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나라는 어쩌다 신용카드 강국이 됐나?

고운 정 미운 정, 신용카드 1편

by JunWoo Lee

초심자로서 테크핀(핀테크) 관련 지식을 쌓기 위해 주기적으로 하나의 소재를 잡고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타자는 신용카드다.


왜 신용카드냐 하면 답은 단순하다. 테크핀 공부를 시작했을 때 눈에 가장 많이 띄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큼 신용카드 인프라가 잘 깔려있는 나라도 없다는 점에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매일 같이, 하루에 몇 번이고 쓰는 신용카드.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에 가장 맞닿은 금융일 것이다. 그러니 그것부터 <고운 정 미운 정, 신용카드>라는 시리즈로 시작하기로 했다.


시리즈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어쩌다 신용카드 강국이 됐나?

현 한국 신용카드 시장의 생태와 문제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각 파트 분량이 어느 정도 될 것으로 보여 총 3개 혹은 2개의 글로 나눠 업로드할 예정이다. 그리고 오늘은 우선 국내 신용카드의 역사부터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어쩌다 신용카드 강국이 됐나?


우리나라만큼 신용카드 결제가 잘 보급된 나라가 없다. 바로 옆 나라 중국, 일본만 가봐도 신용카드가 안 되는 가게가 많다. 아래의 표를 보면, 비교적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연합뉴스

혹시 몰라 최근 자료도 확인해보았는데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은 여전히 신용카드 대국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점이 하나 생긴다.


유독 한국에서 신용카드가 이리도 빨리 그리고 널리 퍼졌을까?


이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선 한국 신용카드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아주 간단히..)


일단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것은 1987년 신용카드업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그전에도 은행권에서 신용카드를 발급하긴 했었지만 사람들의 인식 부족 때문인지 가맹점과 회원을 모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신용카드업법이 제정되자 은행은 물론 대기업에서도 카드사를 내놓고 발 빠르게 신용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왜냐면 당시 사람들의 소비 생활이 질적으로 향상되어 개인을 대상으로 한 소매 금융도 충분히 돈이 될 만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성카드와 같은 카드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후 국내 신용카드 역사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바로 1997년 외환위기다. IMF 구제 금융 사태라고도 불리는 경제 위기는 우리나라 금융 산업에 큰 폭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폭풍은 금융 산업이 신용카드업에 더 주목하게 만들었다.


왜 그랬는지 따져보기 위해 외환위기에 대해 아주 간단히 살펴보자.

(외환위기는 워낙에 큰 사건이기에 자세한 내용은 차후 포스트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하여 기업은 구조 조정을 실시하고 투자를 확 줄였다. 은행 또한 불안한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였다. 그래서 당시 정부에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97년에서 99년 사이 약 60조 원의 재정 적자를 볼 정도로 돈을 투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기관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줘야 이자를 쳐서 수익을 낼 수 있는데 기존 주요 고객인 기업이 헤롱거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 기관은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신용카드 시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가 얼어붙은 상황이었기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잘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신용카드에도 적용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 문제도 정부라는 플레이어가 나타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왜 정부는 신용카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방금 말했듯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그로기 상태에 있던 기업들도 어느 정도 소생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크게 두 가지가 더 있었고 그것들이 정부를 신용카드와 연결시켜주었다.


첫 번째 문제는 세수 부족이었다. 돈을 쏟아부으며 재정이 악화된 정부는 세수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로기 상태의 기업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신용카드를 통해 기존에 탈세가 잦았던 자영업 등에서 세원 포착을 더 투명하게 하고자 했다.


두 번째 문제는 앞서도 말한 소비 축소였다. 기업들이 소생해서 제품을 다시 만들어도 소비자가 사주지 않으면 도루묵이었다. 소비를 통한 경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장기 침체는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정부에선 소비의 미덕을 강조하며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정부는 신용카드를 밀어주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했다. 일단 이자율을 낮춰 사람들이 저축 대신 소비를 하게 만들었다. 하단의 표를 참조하면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저축률이 급락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금리 인하로 인한 저축률 감소

더 나아가 신용카드 자체를 위한 정책도 시행했다. 1999년 5월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한도를 폐지하고 6월에는 신용카드 소득 공제 제도를 만들었다. 특히 유효했던 것은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한도를 폐지한 것이었다.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는 쉽게 말해 카드사에서 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연금리는 30% 정도로 굉장히 높았지만 담보가 없거나 신용 등급이 낮아도 쉽게 돈을 인출할 수 있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그래서 당시 카드사들은 서로 과열 경쟁을 하며 길거리에까지 나와 회원 모집을 했다. 정부도 뒤에서 도와주겠다 고삐가 풀린 카드사들은 고객에 대한 신용 평가는 제대로 하지도 않고 카드를 뿌렸다.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에까지 카드가 발급되는 상황이 나타났다.


