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디지털 컬러가 주는 순수한 감정의 향연
추석 연휴와 함께 시작된 <오스틴 리 : 패싱 타임> 전시.
위치는 롯데뮤지엄, 올해 말(12.31)까지 전시가 진행된다.
잠실 롯데월드 타워 7층으로 가면 천장에 방향 표시가 되어 있어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에비뉴엘 아트홀! 과는 다른 곳 주의,,)
작가 오스틴 리는 본래 권투 선수 출신이라고 한다. 그 이력도 이미 특이한데, 작품들도 재밌고 독특하다.
형형색색의 컬러가 익숙한 까닭은 컴퓨터 화면을 구성하는 디지털 RGB(빨강, 파랑, 초록)를 활용했기 때문.
입구부터 이 친구가 반겨준다. 덩치는 큰데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RGB 컬러의 향연이 펼쳐진다.
약간의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Joy'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듯한 꽃.
스마일 표정이 해맑고 귀엽다.
뒷부분에 살짝 번진 듯 표현하는 에어브러시와 붓질을 함께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 그 두 방법이 모두 담겨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꽃들이 귀엽기도 했지만, 너무 밝은 컬러들이 모여 있다 보니 오히려 세상에 없는 누군가에게 바치는 꽃다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은근한 기괴함이,, 느껴지기도 했달까
울적한 푸른색으로만 구성한, 주인공이 낙하하는 그림.
이 그림 속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라고 한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그렸다고.
손에는 아직 팔레트와 이젤이 가득한데 그대로 투명한 수면으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
무언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별 것이 아니었던 듯이.
미처 내려놓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그 연약한 우울과 절망이 느껴졌다.
승리를 거두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 참혹한 순간에 최후의 만세를 부르짖는 것인지
보는 이에 따라 그 해석은 달라진다.
또 하나의 슬픔을 담은 작품.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것을 슬픔이자 의지로 해석했다.
나와 다른 타인들 속에서 홀로 외줄을 타는 외로움과 고통에 흘리는 눈물과
그와 동시에 생겨나는 서글픈 생명력 같은 것 말이다. 뒤편의 밝은 핑크 원들이 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오스틴 리가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렸다는 작품.
아버지의 눈꺼풀이 눈물을 머금은 듯도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80년대 홍콩의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간 작품.
이 작품을 보자마자,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피카소의 '우는 여인' 연작이 떠올랐다.
오스틴 리는 기존 명화를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여 그리기도 하는데 이것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이다.
입체파 특유의 확실한 선 구분으로 절절한 고통을 표현한 원작(피카소, 우는 여인)과는 다르게, 컬러풀한 RGB + 부드러운 에어브러시라는 디지털 방식으로 눈물을 그려냈다.
원작과는 다르게 조금은 수동적이면서 아련한 슬픔이 느껴졌다.
본래도 피카소의 '우는 여인'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지라 이 작품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절망.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이 사람은 마치 몸 자체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불균형적으로 구부러지고 얇고 굵은 신체에서 불안한 감정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오스틴 리는 기쁨과 슬픔/좌절을 거쳐, 다시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 전시는 전체의 구성이 마치 한 권의 책처럼 감정선의 흐름을 따라간다. 걸음걸음마다 희로애락이 있다.
이 또한 정말 좋아하는 앙리 마티스의 <춤>을 재해석한 작품.
기존의 작품과 컬러톤 구성과 배치는 비슷하지만, 역시 회화가 아닌 디지털 아트의 느낌이 낭랑하다.
덕분에 좀 더 해맑고 아이 같은 느낌이 살아나는 것 같다.
너무 귀여워서 찍은 작품들.
이 아이는 무지개 앞에서 보오랗게 웃고 있다.
3d 프린터로 만들어내는 예술작품이 이렇게 따뜻하고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나름대로 자세를 따라 해봤다 ㅋㅋㅋ
전시회를 나가기 전에 있던 문구. 중간중간 오스틴 리가 삐뚤빼뚤하게 써넣은 글자들이 있다.
오늘의 해가 지면, 또 내일의 해가 뜬다. 시간은 그렇게 반복된다.
이 전시장을 걸어온 것처럼, 또 기쁨과 좌절, 그리고 희망이 반복되겠지.
다양한 감정과 동시에, 엮여 있던 기억들까지 떠올리게 한 전시회 구성이었다.
중간에 있던 두둠칫 영상ㅋㅋㅋ 골반 튕김이 아쥬 능글맞다,,,
가볍게 보러 간 전시인데 뜻밖의 감정 여행을 하고 역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전시장을 나왔다.
전시는 항상 묵직한 것을 느끼고 담아 오는 게 좋다-고 생각해 온 나로서는 무척 신선한 전시 경험이었다.
딱히 큰 깨달음을 주거나 감동을 주지 않아도, 혹여 전시장을 나와서 작품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전시를 관람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면 의미 있는 경험이구나- 싶었다.
기분전환 겸, 데이트할 겸, 혹은 심심해서 등 그냥 이 전시를 추천한다.
작가가 주는 순수한 에너지가 어느새 마음속에 채워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