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내게 줄 수 있는 건

길 위의 선물

by vicai



“후기가 하나도 없네”



걱정 되었지만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딸칵. 눈을 딱 감고 예약 버튼을 클릭했다.

도심과 공항 중간 즈음 생소한 동네에 있는 호텔이었다.

후기가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택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질러놓고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까지는 늘 떨렸다. 말이 호텔이지, 걸을 때마다 바닥 매트에서 담배 냄새가 폴폴 피어오르는 모텔스러운 호텔일지도 몰랐다. 매우 어설퍼 보이는 홈페이지 속 사진에 갸우뚱 하고, 검색창에 호텔 이름을 쳐도 한국 사람의 투숙후기 하나 안 나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에 쫓기는 여행자는 아침 이른 시각 출발하는 비행기를 선택해야만 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하려면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오로지 위치 하나만 보고 고른 숙소였다.


처음 온 일본여행이 아닌데도 초행길은 늘 걱정이 됐다. 아는 동네에서 신나게 놀다가, 해지기 전 초저녁부터 이동하는데 시간을 썼다. 호텔이 자리한 동네는 서울로 치면 중곡동 같은, 별 특징이 없는 사람 사는 동네였다. 심심했지만 본격적인 일본 소도시 여행을 다니기 전이라 동네 느낌이 강하게 나는 것이 신기했다.

아주 둥글거나 아주 각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꽉 막힌 지하철에서 탈출해 집에 거의 다 와 가는 직장인, 드르륵 카트를 끌고 조심스러운 보폭으로 걸어가는 할머니, 복숭아뼈가 보일락 말락, 남색 교복치마를 팔락이며 스치는 중학생. 동네 사람들만 걸을 것 같은 그 거리를 걸었다. 완벽한 이방인의 모습이라 카메라를 드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사서 가방 속에 넣어둔 과자를 만지작거리며 먹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였다. 작은 하천에 맞닿은 다리가 나왔다. 스무 걸음쯤 옮기면 끝나는 작은 다리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있을법한, 평범한 다리였는데 이상하게 생동감이 넘쳤다. 다리를 중심으로 위의 하늘, 아래의 물이 걸쳐졌다. 다리 아래로 물은 빠르게 이동했다. 까맸다가, 하얬다가. 변화무쌍하게 색을 바꾸어가며 내려갔다. 그 유속사이로 용케 피어난 작은 꽃들이 사정없이 휘청거렸다. 수많은 시간 계속해서 물과 만난 돌들은 매끈하게 빛났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이내 해질녘 하늘과 물색이 완벽하게 맞물렸다. 반복되는 그 모습에 이끌리듯 시선이 고정됐다. 난간에 서서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반짝, 시간 맞춰 켜지는 불들이 물 위에 비춰졌다. 그렇게 수면은 파랑색으로, 보라색으로, 얼굴을 달리했다.


어디로? 또 어디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고자 했으나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래도 계속해서 두 눈으로 물의 방향을 쫓았다.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날이 점점 더 어두워져 물이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행위를 이어갔다.


향하는 길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강력하게 알고 싶었던 20대 후반의 나였다.

끝이 어디일까 궁금해 말고 자신을 믿고 일단 달리라던 충고들이 더 이상 와 닿지 않던 시기였다. 같은 마음으로 목적 없이 즐기고자 한 여행 이었지만 작은 것이라도 느끼는 게 있었으면 했다.


난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억센 물음이 돌아왔다.

물음을 깊이 있게 생각하기도 전에 빠른 물살이 위로를 던졌다. 반복되는 일과에 안정감을 느끼던 그 느낌과 닮았다.


난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답을 듣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조금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볼 수 없었던 곳에서 흐르는 물이 뭐라고, 이 작은 요동에 동요하는 걸까.


성실하게 흘러가는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가겠다. 더 이상 조급해 하지 않고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의심하지 않겠다. 이 세찬 속도를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무언가 놓치고 있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도 않기로 해. 빨리 더 빠르게 가라고 몰아세우지 않고 오히려 더 아껴가면서 나는 나의 속도대로 갈게.

깜깜해져 가는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늘 그렇듯, 생각만큼은 아닌 평범하고 작은 호텔이었다. 오는 길에 본 호텔 옆 구멍가게에서 과자 두 봉지와 컵라면, 맥주 한 캔을 샀다. 테이블에 완벽하게 세팅을 해 두고 입욕제를 푼물에 몸을 녹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물이었다. 이번 여행, 너무 좋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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