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2021 MMCA 하이라이트 리캡
4년 전에 다녀온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오래 전이지만 한국 미술의 100년 자취를 인상 깊게 보여준 전시였기에 리캡해본다.
전시는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 '황재형: 회천回天', '움직임을 만드는 움직임',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로 총 네 개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항상 한 번에 풍성한 전시를 볼 수 있어 좋다.
첫 전시로,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따라 총 4부로 나뉘어 있었다.
1부 : '개항에서 해방까지'
1부의 작품들은 일제 강점기 동안 신미술이 등장하며, 향토색과 모더니즘 등 근대적인 시각문화가 발전하는 것을 보여준다. 고희동의 <자화상>, 오지호의 <남향집>, 김환기의 <론도>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산뜻한 색 표현과 사실적인 옷 주름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김중현의 <춘양>.
주름이 매우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는 부분에서 작가의 관찰력과 사실적 표현력이 돋보였다.
맨 앞에 걸터 앉은 아이의 다홍색 옷 주름이 귀여웠다.
작가 김중현은 이 <춘양>을 통해 제 15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동양화부 특선을 차지했다. 서민들의 풍속과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여, 작가의 서양화 '무녀도'와 함께 대표 수묵채색화로 꼽히는 작품이다. 복원 당시 네 동강이 나 있을 만큼 낡았었으나 선명한 컬러가 살아 있어 무사히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봐도 이렇게나 색감이 뚜렷한데, 당시 사람들의 눈에 얼마나 다채롭고 화려한 그림으로 보였을지.
따스한 햇빛과 푸르른 겨울의 어울림, 그리고 작은 소녀가 마음에 들었던 오지호의 <남향집>.
한겨울 속에 맞는 햇빛은 유달리 따뜻한데, 노랗게 마당을 비추는 햇볕이 꼭 나를 덥혀주는 것 같았다.
제목이 <남향집>인 걸 보면, 실제로 남향은 이렇게 햇빛이 예쁜가 싶기도 했고.
작가 오지호(1905.12.24 ~ 1982.12.25) 는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당시 일본에서 습득한 서구의 인상파 미술을 한국에 들여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늘은 빛이 가려진 것이 아니라 빛이 변화된 것'이라는 인상주의 철학을 고수하며, 사실적인 인상파 화법으로 한국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빛을 머금은 선명한 색채가 마음에 들어 더 찾아본 오지호 작가의 작품들.
서양 인상파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데, 아름다운 빛의 표현이 한국적인 풍경과 어울리니 더 잘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고즈넉하고 고요한 느낌이 든달까?
잘 몰랐던 작가인데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생겨서 기뻤다.
2부 : '분단 시대의 서막'
2부에서는 해방 후, 한국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의 해방공간-한국전쟁기의 미술, *관전미술, *디아스포라, 북한미술 등을 다룬다.
*해방공간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의 시기
*디아스포라 예술: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창작한 예술
*관전미술: 전쟁의 실황을 담은 미술
이와 동시에 일본의 영향권을 벗어나 유럽과 미국의 미술 양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물결이 함께 하게 된다. 주요 작가로는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이 있다.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 화백의 작품. 1945년 경 작품이라고 하는데, 당시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그저 하염없이 권태로워 보이는 아이들이 눈 앞에 그려졌다. 배는 고프고... 할 일은 없고.. 사회, 시대상황이 어떻든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아니면 끝없는 빈곤과 실패에 지친 사람들같기도 하고. 그림은 개개인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
내게 국어책 속 그림으로 익숙한 박수근 화백의 작품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박수근 화백을 기린 '나목'을 공부했었다. 왠지 모르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동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문장 문장을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소설에 담긴 화가를 향한 따뜻하고 존경어린 시선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후 처음으로 박수근 화백의 작품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색이 선명하지 않았고 표면이 우둘투둘해서 놀라웠다. 둔탁하지만 견고한 표면이, 오히려 당시 서민들의 소박함과 담백함을 더 잘 드러내는 것 같았다. 하나같이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강인하게 표현된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도 굳세게 살아갔던 사람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집에 와서 더 찾아본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멀리서 봐도 '박수근다운' 모습이었다.
거친 표면에 그려진, 따뜻한 인간미와 삶에 대한 강인함이 담긴 뒷모습 말이다.
