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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아웨이브 Sep 24. 2020

그리스 웨딩에 초대받다 #1

그리스 웨딩에 초대를 받았다.

6월에 있는 결혼식 초대를 12월에 받아 당황스러웠지만, 마침 여름에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식이 있는 그 기간에 맞춰 그리스에도 들리기로 마음먹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다고 알렸다.          


그렇게 7월이 되고 마침내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을 만나러 가는 길로 올랐다.

그리스에는 예정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어떻게 하루 늦게 도착할 수 있는지 물으신다면? 원래 여정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그리스 아테네로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그렇지만 유럽 내 여름 휴가 기간이어서였는지, 제네바에서부터 시작된 항공기 연착 때문에 경유 비행을 놓치면서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독일에서 하루를 지새우게 됐다. (이 일정에 대해서도 참 할 말이 많지만 결론은, 망할 이지젯(Easy Jet; 유럽을 오고 가는 저가 항공)으로 일단락.

        

우리를 초대한 그리스 친구 엘리자베스에게 이래 이래 해서 아테네 도착 일정이 변경될 거라고 연락을 했더니, 걱정 말라며 아테네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 어디 정류장에 내리면 무슨 건물이 보이는데 거기서 이 번호로 연락을 하면,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또 다른 동명의 엘리자베스가 본인의 집 열쇠와 집을 알려 줄 거라고 했다. 본인은 지금 결혼식 준비로 아테네가 아닌 ‘Kardisa’에 있으니, 우리에게 아테네에서 하루를 보내고 결혼식 참석을 위해 움직일 고향 친구들과 함께 아테네에서 내려오라고 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엘리자가 알려준 정류장에서 만난 또 다른 엘리자베스는 우리를 그리스로 초대한 엘리자의 아파트를 안내해주었다. 이 두 명의 ‘엘리자베스’들은 한국으로 치면, 대전 정도 위치라고 볼 수 있는 'Kardisa' 가 고향이며, 현재는 대학과 대학원을 위해 서울 격인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집을 구해 유학을 왔고, 현재도 아테네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아테네의 아파트는 서울에 있는 여느 집들과 비슷한 구조였지만, 거실 반 정도만 한 커다란 테라스와 테라스를 즐길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이곳이 햇빛을 사랑하는 유럽임을 알 수 있게 했다.     


 하루 이틀, 아테네를 돌아보고 (아테네 관광 이야기는 조만간 독립된 포스팅으로 준비 예정) 드디어 ‘Kardisa(칼디자)’ 로 내려가는 날! 우리를 아파트까지 안내해준 엘리자베스와 또 다른 고향 친구 ‘지미 트리’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아테네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서 한국과는 다른 산세가 펼쳐졌다. 사람 생김새만큼이나  다른 이 지중해 지역 경관을 감상하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한 시간도 안돼서 헤드뱅잉으로 꿈나라를 여행 했다. 다행히 나와 함께 동행하는 L이 운전하는 지미 트리와 함께 대화해 주어 손님으로의 예의를 지켜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몇 시간을 지나 ‘Kardisa’에 도착했고, L과 나는 어느 아파트 앞에 내렸고 열쇠 하나를 받았다. 우리를 초대한 엘리자베스의 고향 집, 그러니까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가 함께 살고 있는 원룸 열쇠 였다. 아테네에서 함께 내려온 지미 트리가 여기서 쉬다 저녁 몇시즘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가족들이 주최하는 프리 웨딩파티가 있으니 준비하라고 알려 주었다.


이 원룸, 젊은 커플이 지내기 딱 알맞은 큰 침실 하나와 거실이 있었고, 역시나 거실만한 테라스도 있었다. 이 곳에 2주를 지내면서 왜이렇게 테라스가 큰 지 알게되었는데, 한 여름에도 습기 때문에 외부 생활이 힘든 한국과는 달리 그늘 아래로 들어가기만 하면 바람이 솔솔 불어 여름을 덥지 않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집 보다 테라스가 더 큰 것 같은데?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파티에 가기 위해 준비해온 초록 원피스를 입고 평소 잘 안 하는 화장을 시작했다. 가뜩이나 한국에서도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인데, 안 그래도 큰 눈에 짙은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로 눈을 강조하는 유럽 사람 틈바구니에서 내 눈의 존재감이라도 알리려는 작은 움직임의 일환으로, 한국에서는 대학 졸업 이후로 하지 않는 눈동자에 언더 라인까지 힘을 팍 주어 그리면서 나름 현지 맞춤 식 메이크업으로 세팅을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이번에는 엘리자베스의 남자 친구 알렉시스가 우리는 데리러 왔다. 턱수염을 한껏 기른 건장한 체격의 누가봐도 그리스인 알렉시스! 그동안 엘리자베스에게 남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기에 무척 반가웠고 신기 했다. (아! 엘리자베스와 나는 문화교류 프로그램으로 발리에서 지낼 당시 룸메이트였고, 함께 동행하는 L 역시 발리 그룹 일원이었기 때문에, L과 함께 이곳에 초대받아 오게 되었다.)


