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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Mar 08. 2024

성급한 꽃과 함께 온 봄

나의 봄 전령사 광대나물


남쪽으로부터 매화꽃 소식이 꽃보다 먼저 왔다. 중부지방인 이곳 도시 속 정원에도 산수유와 매화가 꽃망울을 이미 터트렸다. 며칠 후면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겠다. 보통 매화와 산수유를 봄의 전령사라고들 한다. 그래도 내 나름의 전령사는 광대나물이다. 매화보다 먼저 피기도 하고 일부러 심어 기르지 않아도 주변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광대나물은 양지바른 들녘의 길섶을 걷다 보면 보인다. 논 가운데에서 물러나 가장자리나 논두렁 밭두렁에서 자란다. 도시에서는 공터나 공원 귀퉁이 한산한 곳에서 간혹 볼 수 있다. 꿀풀과 식물답게 꽃꿀이 많아 꽃잎을 하나 뽑아 빨면 단맛이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자주 빨아먹던 꿀풀의 꽃꿀에 미치진 못하지만 말이다.

     

두해살이풀로 내한성이 강하여 겨울에도 초록빛을 유지하면서 줄기를 땅에 붙이고 낙엽이나 마른 풀잎을 이불 삼아 추위를 이겨낸다. 줄기와 잎에 난 털도 찬바람을 버티는데 한몫한다. 겨울을 견디는 이유는 먼저 꽃을 피우기 위해서다. 먼저 피워야 곤충을 유인하는 경쟁에서 한발 앞설 수 있고 꽃가루받이할 가능성을 높인다.


 기운이 점차 오르면 눕혔던 줄기를 서서히 세우며 꽃을 피운다. 잡초인데다 후미진 곳에서 자라 관심 대상이 못되지만 봄에 꽃을 피우는 순서나 친근함으로 보면 봄의 전령사로 손색이 없다.

     

광대나물의 꽃을 들여다보면 흥미롭다. 입을 벌린 입술처럼 꽃잎(입술꽃, 脣形花)이 위아래로 갈라졌다. 긴 깔때기 모양의 대롱 부분(花冠筒)을 중심으로 윗입술꽃잎은 위에서 모자처럼 덮고 있다. 빗물이 꽃 안으로 떨어지는 걸 막고 암술과 수술을 감싸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아랫입술꽃잎에는 편평한 원형 구조물 있으며 안쪽 중앙에 붉은 반점이 있다. 반점은 모양이 일정하지 않으며 간혹 없는 개체도 있다. 얼룩무늬는 곤충의 눈길을 끌어들이는 표식이 된다. 앞으로 내민 원형 판은 곤충이 날아와 쉽게 착륙할 수 있는 장치인 셈이다. 아랫입술꽃잎에 곤충이 앉더라도 바로 꽃꿀을 딸 수 없다. 꽃 아랫부분이 깔때기 목처럼 길쭉하고 꿀이 밑에 있기에 곤충은 허리를 길게 늘리며 가느다란 꽃대롱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곤충이 몸부림치며 꿀을 따는 순간 윗입술꽃잎에 어 있던 수술이 흔들리면서 곤충 몸에 꽃가루를 묻힌다. 그와 함께 곤충에 묻어있는 다른 꽃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묻는다. 그러면 광대나물은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고 곤충은 꿀을 얻는다.

     

광대나물은 곤충이 꽃꿀만 얻어가고 꽃가루받이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꽃 모양을 깔때기 형태로 길게 진화했다. 이에 대응해 나비와 나방은 꽃꿀을 손쉽게 가져가려고 대롱 모양의 긴 주둥이로 진화했다. 이렇게 꽃과 곤충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에 반응하며 진화해 왔다. 이를 공진화라 한다.

    

추위나 더위처럼 곤충이 찾아올 수 없는 환경에 대비해 꽃잎이 열리지 않는 닫힌꽃(閉鎖花)을 갖는 전략도 있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제꽃가루받이를 해서 씨앗을 맺으려는 방편이다. 다른 꽃의 꽃가루로 수정(딴꽃가루받이)을 하면 유전자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제꽃가루받이를 하여 자기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남기는 궁여지책인 셈이다.

    

광대나물은 봄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꽃을 따라 성급하게 봄은 온다. 늘 그랬다. 광대나물은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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