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건 어떨까?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 F는 말했다. 인터넷에 카페를 하나 개설했단다.
여행가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서 떠나기 위해 만든 카페라고 했다.
혼행제일주의자는 듣자마자 긍정적인 생각 보다 부정적인 마음이 앞섰다.
절친이나 부부끼리 가도 싸우는데, 생판 모르는 남과 만나 어떻게 즐겁게 여행을 할 수 있지? 그게 가능하려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엄청난 양의 규칙을 세워야 할 텐데,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디지? 각자의 성격을 몰라서 오는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지인의 대답은 신선했다. 여행을 가고 싶은데 친구들은 전부 시간과 날짜가 안 맞고, 그러니 대한민국 어디에선가 날짜 맞는 동행자를 구하는 수밖에 라고.
친구들과 날짜가 안 맞으면 혼자가면 되는 건데 인터넷에서 동행을 구하다니..?
여행을 떠남에 있어서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우리였다.
그녀와 여행은 두 번 정도 함께한 적이 있어 함께 여행을 하기 좋은 스타일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카페에 가입해서 같이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2년 전의 일이었다.
아이를 낳은 뒤 친구가 절실해졌다.
육아 중 반복되는 놀이 말고 새로운 놀이방법이 궁금할 때, 아기가 밥을 잘 안 먹을 때, 발달에 대해 궁금한 게 생겼을 때, 심지어는 열이 많다는 아기들이 요즘 옷을 얼마나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지 감이 안 잡힐 때. 주변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 물어볼 데도 없어 온종일 핸드폰으로 맘카페만 뒤졌다. 그럼에도 내게 꼭 맞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육아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30대인 우리가 육아로 인한 잠깐의 쉼 동안 어떻게 숨을 고르고 있는지를 교류하며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지역 정보가 필요해 지역 카페를 뒤적이는데, 눈에 띄는 글이 보였다.
- 00동 사시는 아기엄마들 함께 산책도 하고 친구해요, 저희 아기는 6월생이구요, 저는 30대 중반입니다.!
아.
눈에 확 들어온 그 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육아하면서 계속 혼자 버티다 동네에서 친구를 만들고 싶었구나. 이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심지어 나의 아이와 태어난 월도 같았다. 마우스를 잡고 그 글에 무한대로 드래그를 반복하며 고민을 했지만 결국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한다 해도 그 이후가 두려웠다. 처음보는 사람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만나서 막상 대화를 해봤는데 나와 안 맞으면 어쩔 것인가? 새학기가 되어 새내기를 맞이하던 대학생 이후로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랜선 너머의 그녀만큼 용감하지 않았다.
그 글은 결국 며칠 뒤 삭제됐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가는 날이면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엄마가 동네에서 유모차와 함께 갈만한 곳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아기 엄마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커피나 마실까 하고 들어간 카페에서 또래로 보이는 그녀를 만났다. 함께 유모차를 끌고 있었고, 꼬물거리는 아기가 타고 있었다. 둘 다 음료를 주문한 뒤 잠시 앉았다가 음료가 나오자 바로 일어났다. 음료를 기다리는 그 몇 분 사이, 두세 번쯤 그녀를 힐끗 거렸고 그녀도 내 쪽을 쳐다봤지만 서로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우린 그렇게 서로의 커피 취향만 확인한 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이런 일들이 있고 난 뒤 요즘 머리를 굴려 얻어낸 생각인데,
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1박2일 정도로 국내 여행지를 가볍게, 일탈하듯 다녀오는 건 어떨까?
다 같이 앉아서 주구장창 아이 키우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 보다는 이름 석자로 존재하는 우리의 추억거리를 만드는 게 좋겠다 싶었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 공감하고 작은 여행에 대한 포근함을 알게 되는 과정 중에 육아에 대한 짐은 조금씩 내려두고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정이 잠시 잊었던 나를 찾아줄지도 모르고 말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여행을 한다” 보다 아이를 키우는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끼리 마냥 신나게 놀고 문화를 배우고 친목을 다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엄마가 되기 이전에 자유로운 여행자였거나, 여행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테다.
거기서 또 한 번 뜻이 맞는다면 함께한 여행에 대해 글을 써 보는 것도 좋겠다. 혹은 조금은 실험적이고 철없는 포즈를 취한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좋겠다. 뭐가 됐든 아기란 존재를 머릿속에서 잠시 떼어 놓을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장기전인 육아에 비하면 1박2일은 정말 잠깐이다. 하지만 그 잠깐의 일탈이 몇 달을 보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여행하는 동안 너무 많은 아이 이야기는 금물이다.
내 계획을 듣자마자 남편은 그거 좋은 생각인 것 같다며 처음엔 1박2일 정도로 가볍게 시작하다가 나중엔 해외도 나가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 라인이 생기기 마련이니 소수로만 가는 게 좋겠다, 모두를 위해 조금 까다로울지 몰라도 규칙을 빡빡하게 세우는 게 나을 거라는 의견도 내줬다. 처음 카페를 개설해본 지인 F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적극 찬성해 줬다. 생각보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니라고. 또한 여행은 다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므로 모임을 만들었다고 해서 모든 총대를 메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는 거라고, 오히려 좀 더 부들부들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머리와 마음이 바빠졌다. 한쪽 팔 끝에서 뜨거운 피가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도 느끼는 중이다. 육아를 하면서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생각하다 튀어나온 아이디어는 그 날 밤을 찬란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아이가 너무 어려 조금 시간이 필요 하겠지만 언젠가 그런 모임이 보인다면 주인장은 나일 것이다. 글로도 공개했으니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빼앗아 가지 마시라.
어쨌든 내가 먼저 의견을 냈다. 퉤퉤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