알렉시스의 차를 타고 한 30분가량 마을을 벗어나 구불구불한 산기슭 도로를 오르고 올라가 나무로 지은 산장에 도착을 했다.

“ welcome! Lee!!!!!!!”

드디어 그리스인 친구, 이 곳으로 우리를 초대한 엘리자베스를 만난게 아닌가! 풀 메이크업과 레이스 달린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가 우리를 반겼다. 자, 이쯤에서 반전을 말한다. 눈치채셨는가? 이 결혼식은 엘리자베스의 결혼식이 아니다. 바로, 그녀의 언니 '칼리타'의 결혼식. 그리스 또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하객 수를 어마어마하게 부른다고 한다. 사돈에 팔촌, 심지어 동생 친구들까지 결혼식에 부르는 정도이니 500-600명의 하객은 거뜬하다고 한다.

여하튼, 본인의 결혼식이 아니지만 준비를 단단히 한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알고 보니 이곳은 그들의 여름 별장이었는데 무더운 여름을 피해 여름 휴가 때는 이곳에서 종종 지낸다고 했다. 3층 정도 되는 목조 건물 뒤편으로는 굉장히 커다란 정원까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오늘 결혼식 전야제 파티가 열리는 곳이었다.

파티가 열리는 별장 내부



음식과 와인을 곁들이면서 엘리자베스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중 십 대 초반 정도인 사촌 동생들이 유난히도 내가 궁금했는데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는지, 한국에서 여기까지는 비행기로 몇 시간이 걸리는지, 영어는 어디서 배웠는지, 엘리자하고는 어떻게 친해졌는지 등등을 물어보다 갑자기, “근데 아시아 사람하고 처음 말해봐요! ”라고 하는 게 아닌가? 관광객이 넘치는 아테네도 아니고 관광지도 아닌 이곳 'Kardisa' 에서 아시아인은 찾아 보기 힘들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마을에서 나 아닌 다른 검은 머리 아시아인을 본 기억이 없다는걸 알아차렸다.  


이번엔 엘리자베스의 남자친구 알렉시스가 나와 L에게 오더니, 그리스식 와인 한잔 하겠냐며 화이트 와인에 사이다를 섞어서 내줬다. 이탈리아계 스위스인인 L은 굳이 왜 와인에 사이다를 섞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술을 잘 못하는 나는 꽤 즐겁게 이 와인과 사이다의 조합을 즐겼다.

   

엘리자베스 가족과 파티 분위기
조상님이 비너스인 그리스 언니들과



그렇게 파티 분위기가 한껏 오르는 중,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보는 장르의 음악이니 그리스 전통음악이겠고, 춤사위도 어른, 아이 할거 없이 같은 동작을 하는 걸 보니 역시나 그리스 전통 춤이었다. 둥그런 원을 만들어서 한쪽 방향으로 발 스텝을 맞추며 도는 단순하지만 꽤 어려운 춤이었다.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잡으면서 돌기도 하는 게 우리나라 강강술래 같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는 우후죽순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나가서 함께 추면 되는 건가 싶었는데, 음악에 따라 신부 가족만 추는 춤, 남자만 추는 춤, 또 여자만 추는 춤, 다 같이 추는 춤이 따로 있었고, 휴지를 던지기도 하고, 무릎은 바닥에 대고 박수를 치면서 독무를 추는 사람을 치켜세우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음악과 다양한 춤사위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2-3시간을 다른 노래, 와 다른 춤을 추며 남녀노소 다같이 밤을 지새웠다. 그리스에서는 학교가 끝나면 방과 후 수업과 같은 개념으로 이런 전통춤을 배우는 교습소가 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런 교습소를 거친다고 하니, 그리스에서 이런 전통 춤이 얼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신부와 신랑! 오늘 파티는 신부와 신부의 가족과 친지를 위한 파티라고 했다. 결혼식 전에 신랑과 그의 가족을 만나지 않는 것이 그리스 결혼의 전통이라고 한다. 결혼전에 신랑을 만나면 복이 달아난다는 설이 있다고! 우리는 그래서 예비 신랑분을 만나지 못하고 엘리자베스의 언니인 칼리타에게만 결혼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




(본식은 이 파티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화려한 밤으로 밤을 새웠으니 그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결혼 전야제 파티 中


어제저녁 그리스 친구 엘리자베스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가 살고 있는 그리스‘Kardisa’가 폭우로 댐이 무너져 지역 전체가 물에 잠겼다고(9월 20일경). 외곽에 있던 그녀와 아버지는 한 시간 반을 바다 같이 흐르는 급류 속을 걸었 가족 곁으로 돌아왔으며, 전기와 식수가 끊긴 마을은 전쟁과 같은 주말을 보내야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다행히도 지금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안전한 곳에서 식수와 음식이 확보된 곳에서 지내고 있지만, 기사에 따르면 ‘Kardisa’ 마을 80%가 이번 재해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하루빨리 복구되어 ‘Kardisa’ 마을 사람 모두가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기도 합니니다.  

Pray for my Magarity family, and Kardisa.


pray for Kard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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