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말 험한 수술이었다. 수술자체도 쉬운 수술은 아니었으며, 이전에 엄청난 수술을 여러번 받은 분이 셨기 때문에 정상 해부학들이 모두 깨져있을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키는 나보다 작지만 몸무게는 130kg가 넘으셨기 때문에 공간도 각도도 시야도 안 나와 굉장히 험난할 것을 각오하고 수술방에 들어갔다.
2. 지나치게 긴장을 해서 그럴 수도 있고, 전날 저녁으로 동기랑 먹었던 해산물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배 속에서 꾸릉꾸릉 이상한 소리가 심하게 났지만, 그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할 순 없었다. 옛날 어떤 우화에 나오는 욕심많은 원숭이처럼, 10cm 조금 넘는 길이로 개복을 해서 그 사이로 손 6개를 집어넣으며 원하는 검체를 얻어내려 꾸덕꾸덕 헤집는데 "잠시 나갔다 오겠다"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단 말이다. 결국 너무 배가 아파서 푸시시 푸시시 나도 모르게 가스가 나왔다.
3. "어후 교수님! 환자분 defecation (대변) 하셨습니다!" 정확히 내 오른쪽에 서있던 수술을 도와주시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고개를 심하게 저으면서 말씀하셨다. 환자분이 마취제 혹은 다른 영향으로 변을 보셨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아닙니다 교수님, 그거 사실 제 똥방구입니다." 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이 악물고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하며 수술에 집중했다.
3-1. 사실은 나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가스를 살포 하자마자 직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수술할 때 입는 스크럽복은 하나의 롱패딩과 똑같이 생겨서 방구를 뀌면 그대로 가스가 얼굴 쪽으로 올라와, 내 방구를 코앞에서 일차적으로 점검했기 때문이다. 이건 진짜 역대급이었며 피비린내 나는 상황에서도 내 후각신경을 이 정도로 자극했다는 건 보통 녀석이 아님을 눈치챘다.
4. "어머, 이런 경우가 흔한가요...?? 이상한데..." "네, 자주는 아닌데 종종 있어요 변 보시는 경우가..."
"그래? 다른 분들도 냄새나요?" "네 교수님, 아까부터 너무 심하게 납니다."
5. 약 5분정도 전신마취로 인해 수술 중 대변을 보는 경우와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 꽃이 펼쳐졌는 데에도 나는 입 다물고 수술에만 집중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수술중 잡담을 허용하지 않는 군기가 바짝 선 외과의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던 도중 교수님의 손이 뚝 멈추시더니 대장쪽을 확인하시며 "여기가 Colon (대장)이지..." 라며 혼잣말을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부터 크게 식은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는데, 그건 교수님께서 "환자분이 변을 보신 것이 아니라, 대장에 손상을 줘서 변이 장 바깥으로 빠져나온 것은 아닐지" 걱정하고 계시단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수술 부위와 Colon은 적어도 3cm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워낙 험했고 장 유착이 심했기 때문에 수술부위를 당기다가 대장에 손상이 안 갔다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에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개복을 한다거나 쓸데없이 수술시간이 길어지는 일이 생긴다면... 어쩌지...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6. "음... 교수님,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 그래~?, 그래그래 우리 전공의~, 좋아 다시 수술하자"
7. 나는 아직 수술방에 들어가서 수련을 받은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윗년차 선생님들께서 교수님의 수술 decision making (수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을 교수님과 상의하며, 같이 결정해 나가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서 언젠가 나도 꼭! 그런 외과의사가 되겠다 다짐을 했었는데....
처음으로 교수님의 수술 decision making을 도와드린 케이스가 "교수님, (환자가 똥싼게 아니라 제가 방구뀐 거니까 환자의 장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라니... 나의 꿈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8. 결국엔 수술이 무사히 끝났고 수술을 마무리하고 확인해보니 당연하게도 환자분은 변을 보시지 않으셨다.
9. 양심에 찔리기도 했고... 얼굴에다가 방구를 뿌린 거나 마찬가지인 실수를 한 것이 죄송하여... 몇 몇 분한테만 말씀을 드렸고, 병원은 내 생각보다 소문이 정말 빠른 곳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