그래서 1990년에 1000만 장이었던 카드 발급수는 2002년 1억 장을 초과했다. 경제 활동 인구 1명 당 4.6장의 카드를 보유하고 있던 셈이었다.


카드를 발급받은 고객들도 에라 모르겠다하고 현금 서비스를 쓰기 시작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생계가 어려워져 생활비를 구하기 위해 현금 서비스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99년에 63조 정도였던 신용카드 사용액이 2002년에는 622조 원에 달하게 되었다. 4년 만에 10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었다. 그리고 신용카드 이용 금액 중 현금 서비스 비중이 60%나 차지했다.


딱 봐도 뭔가 문제가 있는데 실제로 2002년에 곧바로 카드 연체율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신용불량자 수가 97년 말 143만 명이었는데 2004년 말에는 361만 명이 되었다. 2003년 한 해 동안 100만 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카드 연체율과 신불자 수의 폭증은 카드사로의 타격으로 이어졌다. 당시 카드사들은 고객들에게 빌려줄 돈을 대량의 채권 발행을 통해 확보했기에 문제는 더 컸다. 결국 카드사도 누군가에게 큰 빚을 지고 고객에게 돈을 빌려준 셈인데 그 고객들 중 상당수가 돈을 갚지 않으니 상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2년 결국 카드 대란이 터졌고 외환위기 이후 어찌저찌 회복하던 한국 경제에 또다시 큰 위기가 찾아왔다.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랴부랴 신용카드와 신용 평가 시스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모기업인 은행에 합병되거나 여기저기에 매각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거액의 자금이 투입되었고 사회 여기저기에 상처가 났다. 신용불량자라는 말도 사회에 만연해지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상처 투성이의 과정 속에서도 신용카드는 어쨌든 우리의 일상 속 깊숙이 침투하는 것엔 성공했다. 신용카드 사업은 결제망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데 그것만큼은 맹목적인 시장 상황 속에서 참 잘 이뤄졌기 때문이다.


카드 결제망이 잘 깔린 덕분에 우리는 어디에서나 걱정 없이 신용카드를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은 사회/경제적으로 참 많은 이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당장 현금이 없어도 어디서든 결제를 할 수 있으며 할부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이리저리 넘어지며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신용카드 관련 제도/환경도 이전보다 안정화되었다. 정부도 신용카드를 통해 세원을 더 투명하게 확보하고 있으며 카드사도 현금 서비스가 아닌 다른 수익 모델을 찾았다. 결과론적일 수 있지만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한국이 지금과 같은 신용카드 강국이 되지 않았나 싶다.


결국 다시 짧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신용카드업법으로 꽃피기 시작한 신용카드

2. 외환위기 후 정부의 적극 지원에 힘입어 급속 성장

3. But 고삐 풀린 성장으로 카드 대란 발생, 부작용 속출

4. 그럼에도 과정 중에 신용카드 인프라 확산 성공

5. 이제는 안정기를 거치며 자리 잡은 신용카드


오늘은 국내 신용카드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신용카드가 잘 자리 잡은 지금 문제는 없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한다. 테크핀의 시대, 신용카드 강국이라는 점이 오히려 기술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왜 그럴까?


답을 알기 위해선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그 업계와 함께 성장한 VAN사, POS 제조 업체 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 글에서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테크핀쪽으로는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라 부족한 부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댓글로 피드백 주시면 감사히 배우고 수정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2002년 카드 대란, 정재형/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2010.11.01

https://eiec.kdi.re.kr/material/clickView.do?click_yymm=201512&cidx=1337


국내 신용카드 산업의 역사와 현황, 한국경제학회, 2015.10

http://www.kea.ne.kr/common/download?id=1954§ion=pub


keyword
JunWoo Lee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획자 프로필
구독자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