3부 : '국제 미술을 향해'
3부는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미술계가 급속한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 탈국전, 추상조각의 전개, 전통매체의 새로운 모색 등으로 국제 미술계로 진입한 시기를 다룬다. 특히, 단색화는 20세기 후반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주류로 자리매김한다. 백남준, 최만린, 천경자, 이건용, 박서보 등의 작가가 대표적이다.
무척 참신하다고 생각한 작품. 어렸을 적 어렴풋이 기억나는 백남준의 작품은 뒤가 뚱뚱한(?) 옛날 TV들을 탑 모양으로 쌓아올린 작품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게 대체 뭐지? 싶어 현재까지도 인상 속에 깊게 남아있다.
사실 아직까지도 백남준의 작품을 잘 이해한다고는 하지 못하는데, 이 <TV를 위한 선> 작품 설명을 보고 참, 예술가는 천재구나 무릎을 탁! 쳤다. ㅋㅋㅋ TV 모니터 내에 순간과 영원을 하나의 선으로 합일시켜 동양의 불교 철학을 표현했다는 설명에.. 독창적인 틀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특히 동양의 불교 철학에 대해 판타지를 갖고 있는 서양인들을 풍자한 것이라고도 하던데, 당시 동양을 막연히 동경하던 서양인들이 이 작품을 매우 진지하게 감상했을 생각을 하면 재미있다.
전시를 다 본 뒤 엽서도 사들고 온 박서보 화백의 <묘법>.
흑연으로 직접 다 그렸다는데...왠지 이걸 그리면서 박서보 화백도 힐링(?)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뿌연 회색 빛 종이 위에 무심한 듯(사실 매우 섬세하게) 그은 연필자국이 주는 평화-란.
왠지 퇴근하고 돌아와 가만히 바라보고 싶은 그림이라, 이끌리듯 엽서로 구입했다.
2019년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서보 개인전을 관람했었는데 그때의 더 많은 작품들이 그리워진 순간.
지금은 서거하신 박서보 화백의 작품은 연희동에 위치한 박서보 재단에서 볼 수 있다.
다른 국내 작가들의 전시도 함께 진행하고 있으니, 한국 현대 미술 전시 관람 차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4부: '민주화와 동시대 글로벌리즘'
4부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망과 삶과 인간에 대한 주제는 미술까지 확산되었다. 실험 미술, 수묵화 운동, 민중 미술, 여성 미술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술 담론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분화와 전개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21세기 한국 미술은 세계적으로 도약 발전하는 글로벌리즘 시기를 맞는다. 과학적인 첨단 기술이 미술과 결합되기도 하고,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은 이미 우리의 생활 깊숙이 진입하여 다양한 변화 속에 있다. 사이보그의 기형적인 몸을 만들어 미래에 완성되기를 바라는 이불, 수많은 인간들이 들어 올리고 있는 유리<바닥>을 선보인 서도호 등이 대표 작가이다.
처음에 이게 뭐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손가락만한 사람 점토 인형들이 유리를 떠받히고 있다는 사실에...입이 떡 벌어졌다. 알고보니 유리 위를 걸어도 되는 거였는데, 부서질까 신기해서 바라보기만 했다(바보)
<바닥>을 이루는 인물상들은 무려 4천 여개로, (흑인, 황인, 백인), (여성, 남성)이라는 6가지 서로 다른 인종과 성별을 표상한다. 인물들은 패턴화된 모습으로 개인과 집단, 정체성과 익명성을 번갈아 보여준다. 이질적인, 혹은 동일한 문화 속에서 '자아'란 무엇이며, 과연 존재하는 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던진다.
이 작품을 보고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가 떠올랐다.
2020년 안녕 인사동의 미술관에서 관람했던 르네 마그리트 전.
<골콩드>를 보며 당시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개성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떠올렸었다.
결국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보통의 삶의 코스를 살아가다 보면
나도 이렇게 많은 '별 다르지 않은' 사람들 중 한 명일까- 라고 멀찍이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 아침 지하철에 책을 읽고, 주말에는 하고 싶은 것을 찾고, 퇴근한 뒤의 피곤한 밤에도 지금의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아닐까, 싶었다. 퇴근하고 나서도 노트북 앞에 앉아, 좋아하는 미술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