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일

올해는 하이패스

by vicai



오늘은 생일이다.

12시가 땡, 하자마자 대학 선배로부터 축하한다는 연락이 왔다. 반은 쑥스럽고 반은 감사한 마음으로 챙겨줘서 고맙다 인사를 했다. 생일 축하가 어색하고 쑥스러운 나이가 된지 몇 년이 지났지만 올해는 특히나 더 그랬다. 육아를 핑계로 지인들의 안부 한 번 제대로 물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육아를 하는 와중에도 틈이야 벌리려면 얼마든지 있다. 휴대폰으로 SNS를 뒤적일 시간을 쪼개 한번, 아기가 낮잠을 잘 때 밥을 먹으며 한번.

문제가 되는 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안부를 물어볼까? 생각하는 심리적인 여유다.

아기의 밥시간 잠시간마다 그 때 그 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밥시간 잠시간을 앞에 두고 계속 대기를 타고 있으니 그렇다. 아이가 밥 먹기 몇 시간 전이니 이런 것들을 해야지, 아이가 잠들 때가 되었으니 침구 정리를 해놓고 지켜보다 졸려하면 들어가야지. 머릿속이 온통 아이로 가득하다.

세상의 모든 바쁜 일. 결혼준비, 시험준비, 취업준비 등 집중을 요하는 그런 것들과 육아는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장기전이다.

아이가 있다고 결혼식에 오지 못하고, 육아 한다고 연락한번 안하는 친구들이 참 미웠었다.

겪어보지 않는 일엔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여 티를 내진 않았지만 내심 그랬다. 근데 그걸 똑같이 하고 있으니. 스스로 답답했다.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바쁜 와중에도 늦을지언정 메시지에 꼭 답은 했고 틈틈이 생각나는 누군가에게 연락도 했다. 하지만 생일 챙기기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아기를 낳고 3개월. 그 동안 누군가의 생일을 챙긴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인지 이번 생일만큼은 아무에게 연락을 받지 못해도 서운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니 서운하고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생일이 왠말인가. 일주일 째 대변을 보지 못하는 아기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아기가 밤잠에 든 시각, 12시를 넘겨서 남편이 사온 케이크에 초를 켜고 음소거로 노래를 불렀다. 후. 촛불을 끄고 박수를 쳤다. 역시 음소거로.


아가야, 엄마는 이 날 태어났어.

너처럼 엄마의 엄마 뱃속에서 나왔어. 우리 엄마한테도 특별한 날일거야.

우리아가 내년쯤엔 웃으면서 엄마 생일을 축하해 줄까?

눈물이 쑤욱 올라왔다.








생일 축하와 더불어 잘 지내느냐는 안부의 말에 ‘육아가 힘들어요’ 로 대동단결된 대답들을 줄줄이 꺼냈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손에서 말이 나왔다. 이렇게 말해봤자 미혼인 그는 별로 해줄 말이 없다. 알지알지.

아니 실제로는, 육아가 힘들지만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다. 잔잔하게 힘들지만 순간순간 굉장히 오랜만에 느끼는 깊은 행복의 감정을 만난다. 아기는 예쁘지만 힘들다가 아니라 힘들지만 왜 키우는지 알겠다가 내겐 더 맞는데, 어째서 손에서 이런 말들부터 튀어 나오는지.

아침 10시쯤 되자 친구들이 하나 둘 연락을 해왔다. 누구는 작은 선물을, 편지 같은 긴 글을, 따뜻한 말 한마디를. 예상치 못한 연락에 사랑 많이 받는 사람이었구나 싶어 마음이 벅찼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아기 겉옷을 검색하고, 때 아닌 대변전쟁 탓에 이틀 전에야 생일임을 알았는데, 누군가는 미리 알고 준비하고 챙기려고 생각 했었구나. 남보다 더 나를 생각하지 못했구나.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늘 상기한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으로 치유되며 어쨌든 혼자서는 살기 힘들다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카페에서 쓸 쿠폰, 립스틱 같은 색조화장품, 악세사리 등이 선물 이었다면 이번엔 콜라겐, 유산균, 배달치킨 쿠폰 등을 받았다. 특히 귤 한 박스가 정점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음을 배려한 선물일 테다. 연락 준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 깊게 남았다.


남편은 결혼 후 6년 만에 처음으로 나의 미역국을 잊어버렸다. 물론 나도 잊었다. 낮잠 시간에 아기가 깰까봐 아침 점심을 거의 매일 건너뛰는 까닭이다. 퇴근하자마자 각자 눈앞에 보이는 일 해치우기 바빠 함께 앉아 TV 볼 한 시간 남짓도 낼까말까한 요즘이다. 모든 걸 끝내고 누워서야 서로의 얼굴을 잠깐 마주볼 뿐 이내 내일을 위해 얼른 잠에 들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역국을 잊은 게 전혀 서운하지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다른걸 했을거야, 그 바쁨 아주 잘 알지.



미역국을 생각해 낸 것은 아침, 미역국은 먹었냐는 엄마의 물음 때문이었다.


자기야, 나 미역국....

아, 맞다 미역국..... 퇴근하고 집에 가서 끓여줄게!

응 어떻게 둘 다 잊었지. 우리 육아가 많이 힘든가봐.



올해 내 생일은 하이패스다. 그래도 괜찮다.

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생겼기에. 이 존재는 지금 나 아니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 안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면 된다.

지금은 아이를 살피는 엄마인 것도 좋다. 처음의 과도기를 거쳐 지금까지, 아이가 크는 만큼 우리도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100일 남짓한 시간이지만 아이도 부모도 쑥쑥 컸다.

하루의 보살핌으로 오늘도 아이는 푹 자고 눈을 뜬다. 활짝. 마주보며 짓는 아이의 웃음이 생일선물이다. 아무신도 믿지 않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생일이니까 아무에게나 빌어본다.

부디 아이가 잘 자랄 수 있게 우리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아이를 위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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