그저 또 하나의 숙소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자 그곳은 분명 뭔가 달랐다.
건물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때문이었다. 웅장하지 않지만 단단한 울림이 느껴지는 성가.
흔히 성당 미사에서 들을 수 있는 천사들의 언어처럼 맑고 고요한 합창이었다. 처음에는 녹음된 음악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생생한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짐도 내려놓지 않은채 노래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방 안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이 지긋한 이들도 있었고 젊은 이들도 섞여 있었다. 모두가 원을 이루어 서서 악보를 들고 성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도 따뜻하고 숭고해서 한동안 우리는 입도 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홀린 듯 우리는 한쪽 구석에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가사도 선율도 모두 낯설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울림은 명확했다. 그날 하루의 피로와 감정, 만남과 여운, 그 모든 것들이 성가의 음률 안에 가만히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노래가 잠시 멈췄을 때 우리는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해는 거의 다 졌고 하늘엔 보라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허기가 졌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의 작은 식당, 처마 밑에 놓인 나무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식당은 소박했다. 메뉴는 단 하나 '오늘의 파스타'.
갓 삶아 낸 따끈따끈한 스파게티가 담긴 접시가 나왔고 향긋한 토마토소스가 피로한 우리의 후각을 먼저 깨웠다. 우리는 무언의 감사함 속에서 포크를 들었다. 노을이 완전히 저물기 전 붉은 하늘 아래에서 먹는 이 저녁 한 끼는 마치 축복 같았다.
식사 도중 D가 뭔가 흥미로운 걸 시켰다.
“이거 우리 동네에선 없을 거야. 호르헤라고 해. 스페인 전통주 같은 건데 허브향이 좋아.”
그 말과 함께 나온 작은 유리잔. 짙은 녹빛 액체가 담긴 그 잔을 들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건배했다.
“Por el camino” D가 먼저 말했다.
“Hacia dentro y hacia adelante” H가 웃으며 이어받았다.
그리고 나도 한국말로 마무리했다.
“길 위의 모든 만남에 건배.”
‘호르헤’는 독특한 맛이었다. 쌉쌀하고 따뜻하며 입안에 맴도는 허브향은 하루의 피로를 가볍게 감싸주는 듯했다. 그 맛처럼 이 하루는 단순하지 않았다. 수많은 감정이 레이어처럼 겹쳐져 있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한 모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노을은 완전히 져 있었고 길 위에는 다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날 그 어둠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음악과 사람 그리고 작은 건배 한 잔이 이 하루를 오래도록 따뜻하게 지켜줄 것 같았다.
그리고 내일은 또 길 위에서 새로운 하루를 마주할 것이다.
Camino 소소한 TIP #3: 길 위의 인연, 노래로 만나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인연이 말을 걸어옵니다. 그것은 꼭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닐 수도 있고, 음악 한 소절일 수도 있으며, 어떤 날의 하늘빛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노래는 언어를 넘어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줍니다. 국적도, 종교도, 역사도 다른 이들과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싶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길 위의 콘서트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나의 플레이리스트, 너의 영혼을 건드리다”
까미노를 준비하며 나만의 ‘인생 노래’를 하나쯤 정해두는 걸 추천합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노래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한 자장가가 될 수도 있죠. 언어는 장벽이 되지 않습니다. 진심은 음색을 타고 전달됩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처럼, 삶의 맥락과 문화적 정서를 설명할 수 있는 노래는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노래는 용기다”
처음엔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까미노에서는 ‘완벽한 목소리’보다는 ‘진심 어린 한 구절’이 더 중요합니다. 틀려도 괜찮고, 목이 메어도 괜찮습니다. 혼자가 아닌 길 위에서 부르는 노래는, 나의 이야기이자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그 순간 함께 걷는 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울림입니다.
“귀를 열면, 마음도 열린다”
까미노에서는 국적 불문하고 각자의 전통 노래나 추억의 멜로디를 공유하는 일이 많습니다. 모닥불 앞에서, 바람 부는 언덕 위에서, 혹은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노래는 그 길의 일부가 됩니다.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면, 귀를 열고 들어보세요. 노랫말을 몰라도, 그 감정은 그대로 전해질 것입니다.
“음악 + 음식 + 시간 = 완벽한 하루”
성가 소리가 울려 퍼지는 마을, 노을과 함께한 파스타 한 접시, 그리고 ‘호르헤’ 한 잔의 여유. 이런 조합은 까미노가 주는 선물 중 하나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하루가 누군가와 함께라면 특별해지고, 노래와 음식은 그 기억을 더욱 깊게 새깁니다. 가능하다면 작은 악기 하나쯤 챙겨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우쿨렐레, 하모니카 등)
“노래는 문화와 역사를 담는 그릇”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나라의 음악은 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자장가, 히브리어 민요, 그리고 한국의 짙은 감성 발라드. 그 노래들이 교차하는 순간, 까미노는 단순한 트레킹 코스를 넘어 ‘문화의 교차로’가 됩니다. 여행을 넘어 인문학적 만남의 길이 되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