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초보엄마

여행의 관전포인트

by vicai


아이가 탄생하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 옷 고를 시간에 아이 옷을 보는 것, 생활 패턴이 아이에게 맞춰 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갓난아이 일지라도 혹여나 들을까 언행을 조심하는 것, 위생에 더욱 신경 쓰는 것도 괜찮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를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는, 그 이상의 것들이 의외로 아주 많다.


가족 이야기가 화두로 나오면 더 이상 딸이 아닌 엄마로서의 위치를 생각하고 엄마에게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딸에게 줄 수 있는 걸 생각한다. 가족관계를 밀어두고 사람은 각자의 환경에서 개개인으로 자라는 것이기에 엄마한테 받은 만큼 딸에게 줘야 할 필요도, 딸에게 주는 만큼 엄마에게 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나 역시 엄마와 친구들의 다른 엄마들을 비교를 일삼다 끝끝내 입 밖으로 까지 꺼냈던, 철이 없다 못해 맹추 같은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엄마는 모든 걸 다 주어도 늘 부족하다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존재임을, 30년이 훨씬 넘어 엄마가 되어서야만 알 수 있게됐다. 그것도 매우 어렴풋하게. 잔인하다.



몇 해 전 책을 낸 적이 있었다. 오사카 여행과 베트남 여행을 다룬 짧은 전자책이다.

원고를 썼고, 투고를 했다. 출판사에서는 여행일 수가 짧기 때문에 종이책은 어렵고 전자책으로만 출간이 가능하다 했다. 책을 낸다는 건 큰 꿈이었고 예상보다 빨리 온 호의적인 신호에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마냥 기뻤다. A4용지 두 장에 달하는 원고 한 꼭지를 쓰는데 퇴고까지 이틀 정도가 걸린다면 그 때는 10분이면 썼다. 그들이 읽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독자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다. 퇴고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 한가득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가득했다.




버스에 올라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저기 앞쪽, 할머니 두 분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딱 봐도 자유여행을 오시기에는 무리인 연세였다. 아니, 무리고 아니고를 떠나 부모님 여행이라도 보내드리려 하면 힘들거나 불편할까 자유여행은 엄두를 못 내는데. 우리는 자유여행을 가더라도 어른들은 패키지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두 분은 그 작은 어깨에 씩씩하게 백팩을 메고, 거기에 화장을 또 곱게 하시고 투어버스 안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너무 신기해서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말이 저절로 걸어졌다.


- 안녕하세요!



두 분은 손녀뻘인 여행자에게 해맑게 웃어주셨다.



- 어머~ 아가씨 혼자 왔어요? 안녕하세요.



두 분은 이모와 조카사이. 보이는 흰머리만큼 연세가 있는 이 분들은 친척 사이이자 둘도 없는 여행의 베스트 파트너였다. 같이 자유여행을 다닌 나라의 수가 벌써 10개국 가까이됐다. 그 동안의 여행 과정을 짧게 말해주시는 표정과 말투에서 즐김의 여유가 느껴졌다. 인생을 살며 모든 중요한 것들을 거의 끝낸 느낌이랄까. ‘나이를 먹어 몸이 약하니 봐줘야 하오, 편하게 가야하오’ 하는 마인드도 없었다. 두 분은 내가 묵는 곳에서 멀지 않은 호텔에 묵고 계셨는데, 그 마저도 결코 좋은 호텔은 아니었다. 호텔을 직접 예약하신 건 물론이다. 지금 30살인 나와는 또 다른 느낌과 감정으로 베트남을 보고 계시리라.





부끄럽지만 그 때 작성한 글의 일부다.

이 내용 뒤에는 결혼 후의 여행이 두렵다, 갈 수 있을까, 사회가 그렇다,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스스로를 둥글게 깎으려는 모습을 발견하니 무섭다, 등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그 때의 마음이 이랬구나. 글 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섭다.)



만남의 끝은 깔끔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온 열사병 증상으로 할머니들과 뜻하지 않게 이별을 했고, 호텔로 뛰어가 구토를 하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녀들의 백팩 멘 두 어깨는 몇 년 동안이나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깊은 잔상으로 남아있다.

함께 투어 일정을 소화하면서 당시에는 그 분들보다 몇 살 더 많지만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우리 할머니와, 일과 할머니 간병에 치여 스트레스가 많은 엄마를 떠올리며 가엾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나도 저렇게 여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또 다른 존재를 앞에 두고, 너와 찰떡같은 여행 메이트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나야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딸은 자라면 어떤 생각을 할지 알 수 없는 것이고, 그 애매한 느낌은 엄마랑 여행을 둘이 간다면을 가정했을 때 일차적으로 느껴지는 내 감정과 같다. 지금부터 천천히, 작은 나에게 무엇을 경험하게 해주고 무엇을 부족하게 해줘야 할까. 가이드가 내민 생소한 과일을 보며 두 손을 내젓는 대신 먹어보자며 손바닥을 내보이던 그녀들. ”어머, 이건 이런 맛이 나네“ 하며 권유하는 그 손이 아니었다면 난 그날 잭푸르츠를 먹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고집 없이 모든 걸 호기심 어리게 바라보도록 해야겠다. 아이가 그 모습을 보며 배울 수 있을 때까지 지금부터 노력해야지. 나와 다른 사람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아야겠다. 결혼하면 당연히 좋아하는걸 하지 못하겠지 라며 준비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자식을 위한답시고 가장 좋아하는 걸 포기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그러길 원하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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