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감정을 말하는 연습

― 곪아 터진 감정의 끝에서

by 비추리



보호가 필요했다.

보호자가 있었지만,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내가 처음 만난 세계는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적응하지 못했고,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외로움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마음 안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소리 내지 않던 아이는

조용히 마음을 숨기고,

점점 날카롭고, 뾰족하게 변해갔다.


들개처럼 주변을 경계하며

짖어대기 시작했다.

겁먹은 개가 큰소리로 짖듯

나도 먼저 소리치며

웃고, 말하며 나를 지켰다.




안전지대에 머물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온 곳이 전쟁터 같았다는 걸,

상처와 분노를 끌어안고

쉬지 않고 버텨왔다는 것을.


괜찮은 줄 알고 살아온 상처는

곪아 터져, 비명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암이 번지고 커진 뒤에

뒤늦게 통증이 밀려오는 것처럼.


마흔이 넘은 다음에야 깨달았다.

나는 진짜 감정을 잘 말하지 못한다는 걸.

그리고 말하지 못한 감정은

몸에 남아 마음까지 무너뜨린다는 것도.


차라리 몸이 아프면

병원이라도 갈 텐데.

마음이 고장 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나의 아픔 가까이에 머무를 뿐이었다.




만족을 모른 채 살아온

상처투성이의 나를 고치고 싶었다.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나,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나.
바람이 불면 바람을 느끼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그대로 머무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이제 감정을 말하는 연습을 시작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준비가 되면,
내 마음을 꺼내어 조용히 나와 마주하기로 했다.


그 작은 연습이,내 여정의 다음 문을 열고 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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