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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 Jan 26. 2022

불교


친구가 숙명여대 앞에서 자취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언덕을 꽤 오래 올라가야 하는 낡은 집이었지만 굉장히 넓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아지트로 자주 사용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는데, 친구들 6명 정도가 그 자취방에서 모인다고 하길래 이런 꿀잼을 놓칠 수 없어서 수업 끝나자마자 참가했다. 지금은 , [정확히는 오른쪽 얼굴에서 땀이 안 나게 된 이후로 (;;)] 술을 마구잡이로 마시진 않지만 이전에는 주량을 넘겨서 마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오자 먼저 자겠다고 하고 이불 덮고 누웠다.


보일러가 뜨끈하게 올라오는 아랫목이어서 그런지 속이 뒤집힌 상태로 눈을 떴다. 친구네 집은 불을 끄고 나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전 상태인 방이 되었고 멀리서 들어오는 가로등 빛으로 사물의 형태만 분간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원추세포는 반응을 못하고 간상세포만 반응을 하는 딱 그 정도의 밝기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진짜 아비규환이었는데, 친구들은 아무렇게나 뻗어있었고 바닥은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바닥은 뭔가를 흘려서 축축했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초콜릿 우유였다. 취할 때마다 초콜릿 우유를 사 마시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먹다가 흘렸구나 싶었다. 그 옆에는 냄비가 있었는데, 라면이 불다못해 죽처럼 된 상태였으며 그 위에 큰 만두가 올라가져 있었다.


100kg짜리 친구가 냉장고 문을 막고 잠들고 있었기 때문에 냉장고 문을 열 생각을 못 하고 냄비에 있던 숟가락으로 라면을 몇 숟가락 먹었다. 원래 라면에 밥을 넣고 끓여서 먹는 꿀꿀이죽 같은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맛이 썩 괜찮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바닥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 헐, 뭐야. 너네 언제 치웠어... 깨우지... 치우는 거 하나도 못 도와줬네... 미안...

- 아냐, 니 잠 들고나서 우리끼리 바닥에서 먹었는데 머 ㅋㅋ

- 그런 것 같더라 ㅋㅋ 새벽에 깨서보니 진짜 개 난장판이던데 ㅋㅋ 초콜릿 우유 쏟아져있고 ㅋㅋ 라면도 먹다가 잠들고 ㅋㅋ

- 아 ㅅㅂ 진짜 초콜릿 우유 내가 쏟을 것 같다고 치우고 자라고 했는데 기어이 놓고 잠들더니 바닥에 엎었더라 진짜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라면 먹은 건 어케앎??

- 라면 좀 남았던데? 위에 왕만두도 넣어서? 신라면 아님?

- 우리 어제 라면 다 먹고 잤는데 ㅋㅋㅋㅋ

-.... 어... 00아.... 나... 어제 새벽에 일어나서.... 너무 속이 안 좋아서 냄비에다가 토했는데... 그러다가 바닥에 좀 흘러서 옆에 있던 종이컵으로 대충 쓸어 담고 냄비에다가 넣어뒀거든... 그걸 왕만두로 본 거 아니야?





-... 아... 그런가? 아... ㅎ

- 너 먹었냐?

- 아니


- 먹었네  ㅋㅋㅋㅋㅋ 먹었네 ㅋㅋㅋㅋ 신라면이라매 ㅋㅋㅋ 더러워






그렇게 토먹새로 4년이 넘게 불리고 있다. 중간중간 원효대사로 불리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 원효대사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 불교가 참 과학적인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해보시길 추천한다. 토를 먹어보라는 것이 아니고, 원효대사의 전기를 읽어보고 그가 얼마나 천재인지를 깨달아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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