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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고운 정, 미운 정 신용카드 2편

by JunWoo Lee

저번 포스트에서 국내 신용카드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봤다. 신용카드가 어떻게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신용카드의 과거는 어느 정도 살펴봤으니 이제는 현재 상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혼란기/안정기를 거쳐 이젠 성숙기에 이른 신용카드,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어떨까?



신용카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일단 소비자는 신용카드를 굉장히 잘 쓰고 있다. 옆 나라 중국에선 이미 간편 결제가 디폴트 결제 방식인데 한국은 여전히 신용카드 사랑이다. 카카오가 열심히 오프라인 QR 결제를 밀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한국 사람들에겐 QR코드보다 카드 리더기가 더 편하다.

중국에선 이미 대중화된 QR 결제

그런데 지각 변동이 생기려 한다. 정작 소비자는 신용카드를 잘 쓰고 있는데 왜 변화가 생기려 할까?


바로 시대적 흐름과 그에 따른 정부의 움직임 때문이다.


신용카드도 과거엔 혁신의 산물이었다. 당장 현금이 없어 물건을 살 수 없었던 페인 포인트를 해소해주며 사회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소비자에게는 물론 사업자 그리고 정부에게까지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IT 기업들이 금융에 뛰어들며 신용카드도 낡은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선 신용카드가 낡았다는 게 의아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카드 결제의 뒷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뒷단에서 발생하는 이슈 때문에 정부가 신용카드 생태계에 지각 변동을 주려 하기 때문이다.


카드 결제의 뒷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선 우선 신용카드의 결제 방식에 대해 간단히 살펴봐야 한다.


신용카드 결제는 쉽게 말해 카드사로부터 돈을 빌려 선 지불하는 방식이다. 한 달 동안 결제 금액만큼 돈을 빌리고 지정일에 청구된 금액을 갚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돈을 빌리면 으레 이자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청구된 금액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겨우 한 달 짧게 빌려서 이자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이자는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동안 그걸 다른 사람이 대신 내주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카드 가맹점주들, 그러니까 소비자가 카드를 긁은 가게의 주인들이다. 가게 주인들은 소비자들이 내야 할 이자를 대신 지불해왔다.


왜 가게 주인들이 소비자의 이자를 대신 내줄까? 답은 단순하다. 만약 사용자가 그 이자를 내야 한다면 신용카드 사업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애초에 신용카드의 핵심 목적은 소비를 더 쉽게 만드는 것에 있었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이자 부담이 생긴다면 신용카드 사용에 거리낌이 생겨 결국 소비를 안하게 될 수 있다. 이건 카드사는 물론이고 가게 주인도 원치 않는 결과다.


그래서 카드사는 소비자 대신 가게 주인, 즉 가맹점에게 이자를 받는 방식을 택했다. 가맹점도 결국 소비로 이어지는 문턱이 낮아지는 좋기에 카드사의 방식을 승낙했다. 남의 이자를 대신 내주는 게 억울하지만 카드 결제가 안되어 아예 고객을 놓치는 것보단 나았다.


그리고 이와 같이 빌린 사람과 갚는 사람이 따로 있는 구조는 신용카드의 성장과 함께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구조를 간단히 정리한 이미지를 살펴보자.

신용카드 거래 당사자 구조

위 이미지의 빨간 상자, 즉 결제 뒷단에서 납부되는 수수료에 가맹점이 소비자 대신 내는 이자가 포함되어 있다. 카드사는 저 가맹점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며 일정 부분을 카드 회원을 위한 혜택으로 돌려준다.


그래서 사실 소비자 입장에선 혜택 받으며 소비할 수 있어서 이득이다. 때문에 현 신용카드 시스템에 문제를 못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가게 주인, 즉 가맹점은 남의 이자를 대신 내줘야 해 억울하다.


지금까지는 결제 수단으로써 신용카드가 가지는 위치가 독보적이었기에 그 억울함이 크게 표출되지 않았다. 카드 결제 인프라를 포기하면 손해 보는 건 결국 가맹점 측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제 뒷단에서 발생하는 이자를 포함한 결제 수수료 문제는 지속적으로 곪아왔다.


하지만 테크핀 시대 IT 기업들이 간편 결제라는 대안을 들고 나오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수수료를 더 적게 내면서도 고객에게 편한 결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정부도 그런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부는 간편 결제를 활용하면 자영업자들 특히 소상공인들의 억울함과 부담을 줄여줄 있을 것이라 여겼다. 가뜩이나 불황인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의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라도 덜어주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래서 20년 전 신용카드를 적극적으로 밀어줬던 정부가 이제는 반대로 옥죄고 있다. 카드사에게 결제 수수료를 인하하라 압박 중이다. 18년 말 금융위는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를 1조 원 정도 줄이라는 카드 수수료 개편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카드사의 수익이 크게 제한받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 - 여신금융협회

더 나아가 정부는 모바일 간편 결제를 밀어주는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젠 이름만 들어도 다 알 만한 제로페이가 그중 하나이다. 오늘 이야기에선 결제 뒷단 가맹점 수수료가 핵심인 만큼 결제 수수료 인하를 외치는 제로페이까지 다뤄보고자 한다.

제로페이 오프라인 결제

제로페이, 서울시에서 적극적으로 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그 성과가 미미하다. 제로페이 담당자가 나와 사과하는 광고가 뜰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해당 정책이 보여주기식 행정이다. 포퓰리즘이다. 말이 많기도 했다.

