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의 대만여행
첫 아이를 품은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걱정 되었던 것 중 하나는 한달전 쯤 확정해 둔 대만 가오슝 여행 이었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취소하자, 한동안 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 강행하자. 두 가지 선택사항을 놓고 오랜 시간 고민했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가는 쪽으로 힘을 실어줄 명분을 찾고 있었다. 이미 마음속에선 답이 정해진 상태였고 괜히 갔다가 내가 아닌 타인,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까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의사의 대답은 이랬다.
임신 전에도 해왔던 건 그냥 하셔도 되고 임신 전에 하지 않았던 일은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임신 중에 운동해도 되나요? 란 질문을 했을 때 의사가 했다던 대답과 같았다. 그럼에도 지우지 못하는 근심어린 표정에 남편은 생각보다 훨씬 쿨한 태도를 보였다. 매번 해왔던 일인데 알아서 조심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어차피 자유 여행에 혼행이니 컨디션에 맞춰 힘들면 쉬고, 배고프면 맛있는 거 먹고 하며 스트레스 풀고 오면 되지 않겠냐 한다. 원했던 대답을 시원하게 쏟아내 준 그 배려에 감동하며 냉큼 가오슝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임신 9주차였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이동하게 되는 일이 생길까봐 2박3일간 입는 옷도 단 한 벌만을 챙겼다. 번역기로 “임신 중입니다”를 돌려 2개 국어를 외웠고 혹시나 갑자기 아프게 될 때를 대비해 가오슝 병원 응급실 전화번호까지 챙겼다. 그런데, 곤란한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대만은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도 많고 돼지고기가 주재료인 음식도 많은 편이다. 떠나기 전까지 입덧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줄 몰랐다. 여행 준비중 그 동안 먹어봤던 대만 음식을 상상하면 침이고여서 입덧이 전혀 없다며 좋아 했었는데. 모든 것이 호르몬의 영향이다 보니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하필이면 그것이 대만여행 중인 2박3일간 제대로 왔다.
입덧의 형태는 먹덧 이었다. 공복일 때 속이 타들어 갈만큼 메슥거리더니 음식이 한술이라도 들어가면 금방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어느 정도 속이 차는가 싶으면 각종 음식냄새들이 다시 공격을 가했다. 기본 값 두 배의 농도로 느껴지는 향들은 코를 타고 비강을 지나 목 아래로 쑥 내려가 명치를 들쑤셨다. 꿀렁, 우육면을 먹을 때도, 돼지고기 덮밥을 먹을 때도, 대만식 짜장면을 먹을 때도 같은 증상이 올라왔다. 여행의 최고 매력은 먹는데 있지 않은가. 사람의 기초 본능을 제대로 자극하는 데다 문화적인 면마저 들여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여행 포인트가 식도락인데, 거기에 문제가 생기니 여행이 재미있지 않았다.
임산부의 여행은 슬기로워야 한다. 결국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이틀 째 되는 날 아침, 대만음식에 도전하려는 마음을 접고 편의점으로 갔다. 최대한 지금 속에서 당기는 맛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똠양꿍 라면 이었다. 특유의 시큼한 맛을 생각했을 때, 김치를 만난 마냥 행복해졌다. 똠양꿍 컵라면과 참치맛 삼각 김밥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물을 부을 때도 전혀 역하지 않았고 오히려 맛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두근대며 입에 가져가 보는데, 예상대로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태국에서도 안 먹어본 똠양꿍 컵라면과 삼각 김밥을 맛있게 비우고 나니 그제야 몸에 활력이 돌았다.
천천히 숙소 주변을 산책하며 생각에 잠기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달콤한 디저트도 잊지 않았다. 예쁜 풍경을 찾아 열심히 사진을 찍고 폭신한 베딩이 있는 호텔에서 휴식을 만끽했음은 물론이다. 멋진 건축물이나 이국적인 풍경이 나타나면 눈동자를 천천히 옮기면서 태아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렇게 예쁜 풍경을 어서 쏙 나와 함께 보자, 다음에는 아빠도 같이 오는 여행을 만들자고 말이다. 입덧으로 인해 존재감이 확실해 지니 어딜 가도 아기와 함께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기가 허락해준 유일한 대만 음식은 펑리수였다. 폭신한 빵에 상큼한 파인애플 잼이 들어있는 펑리수는 임신 전에도 워낙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신나는 마음에 엄청 사가야지 다짐했지만 꽤 무거웠던 탓에 한 두박스 정도만 적당히 사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2박3일의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 생각이 많이 났다. 결혼 후 떠났던 많은 혼행에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생소한 감정이었다.
당시에는 그 의미를 잘 몰랐으나 지금은 확실하게 안다. 결혼에 있어 자식의 존재가 필수라 말하는 쪽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아이가 우리 사이를 훨씬 견고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아기가 있기 전에는 따로 또 같이 라는 멋있는 말을 실천하며 살아갔다면 이제는 같은 형태를 수행하되 엄마아빠의 역할을 항상 명심하며 밸런스를 맞춰 간다. 그 때는 태아도 아닌 배아 상태였지만 이미 엄마가 된 듯, 처음으로 아빠가 있어야 우리가 완성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를 어루만지며 다음에 아빠랑 꼭 다시 같이 오자 다짐했었다. 와서 이 맛있는 대만음식을 셋이 싹 먹어치워 버리자고. 하지만 다녀온 직후 터진 초유의 사태에 1년 가까이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의 가족 여행이 얼른 완성되기를 바란다. 그 때는 캐리어 하나 가득 맛있는 펑리수를 잔뜩 싣고 돌아올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