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정, 미운 정 신용카드 3편
이전 글들에서 신용카드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알아보았다. 요약하면 과거 정부 지원에 힘입어 성장한 신용카드가 현재는 반대로 정부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정부의 압박에 쉽게 굴복할 카드사가 아니다. 여전히 사람들의 손에는 신용카드가 들려있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19년 지급수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용카드는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결제 수단이며 사용률 또한 점차 증가하는 중이다.
한은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가 결제 수단에서 가장 중시하는 게 편의성이라는데 어디서든 쓸 수 있다는 철옹성과 같은 범용성이 신용카드를 정부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듯하다. 정부뿐이랴 간편 결제 업체들도 아직까진 신용카드에 쉽사리 대적하지 못한다.
오프라인 결제는 말할 것도 없고 온라인 결제에서도 카드사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19년 한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은 온라인에서도 신용카드를 가장 많이 쓴다.
최근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의 간편 결제도 많이 사용되긴 한다. 하지만 간편 결제에 연동된 결제 수단이 결국 신용카드/체크카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18년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간편 결제 이용 금액 중 91%를 차지하는 것이 신용카드를 연동한 결제다.
이렇다 보니 앞선 포스트에서도 말했지만 신용카드 대신 간편 결제를 키우려는 정부의 시도도 생각만큼은 잘 안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자신이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걸 차츰 깨닫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카드사가 멀쩡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압박에 따라 분명히 수익성 악화의 시기를 겪고 있으며 구조 조정을 감행하는 카드사도 있다. 특히 18년 정부가 가맹점 수수료 인하 압박에 이어 혜택이 많은 소위 '혜자 카드'의 신규 발급을 원천 차단한 것이 카드사에 큰 타격을 줬다.
정부는 카드사가 수익성 분석을 통해 흑자를 낼 수 있는 카드만 새로이 발급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카드사는 새로운 카드 상품을 보수적으로 기획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니까 이제 카드사가 카드 혜택을 통해 소비자를 유도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다.
많은 사용자들이 써준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카드사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그중에 발견한 것이 오늘 다뤄볼 PLCC 카드다.
Private Label Credit Card
PLCC는 신용카드와 유통업체가 협업하여 만든 신용카드다. 말로만 들어선 감이 안 잡히니 지금까지 나온 대표적인 PLCC 카드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위 이미지처럼 온/오프라인 유통업체와 카드사가 연계하여 카드를 만들고 있다. 유통업체가 카드 상품을 기획하고 전반적인 마케팅 활동을 한다면 카드사는 카드 발급과 결제 시스템을 담당한다. 그리고 유통업체와 카드사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수익을 나눈다.
비용과 수익의 분담.
이 점에서 PLCC 카드엔 기존 신용카드와 다른 특성이 생겨났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통업체 관련 혜택에 몰빵"
기존 신용카드가 다수 카페/편의점 등에 적용되는 범위형 혜택이라면 PLCC 카드는 타겟형 혜택이다. 카드의 혜택이 PLCC를 만든 유통업체와 관련된 것으로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인 PLCC 카드인 스마일 카드의 혜택을 살펴보자.
혜택이 이베이 소속인 G마켓/옥션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적립도 해당 플랫폼에서 쓸 수 있는 스마일 캐시로 된다. 그리고 혜택 또한 꽤 좋은 편이다. 이베이 계열 쇼핑몰에서 결제하면 2%의 스마일 포인트가 적립되니 꽤나 쏠쏠하다.
(기존 신용카드는 보통 결제 금액의 1% 내외로 고객에게 리워드를 제공한다.)
이처럼 몰빵된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유통업체도 카드 발급에 따른 비용과 수익을 분담하기 때문이다.
먼저 유통업체 입장에선 굳이 자기 돈을 들여서 다른 곳을 위한 혜택을 마련해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자사 서비스와 관련된 혜택을 중심으로 카드를 설계한다. 그리고 유통업체도 수익을 배분받기 때문에 더 혜자로운 혜택을 소비자에게 돌려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카드사의 부담은 적어진다. 혜택, 홍보에 들어가는 비용을 유통업체에서 부담해주니 카드사 입장에선 카드 설계/발급에 따른 비용이 경감된다. 앞서 말한 정부의 수익성 분석 이슈를 피해가게 해줄 정도로..
그래서 카드사에게 PLCC는 다음과 같은 느낌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가지만 혜택이 빵빵한 카드
카드사에게도 참 혜자로운 상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수익을 PLCC와 나눠가져야 한다는 점이 걸리긴 한다. 그래서 카드사는 보통 네이버, 이베이와 같은 탑티어급 유통업체와 연계하여 PLCC를 만든다. 규모가 큰 기업이라야 대량의 고객을 흡수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박리다매라고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카드사에선 수익뿐만 아니라 이베이, 네이버 등에서 발생하는 결제 데이터를 확보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현대카드에선 PLCC를 통해 고객의 빅데이터를 확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근데 카드사가 PLCC를 만드는 이유는 알겠는데 그렇다면 유통업체들은 왜 만드는 걸까?
고객들이 어차피 카드 쓰는 거 자기들이 만든 카드를 쓰게 하기 위해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가장 많이 쓴다. 심지어 직접 간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등록해서 사용한다.
때문에 유통업체들은 카드사와 연계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카드를 만들려는 것이다. 카드 혜택으로 자사 서비스에서만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준다면 회원들의 충성도가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도 스마일 카드 혜택을 보면 대부분이 스마일 캐시 적립과 관련되어 있다. 네이버 프리미엄 카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PLCC가 잘 팔리면 결국 카드사와 유통업체 모두가 win-win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반응은 뜨겁다. PLCC를 가장 적극적으로 밀었던 현대카드는 큰 성공을 거뒀다. 이베이/코스트코 카드를 내놓고 72만 명의 회원이 증가했다. 좀처럼 회원 수가 늘지 않는 최근 카드사들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큰 성공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시장 반응에 따라 다른 카드사들도 하나둘씩 PLCC에 도전하는 중이다. 점차 수익성이 정체되어 가는 상황에서 카드사들은 PLCC에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제 마무리 요약을 한번 해보자.
1. 정부의 압박에도 여전히 굳건한 신용카드 사용률
2. 하지만 수익성/사업성이 악화된 건 사실
3. 카드사의 새로운 수익 사업 PLCC
4. 유통업체와의 협업으로 저비용 고효율 카드 발급
5. 정체되었던 카드 시장에 활력을!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과연 신용카드가 정부의 압박을 극복해내고 명줄을 연장하는 것에 성공할까? 이제 막 PLCC의 시대가 열린 만큼 잘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신용카드 중심의 결제는 물론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칼을 간 모양이다. 특히 오픈뱅킹이 눈에 띄는데 이후 시리즈에서 한번 알아보려고 한다.
커밍 쑨!