광고 나와서 사과하신 분

왜 실패했을까?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냥 신용카드가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QR코드 결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제로페이를 권하려면 우와하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로페이는 신용카드의 익숙함을 깰 만한 이점을 소비자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소비자 단에서 제로페이의 주요 혜택은 소득 공제인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일단 소득 공제 혜택은 카드사에서 결제할 때마다 쌓이는 포인트(비록 작기는 하지만)에 비해 와닿지 않는다. 또 모바일 프렌들리하여 간편 결제를 가장 빨리 써볼 20대 초중반에겐 소득 공제 혜택이 큰 의미가 없다. 대부분 학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연계된 네이버 페이, 페이코 등의 간편 결제 업체에서 추가 적립 등의 혜택을 주긴 하지만 번거롭다. 왜냐면 해당 서비스에 가입하고 따로 계좌를 등록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미 내 손에는 바로 결제할 수 있는 신용카드가 들려 있는데 왜 굳이 그래야 하나?


결국 제로페이는 소비자의 경로 의존성, 즉 게으름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로페이가 아예 글러먹은 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제로페이는 비록 소비자 설득엔 실패했지만 적어도 시행 의도 자체는 괜찮다. 간편 결제 기술을 보급하여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 시대 흐름에도 부합하고 공익적인 가치도 있다.

제로페이/신용카드 수수료 비교

실제로 위의 이미지를 보면 수수료 차이가 꽤 크다. 이는 제로페이가 신용카드와 같은 외상 결제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로페이는 소비자의 계좌에서 가게 주인의 계좌로 돈이 바로 이동하는 계좌 이체 방식이다.


즉 제로페이에선 카드사처럼 소비자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어 리스크나 금융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제로페이에선 은행이 계좌 이체 수수료를 못 받게 했으므로 소위 '돈의 유통 비용'도 제로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소상공인 입장에선 제로페이가 좋다. 결제 수수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제로페이로 결제를 해준다면 소상공인들은 행복할 것이다.

(전에 호기심에 제로페이로 결제했을 때 사장 아주머니께서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또한 간편 결제 기업에서도 제로페이는 도움이 되는 사업이다. 자기들이 해야 하는 간편 결제 인프라 사업을 정부가 대신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보다는 QR코드를 이용한 간편 결제 인프라가 보급이 용이한 편이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로 큰 일이다.


제로페이 전엔 카카오가 사비를 들여 오프라인 결제를 뚫으려 계속 시도했다. 소상공인에게 QR코드 결제 키트를 지원한 적도 있었다.

카카오 소상공인 QR 간편 결제 키트

하지만 그 효과가 아직은 미약하여 간편 결제 기업들은 오히려 은행/카드사와 연계하여 오프라인에서도 쓸 수 있는 네이버 혹은 카카오 페이 제휴 카드 등을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카카오페이 제휴 카드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힘을 써서 오프라인에 간편 결제 인프라를 뚫어주는 건 꽤나 괜찮은 일이다. 물론 수수료 0%를 주장하는 정부 사업에 껴서 돈을 벌 가능성은 굉장히 적다. 하지만 정부가 자기 힘과 돈을 써가면서, 또 욕까지 먹어가며 사람들에게 간편 결제를 인식시켜주는 건 이득인 부분이다.


결국 정리하면 제로페이는 소비자에게만 친절하면 되는 사업이다. 그게 제일 어려워서 담당자도 광고에 나와서 사과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하고 싶은 말은 제로페이가 아예 글러먹은 사업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앞으로 제로페이가 어떻게 될지 아주 희망적으로 가늠해보면 따릉이가 보인다. 쓸 때마다 욕이 나오는 사용성의 따릉이지만 어쨌든 쓰는 사람이 꽤 되긴 하니까 말이다. 제로페이도 정부의 힘을 써서 어떻게든 사용자가 쓸 포인트를 잡아준다면 쓸 사람은 쓰지 않을까..?

따릉아 니 덕 좀 보자

그리고 제로페이는 딱 그 정도까지만 나아가야 좋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달하려면 수익이 발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제로페이가 중간에서 수수료 0%를 외치고 있으면 아무도 오프라인 간편 결제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카카오는 제로페이 연계 사업자에서 나가기도 했다.


제로페이의 역할은 신용카드 중심의 판을 흔들어주는 것이다. 그 과정 중에 더 많은 소비자가 이용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정부가 간편 결제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액션을 취하는 것을 보면 기업들도 어느 정도는 확신을 갖지 않을까? 오프라인 간편 결제 이거 제대로 해봐도 되겠는데?라며 말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금융 분야에선 정부의 움직임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우린 이미 정부의 움직임이 신용카드의 확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저번 포스트에서 확인하기도 했다.


물론 향후 사기업들이 오프라인 간편 결제에 뛰어들면 제로페이보다 높은 결제 수수료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카드사보다는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혁신가들은 기존의 유통 단계를 줄여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고 네이버, 카카오 등 IT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면 신용카드 중심의 결제 방식도 바뀌지 않을까? 과거 신용카드를 확산시키는 것에 성공한 정부가 이번 간편 결제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오늘 글은 좀 길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혼란기/안정기를 거쳐 성숙기에 이른 신용카드

2. But 꾸준히 제기된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문제(소상공인 힘들어..)

3. 정부의 지속적인 가맹점 수수료 인하 압력

4. + 수수료 0% 제로페이 사업 추진(실패)

5. But 괜찮은 의도, 제도/인프라 면에서 마중물 역할 가능성


그런데 정리를 하다 보니 신용카드사가 참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일방적인 수수료 인하 요구,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테크핀 기업들. 카드사에겐 고난의 시대가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식간에 무너질 카드사도 아니다. 그들에겐 VAN, POS 업체 등의 파트너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포스트에선 카드사가 어떻게 현재 상황에서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더 나아가 그에 대한 정부의 또 다른 반격에 대해서도..


커밍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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