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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붓꽃, 봄에 물들어 봄

들판에서 능선까지 붓꽃들을 따라 걷다

by 이른아침

“꽃은 결혼을 앞둔 치장이다.” 이 문장은 꽃의 의미와 꽃가루받이 과정을 한마디로 압축한, 기억에 남는 표현이다. 꽃은 꽃가루받이 매개곤충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화려하고 향기로운 상태로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래서 꽃이 피는 순간은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시간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비유를 이름 속에 담고 있는 식물이 있다. 각시붓꽃이다. 이름만 들어도 신부대기실에 앉아 결혼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신부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로 각시붓꽃은 꽃의 형태도 독특하고 화려하여 여러 꽃들 사이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돋보이듯 특별한 존재감을 지닌다. 꽃잎은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며, 바깥 꽃잎(외화피) 3장과 안 꽃잎(내화피) 3장으로 구분된다. 외화피는 내화피보다 뚜렷하게 크고 아래로 젖혀지며, 특히 꽃잎 안쪽에는 노란색이나 흰색 그물무늬가 있어 꽃가루받이 곤충을 유도하는 시각적 안내 역할을 한다.


이렇듯 각시붓꽃은 이름에 식물학적 의미와 문학적 상징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형태적으로도 다른 꽃과 구별되는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각시'는 식물이름에서 주로 '작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꽃이 작고 앙증맞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붓꽃과 집안의 대표종인 붓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체 크기가 작다는 의미다.

<각시붓꽃> <넓은잎각시붓꽃> <타래붓꽃>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붓꽃 종류는 여럿이다. 붓꽃 형제들은 햇볕이 드는 곳이라면 추위와 건조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므로 까다롭게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붓꽃은 야트막한 산기슭의 풀밭에서 자라고 어떤 종은 깊은 산속에서 드물게 발견되므로, 이들을 찾아 산과 들을 걷는 즐거움도 있다.


붓꽃들을 감상하고 구분하려면, 크기와 꽃 색깔-보라, 노랑, 하양-을 기준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 붓꽃은 주변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색깔로 공간을 물들인다. 산벚꽃이 피면 온 산을 물들이지만 붓꽃은 자신에게 물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보랗게, 노랗게, 하얗게 물들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붓꽃들을 만나러 가보자.


먼저 보라색 꽃잎을 가진 종류들을 찾아가 볼까. 각시붓꽃은 전국의 야산이나 산어귀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어 키 작은 붓꽃 중에서 대표적인 종이다. 넓은잎각시붓꽃은 전체적인 형태는 각시붓꽃과 비슷하면서도, 잎이 더 넓고 밑동에서 갑자기 좁아져 가늘고 둥글 형태를 이룬다. 주로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자생하며 외형이 비슷해 두 붓꽃은 혼동되기도 한다.


붓꽃과 타래붓꽃은 키가 큰 편이다. 각시붓꽃이 종아리 높이까지 자란다면, 타래붓꽃은 무릎 높이까지 크게 자란다. 잎이 약간 비틀리며 꼬이는 특성이 있고 붓꽃에 비해 연보라색 꽃이 핀다. 이런 생김새와 더불어 자리를 가리지 않고 잘 자라서 정원용으로 개발되어 요즘은 멀리 가지 않더라도 도심의 화단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도 지금 한창 피어있고 그 꽃을 바라보다 붓꽃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붓꽃> <노랑붓꽃> <노랑무늬붓꽃>

노란 꽃이 피는 붓꽃도 있다. 금붓꽃은 각시붓꽃과 비슷하나 꽃이 노랗다. 이른 봄 4월경, 나뭇잎이 막 돋아나고 풀들이 키를 키우기 전에 숲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다. 노랑붓꽃은 금붓꽃보다 잎이 넓고 한 꽃줄기에 꽃이 두 송이씩 피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로 호남 등 남부 일부지역 습지 주변에서 귀하게 발견된다. 장성 백암산과 변산의 숲길을 걷는다면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 주변을 살펴보라. 행운처럼 만나 색다른 행복을 느낄 테니까.


노랑무늬붓꽃은 꽃잎이 하얗고 외화피 안쪽에 노란 무늬가 있어 쉽게 구분된다. 이 꽃을 만나기 위해 태백산, 소백산, 함백산을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때를 못 맞추거나 정확한 위치를 몰라 헛걸음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오직 이 꽃을 만나기 위해 오른 소백산 능선에서 처음으로 마주했다. 봄바람 부는 긴 능선길에서 만난 흰 꽃의 눈부심은 물론 그날의 햇살과 풍경까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시 만나 볼 수 있을까.


꽃창포와 노랑꽃창포도 붓꽃과 집안 식물이다. 꽃창포는 붓꽃에 비해 꽃 색이 짙은 보라색이고 개화 시기도 늦은 편이다. 그러나 크기와 형태가 비슷해서 늘 헷갈리는데, 꽃창포는 습지와 하천 주변에서 자라고 붓꽃은 산이나 풀밭에서 자라므로 서식지에 따라 구분하면 어렵지 않다. 꽃창포와 혼동하는 식물이 또 있다. 단오에 머리를 감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창포와도 혼동한다. 창포는 잎 모양이 긴 칼모양으로 비슷하지만 꽃과 열매는 꽃창포와 전혀 다른 천남성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설악산 이북의 높은 산에 은거하는 난장이붓꽃 그리고 건조한 산지 풀밭에 자라는 솔붓꽃은 몇 번이나 찾아갔어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그저 제자리에서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붓꽃들은 아름다워 야생화로서의 가치도 높아 남획이나 서식지 훼손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 언제가 그 길을 걷게 될 때, 여전히 그대로 피어 있기를...

<꽃창포> <노랑꽃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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